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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⑫

쪽빛 바닷가에서 가지는 애모의 감상

  • 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쪽빛 바닷가에서 가지는 애모의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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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여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중략)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시 ‘행복’

나는 이 시를 중학교 다니던 시절 산골 초가의 호롱불 곁에서 읽었다. 그러곤 인생의 모두를 눈치 챈 양 서글피 눈물방울을 찍기도 했다. 그리고 무수히 시간이 흐른 뒤, 나 혼자 통영을 찾았을 당시, 해저터널 입구의 산언덕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다시금 이 시를 읊조리려 했는데 참 우스운 일이었다. 도무지 우체국의 시는 생각나질 않고 대신 ‘나 죽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린(愛隣)에 물들지 않고…’ 하는 유치환 시 ‘바위’ 한 구절만 끝도 없이 주절거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먼 진주 땅에 살면서 하루에도 서너 통씩 청마의 연서(戀書)를 받았다는 여인, 그도 이미 이승을 떠난 지 오래다.

너는 저 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愛慕)도 사리(舍利)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 이영도의 ‘탑’ 전문

금기의 사랑에서 뿌려진 안쓰러운 절구들만 남고 시인들은 떠났다. 우체국에서 멀지 않은 곳, 청마가 살았다는 그 약방골목에도 낯선 인파만 넘치고 있을 따름이다.

으레 다음 순서는 ‘청마문학기념관’인 줄 알고 있는 학생들을 이끌고 통영항으로 나섰다. 시인의 육필에서, 몇 장의 낡은 사진에서, 생전에 사용했던 물품에서 시인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비린내 풍기는 바닷가에서, 장사꾼들의 악다구니에서, 깨져 널브러진 조개껍데기에서 훨씬 더 생생한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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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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