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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도시를 걷다

핏빛 ‘개혁’에도 살아남은 중세 영국의 종교예술혼

영국 켄트州 캔터베리

  • 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핏빛 ‘개혁’에도 살아남은 중세 영국의 종교예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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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개혁’에도 살아남은 중세 영국의 종교예술혼

프리메이슨리 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석공 출신 장인들.

프리메이슨리 박물관

Kent Museum of Freemasonry


프란치스칸 정원에서 서쪽 문 방향으로 걷다보면 프리메이슨리 박물관이 나온다. 호기심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결국은 프리메이슨리 심볼이 새겨진 셔츠용 커프링크스(cufflinks)를 한 세트 사서 지금도 애용한다.

프리메이슨리는 종교나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자선단체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조직 중 하나다. 회원 개개인에게 수준 높은 인격을 요구하고 본인이 프리메이슨리 회원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규칙이라고 한다. 애초 중세 유럽에서 성당이나 교회를 짓던 석공들의 길드에 의해 조직됐으나 훗날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사교클럽과 같은 형태로 발전했다. 프리메이슨리 상징물 중에 컴퍼스와 자가 있는데, 이것이 프리메이슨리가 석공 길드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고 한다. 컴퍼스는 진리를, 직각자는 도덕을, 역시 상징물인 흙손과 몽둥이는 각각 결속과 우애, 지식과 지혜를 상징한다고 한다.

박물관은 1933년 지역 장인에 의해 개관됐는데, 지금껏 끊임없이 수정, 보완, 개선되고 있으며 자원봉사로 운영된다고 한다. 스스로를 석공 출신이라고 밝히는 장인들이 전시물들을 자세하게 소개해줬다. 박물관에는 석공이 사용하는 각종 도구와 그림 여러 점이 전시돼 있다.



캔터베리 성곽, 캔터베리 성, 데인 존 마운드

Canterbury City Walls, Canterbury Castle, Dane John Mound


캔터베리 최초의 성곽은 3세기경 로마인들이 건립했으며 약 130에이커의 땅을 에워쌌다고 한다. 130에이커는 53ha 정도니 창덕궁 면적(56ha)보다 약간 작은 규모다. 성곽 높이는 대개 2.25m이고 수석과 모르타르로 축조했다. 성곽은 토담 위에 약 6m 높이로 건립되고 그 주변에 해자(垓字)를 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성문은 애초에 5개였는데 현재까지 남은 것은 서문(西門, West Gate) 하나다. 성곽도시 서울은 서쪽 돈의문이 헐린 반면 캔터베리는 유일하게 서문만 남았다. 이 서문은 잉글랜드에 남아 있는 가장 규모가 큰 성문(城門)이라고 한다.

보통 건축이나 문화재 관련 콘퍼런스에는 답사 일정이 포함돼 있기 마련인데, 이번 콘퍼런스는 세계유산 보존 관련 법규에 관한 소규모 전문가 회의여서 공식 답사 일정이 없었다. 참석자도 건축가와 법조인이 반반이었다. 따라서 틈날 때마다 도시를 걷다보니 어떤 곳은 아주 새벽에, 또 어떤 곳은 저녁에 들르게 됐다. 어쩌면 가장 먼저 찾아봤어야 할 성관 시설인 아성(牙城, keep)을 런던으로 떠나는 아침에야 놓칠세라 찾았다. 아성은 석조로 된 중심 탑으로 중세 서유럽 성 안에 지어진 요새화한 탑을 말한다.

캔터베리 성은 로체스터 성, 도버 성과 함께 헨리 1세(1068~1135) 때 건립된 켄트 지역 3대 오리지널 성관 중 하나다. 이 세 성관 모두 하스팅 전투(Battle of Hastings, 1066) 후 도버에서 런던까지의 로마 길 위에 건립됐는데, 이 중요한 경로를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성(Castle)과 궁전(Palace)의 차이는 요새냐 아니냐에 있다. 요새화했으면 성이다.

데인 존 마운드(Dane John Mound)는 원래 1~4세기경 로마인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었다. 11세기 노르만에 점령됐을 당시 중심 탑이 목조인 모트-앤-베일리로 축조됐다가 12세기 무렵 목조를 허물고 석조로 다시 만든 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모트-앤-베일리란 높이 쌓은 흙 위에 목조나 석조로 된 중심탑(keep)을 세운 모트(Motte) 부분과, 해자나 말뚝으로 에워싸인 공간인 베일리(bailey, enclosed courtyard)가 함께 조성되는 요새의 구조를 뜻한다.

데인 존 마운드는 1790~1803년 당시 소유자가 성벽 남동쪽에 조성했는데, 얼마 안 돼 캔터베리 시가 소유하고 관리하게 됐다. ‘데인 존’이란 이름은 아마도 요새를 의미하는 돈존(donjon)을 현지 발음으로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높은 언덕에서 캔터베리 대성당을 바라본다. 그리고 라임나무로 우거진 수목 터널을 통과해 화이트프라이어즈 쇼핑몰과 버터마켓을 거쳐 블랙프라이어즈 가로 되돌아온다. 캔터베리의 마지막 아침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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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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