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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도시를 걷다

찬란한 건축 유산 앙상블 다시 볼 수 있을까

네팔 카트만두 계곡

  • 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choinsouk@naver.com

찬란한 건축 유산 앙상블 다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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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건축 유산 앙상블 다시 볼 수 있을까

박타푸르의 시디 락스미 사원.

박타푸르 더르바르 광장 북동쪽에는 옛 왕궁이 있다. 이 일대에서 가장 중요한 조형물이라고 하는 궁전 입구의 황금문(Lu Dhowka/Sun Dhoka, the Golden Gate)으로 들어가면 내부의 중정 탈레주 초크(Taleju Chowk), 바이랍 초크(Bhairab Chowk)와 연결된다. 이곳은 힌두 신자만 들어갈 수 있지만, 탈레주 초크 앞의 나가 포카리까지는 외국인도 들어갈 수가 있다. 나가 포카리(Naga Pokhari)는 17세기 왕실용 물 저장소(水槽)로 신화에 나오는 코브라 뱀인 나가(Naga)가 전체를 에워싸고 기둥 위에 뱀 머리가 있는 독특한 벽돌 조형이다.

박타푸르의 파슈파티나트 사원(Pashupatinath Temple)은 왕궁 건립과 동시대인 15세기 말라 왕조의 약샤 말라(1428~1482) 때 건립된 것으로 앞에서 기술한파슈파티나트 힌두 사원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사원의 버팀목에는 에로틱한 형상의 조각들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힌두교 현자이자 산스크리트 문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발미키(Valmiki)의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니야타폴라 사원(Nyatapola Temple)은 1702년 건축된, 네팔에서 가장 높고 견고한 건축물 중 하나로 높이가 30m나 된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멀리 히말라야 전경이 내다보인다.

닷타트레야 사원(Dattatreya Temple)은 박타푸르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건축물로 1427년 약사 말라 왕 때 건립돼 수백 년 동안 지진 및 기타 재해에도 견뎌 왔다고 한다. 원래는 1층이었으나 16세기에 증축돼 현재는 3층 건물이다. 답사 당일 이 사원 앞 광장에서 집회가 열리고 있어 광장의 용도를 함께 볼 수 있었다.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 쿠마리 사원

Kathmandu Durbar Square&Kumari Temple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은 옛 칸티푸르(Kantipur· 카트만두) 왕국의 궁전 앞 광장으로 수많은 독특한 건물과 중정으로 구성됐다. 특히 수세기에 걸쳐 조성된 뛰어난 네와 건축 및 공예 장식의 정교함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광장에는 말라 왕조(1201~1769) 및 샤 왕조(1768~2008)의 궁전이 남아 있다. 이곳 중정의 구성이 한국 궁궐 건축과 유사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곳을 하누만 도카(Hanuman Dhoka) 더르바르 광장이라고도 하는데, 궁전 주 출입구에 있는 하누만 석상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누만’은 힌두 원숭이 수호신, ‘도카’는 네팔어로 문(門)이라는 의미다.

동쪽에는 10개의 초우크가 남아 있는데, 일부는 건립 연대가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넓은 중정은 나살 초크(Nasal Chowk· ‘춤추는 이들의 마당’이라는 뜻)로, 국왕의 즉위식 등 공식 행사를 하던 곳이다. 이 역시 우리 궁궐 앞마당에서 즉위식을 하던 것과 유사하다.

프라탑 말라(1641~1674) 왕 통치 시절 건축 및 문화예술이 번성했으나 그의 사후 주춤해졌다고 한다. 프라탑 왕은 15개 언어를 해독했다는 전설이 있고, 이를 증명하는 글씨가 돌에 새겨져 있다. 그의 상징물로는 본인이 직접 세운 프라탑 데와자(Pratap Dhvaja)라는 사각 돌기둥이 있다. 기둥 상부에 자신과 두 부인, 그리고 세 아들의 조각상이 있다.

