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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19

옛 시간이 줄지어 선 땅끝 세상

전남 해남

  • 최학│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옛 시간이 줄지어 선 땅끝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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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올하면서도 기품 있는 일주문을 지나 층계를 오르면 절집의 지붕이 나타나고 그 너머로 달마산 바위 봉우리들이 창공을 등지고 선 풍광이 한눈에 잡힌다. 숨을 몰아쉬며 절 마당에 서면 그 풍경이 온전한 병풍 그림이 되어 드넓게 전개된다. 탄성은 이쯤에서 절로 나오는데, 이는 절집을 등지며 돌아서는 때도 마찬가지다. 산을 올라오면서도 보지 못했던 바다가 절 마당에서 훤히 내려다보이기 때문이다. 이름난 절집치고 명당 아닌 데 앉은 절집이 없지만, 문외한이 보더라도 미황사 절집은 명당 길지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느낌이다. 법당이 부처님 앉은 데라면 불꽃 형상의 뒷산은 자연의 광배(光背)가 되며 삼라만상이 전면에 부복하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자리가 좋다보니 절을 찾은 이의 마음까지 훤칠해진다.

아는 이는 알지만, 아름다운 미황사 경내에서도 대웅보전 오른쪽에 있는 숲길이 가장 매력적이다. 이 숲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동백나무와 소나무로 가득 차 어느 때든 아늑하고 청량한 느낌을 준다. 다른 계절에는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지만 겨우내 또한 푸른 산죽이 있어 적적하지 않다. 일부러 심호흡을 하며 10여 분 완만한 숲길을 걷다보면 옛 선사들을 기리는 부도와 비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부도밭에 이르게 된다.

고만고만한 부도와 비석들이 세월의 이끼를 덮어쓴 채 무리를 지어 있는 이곳에 서면 마치 아름다운 죽음의 정원에 들어온 느낌마저 든다. 이미 오래전에 적멸의 세상에 든 이들도, 또 머잖아 그 세상으로 옮겨가야 할 이들도 지상의 이런 바람소리와 햇살, 바다냄새와 새소리를 지척에 두다보면 그렇게 적적하지만은 않을 터라 여기는 것도 이런 자리에서 가져보는 괜한 상념이다.

비자나무 푸른 빗줄기

고산 윤선도를 떠올리면 ‘지국총, 지국총, 지국총…’ 나룻배 젓는 소리가 들린다. 이 또한 교육의 힘이다. 많은 학생의 골머리를 때리긴 했지만 학창 때 강제로나마 옛날 시 공부를 했기에 이런 연상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두륜산으로 가기 전, 읍내에서 요기를 하고 가까운 윤선도 유적지부터 들르기로 한다. 나로서도 10여 년 만에 다시 한 걸음인데 그 사이 전에 없던 유물관 건물이 마을 맨 앞에 서 있다. 은색 스틸과 대형 유리창을 끼워 현대식 구조와 한옥 양식을 섞은 유물관 외관부터 독특한데 내부 구조도 재미있다. 전시실이 딸린 지하층에서도 햇빛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깥 잔디밭과 연결시킨 통로도 퍽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용도를 십분 지키면서도 주변 분위기에 돌발하지 않는 이런 배려에서 우리나라 현대 건축가들의 안목을 짐작할 수 있다.

녹우당(綠雨堂) 앞,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그대로다! 비록 헐벗은 가지들뿐이지만 위용은 변함이 없다. 크고 오래된 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예부터 반가 반촌의 자존과 위세를 이들 고목거수가 상징해왔기 때문이다. 만약 이 은행나무가 없다면 녹우당의 기품인들 온전할 수 있을까.

덕음산을 뒤로한 녹우당은 마을의 가장 안쪽에 앉아 있다. 앞은 드넓은 논밭이다. 윤선도가 직접 심었다는 비자나무들이 집을 호위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비자나무가 쏴 소리 내며 흔들렸는데 이 소리가 빗줄기 떨어지는 소리 같다고 해서 녹우당이라고 했단다. 소리에 색을 입히고 형상으로 바꾼 절묘함에도 옛사람의 멋이 있다.

여러 채의 사당과 사랑채, 안채, 행랑채 등으로 구성된 윤선도 고택 중에서도 사랑채인 녹우당은 가장 특별한 집으로 일컬어진다. 이 집은 효종 임금이 왕세자 시절 스승이었던 윤선도를 위해 수원에 지어주었던 것을 윤선도가 82세 되던 해 지금의 자리로 옮긴 내력을 갖고 있다. 자세히 보면, 기와지붕이 겹으로 돼 있는 집채가 있는가 하면 처마까지 이중으로 된 집도 있는 이 마을의 고가들은 남도 특유의 경쾌함을 지니면서도 본래의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해남에서 해남 윤씨의 기반을 닦은 인물은 윤선도의 고조부인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이다. 그는 해남의 이웃인 강진에 살았는데 당대 거부이던 해남 초계 정씨 정호장(鄭戶長)의 외동딸과 결혼, 정호장의 재산을 물려받고 일약 거부가 됐다. 그 뒤 해남 도강 김씨의 땅이었던 이곳 연동리 마을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해남을 찾는 이는 꼭 들른다는 윤선도 고택. 사람들은 왜 이곳을 찾고 또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돌아가는 것일까.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만났던 인물이 살았던 곳에서 갖는 문화적 감흥이 각별해서? 부와 명예를 두루 주었다는 명당의 지기를 살피기 위해? 아니면 옛집들이 풍기는 시간의 냄새와 분위기가 좋아서? 이런 질문은 곧 나 자신한테로 돌려지지만 나는 언제나처럼 스스로 답하기를 보류한다. 땅끝의 궁벽진 고을에 이런 인문적 유산이 보존돼오고 있음이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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