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단절의 땅에 귀 대면 들린다, 외로운 발소리가

충북 보은

  • 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단절의 땅에 귀 대면 들린다, 외로운 발소리가

2/3
열두 굽이 별세계

산성에서 10여 리를 더 가면 속리산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말티고개를 만난다. 속리산이 여느 산과 달리 별세계인 양 신비롭게 여겨지는 것도 열두 굽이 이 험준한 산길을 거치는 통과의식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 태조는 물로 조선조의 태종, 세조 임금이 이곳으로 행차했다는 얘기가 있으니 ‘왕의 고갯길’인 셈이다.

형제들까지 죽이고 옥좌에 오른 태종 임금은 평생 그 죄의식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진다. 등극 3년째 되던 해, 그는 살해된 두 아우 왕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천도불사를 속리산 법주사에서 거행했다. 그 덕일까. 마음속의 아픔과 두려움도 말끔히 가셨다고 한다. 하여 지방 행정구역을 개편하던 때에 종전까지 부르던 보령(保齡)이란 지명을 ‘보은(報恩)’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가파른 길을 높이 올랐으면 또 그 높이만큼 내려가야 마땅한데 속리산 자락으로 찾아드는 길은 그렇지 않다. 완만히 고도를 늦추는가 싶으면 이내 평지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분지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특히 문장대 편 산봉들의 위용이 대단하다. 옛 시대의 비기(秘記)들이 저마다 이곳을 세상의 환난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의 하나로 꼽은 이유도 알 만하다.

훤칠한 산이 있으니 그 품에 큰 도량이 없을 수 없다. 법주사의 진입로라고 할 수 있는 오리숲은 철 따라 모습을 달리하면서도 늘 빼어난 자태를 자랑한다. 떡갈나무, 단풍나무, 소나무들이 숲을 이뤄 터널을 꾸민 이 길을 걷다보면 아연 먼지 세상을 떠나온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큼직한 절집은 그 숲길이 끝나는 곳에 앉아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절은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쳤다. 정유재란 때는 승병들의 본거지라 하여 왜군들이 절간을 모조리 불태워버리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본래의 법주사 가람 배치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화엄신앙축과 용화보전을 중심으로 하는 미륵신앙축이 팔상전에서 직각으로 교차하게 돼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금동미륵대불이 조성되면서 그 배치가 흩어졌다고 한다. ‘동양 최대’ 운운의 대불이 처음 서던 때부터 나도 그 거대함이 못내 외람스럽고 불안스럽기까지 했는데 그 또한 파격이 전해주는 심리적 동요는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절간 고승들의 ‘뻥치기’



법주사(法住寺) 해우소(解憂所)는 하두 깊어서

일을 다 보고 골마리를 여며 매고

문을 닫고 나온 뒤에사

덤벙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동자승이 말하자

이가 다 빠진 노(老)스님 웃으며 거들기를

네 것은 유도 아니다

내 것으로 말하면

새벽에 내놓은 놈이

하루 종일 내리다가

해가 질 무렵에사 첨벙 하고

떨어진다고 한다

두 노소(老少)의 얘기를 엿듣고 있던 부처도

이들 틈에 끼어든다

네놈들 것은 유도 아니다

내 것으로 말하면

절 짓기 전에 내놓았던 것이

아직도 다 떨어지지 않고 내려만 가는데

날이 궂을 때는 번개소리도 내고

달이 밝을 때는 소쩍새로도 치는 것을

아마 보지 않았느냐?

보았제야?

- 임보 시 ‘속리산시’

2/3
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목록 닫기

단절의 땅에 귀 대면 들린다, 외로운 발소리가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