마지막 말라 왕인 자야 프라카쉬 말라(1736~1746) 때 쿠마리 바할(Kumari Bahal)이라는 사원이 건립된다. 지금도 쿠마리 사원에는 당시의 테라코타 타일이 그대로 있다. 쿠마리는 살아 있는 여신으로 추앙받는 소녀다(쿠마리는 네팔어로 ‘처녀’라는 뜻). 좋은 가문 출신의 소녀가 엄중한 심사를 거쳐 쿠마리로 선발되며, 초경이 시작되면 자리에서 물러난다. 쿠마리는 스스로 걷거나 말하면 안 되지만, 요즘은 추후 사회 적응을 위해 가정교사가 와서 글을 가르치고 수업 때는 교사와 대화를 해도 된다고 한다.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은 1833년 및 1934년 지진으로 엄청난 수난을 겪었고, 도로 확장으로 일부가 헐려 17세기 도시의 매력이 많이 줄었지만, 5에이커 정도의 면적에 네와 건축물이 즐비했었다. 이번 지진으로 거의 폐허가 된 이곳을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안타깝기만 하다.

스와얌부나트 불교 사원

Swayambhunath Temple

찬란한 건축 유산 앙상블 다시 볼 수 있을까

스와얌부나트 사리탑. 불자들은 이 사리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 날엔 스와얌부나트 사원 근처에서 토론회와 현장답사가 있었다. 토론장에서 가까워서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서쪽에서 사원으로 들어갔다. 참배객 대부분은 아침 일찍 동쪽에서 365개의 가파른 돌계단으로 올라가 바지라(Guilded Vajira·불멸과 불가항력을 상징하는 천신의 무기)와 입구를 수호하는 두 마리 사자상을 지나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탑을 돈다고 한다.

스와얌부나트 사원은 약 2000년 전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와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다고 하는,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사원이다. 흔히들 ‘몽키 템플’이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야생 원숭이가 정말 많다. 스와얌부 푸라나(Swayambhu Purana)라는 불교 경전에 따르면 카트만두 분지는 원래 하나의 커다란 산정호수였다. 거기서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나, 이 분지가 ‘스스로 존재함(Self-Created)’이라는 뜻의 스와얌부로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스와얌부나트 사리탑(Stupa) 건축은 기단 위에 흰색 돔을 얹고 그 위에 금으로 도금한 사면체 구조물을 올려놓았다. 각 면에는 부처님의 눈과 코가 그려져 있고, 사리탑 안에는 많은 유물이 있다. 이 사리탑은 상당한 상징성을 갖는다. 기단의 돔은 우주를 표현하고, 도금된 사면체에 그려진 부처님의 양미간에 있는 ‘제 3의 눈’은 인간 마음에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음을 표시한다. 또한 물음표처럼 보이는 것은 1이란 숫자를 형상화해 놓은 것이다. 이는 깨달음에 도달하는 길은 결국 하나로, 스스로의 수행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3층의 탑은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13단계를 묘사한 것이다. 불자들은 이 사리탑을 한 바퀴 도는 것이 불경을 1000번 읽은 것만큼의 공덕을 쌓는 일이라 믿는다. 그래서 이 주변은 참배객들로 늘 북적거린다.

이곳에서 또 하나 괄목할 만한 건축은 프라탑 말라 왕 때인 1646년 건립된 백색 쉬카르(Shikhar) 사원인 아난타푸르(Anantapur, 南東)와 프라타푸르(Pratapur·北東)다. 계단을 올라 바로 마주하는 거대한 바지라(Vajira)도 프라탑 말라 왕 때 조성한 것이고, 계단 하부에 불교의 삼보인 불법승(佛法僧)을 나타내는 그림도 당시 작품이라고 한다.

다녀온 지 1년 반이 지난 장소들을 하나하나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지만, 막상 글을 쓰다보니 새록새록 현장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열악한 환경임은 틀림없지만 정말 마력이 있는 도시다. 걸어도 걸어도 끝없이 나타나는 유적과, 바람에 펄럭이는 윈드호스(Windhorse·경전을 목판으로 찍어놓은 네모난 천 조각)를 뒤로하고 스와얌부나트 사원 계단을 내려와 택시에 오르면서 곧 다시 방문하리라 마음먹었다. 미처 실천에 옮기기 전에 지진 참사가 나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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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choinsou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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