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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를 위한 변명

  • 일러스트·박진영

여론조사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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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되지 않은 대중을 무시하고 ‘여론이 옳지만은 않다’며 그대로 나아가는 것을 보고 독재라 한다. 일반 대중보다 더 나은 능력을 지녔다면 그 능력을 ‘설득’에 쏟아부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은 민주주의의 원칙에 더 가까운 개념일 것이다. 궁극적으로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우중(愚衆) 합의가 철인(哲人)의 지혜에 우선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여론조사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받을까. 전문적 시각에서 볼 때 여론조사의 영향력은 항상 과장된다. ‘밴드왜건(승자편승)’ 효과니 ‘언더도그(패자동정)’ 효과니 하며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그 파급효과에 주목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에 따라 여론이 춤을 춘다는 것은 잘못된 관점일 가능성이 높다. 언론학의 커뮤니케이션 모형에서 ‘자극하면 반응한다’는 단순이론의 위상은 추락한 지 오래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 지도자에 영향을 받기도 하며, 자신의 출신지역, 학력, 소득수준 등 다양한 인구사회학적 배경에 따라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정치적 이해관계나 개인의 정치신념에 따라 지지하는 후보를 정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대선을 예로 들면 선거가 끝날 때까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여론이 늘 절반을 넘었지만 실제로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유권자가 전달되는 메시지에 따라 부화뇌동(附和雷同)한다는 가정 자체가 전근대적이다. 아침에는 이랬다가 저녁에는 달라지는 변덕은 이해관계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정치인들이 국민보다 더 심하다.

물론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여론조사 결과에 일정 정도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 여론 흐름이 나름의 신념을 가진 유권자에 의해 결정된 후 일부 부동층이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받는다 해도 때로는 승자 편에, 때로는 약자 편에 설 수 있기에 특정 후보에게만 유리하다고도 보기 어렵다.



게다가 여론조사 대세론에 따를 만큼 정치적 신념이 허약한 층은 대개 투표도 안 하는 경향이 많아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3자 효과’ 모형이라는 것이 있다. 요약하면 많은 사람이 ‘자신은 언론의 메시지 등에 별로 영향을 안 받지만 남들은 많이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직접 주변에 물어보면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자신도 지지 후보를 바꿨다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그렇지 않았듯이 말이다.

먹을 것 가지고도 장난친다는 한국에서 여론조사만이 정직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쉽지 않다. 그러나 현실에서 여론조사는 생각보다 조작하기가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여론조사 과정 자체가 워낙 복잡하고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는 조사회사의 담당자 혼자서 조작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전산 담당자나 실사 담당자 등 내부 직원은 물론이고, 수십명의 면접원과 때로는 1000명을 헤아리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조작하기는 어렵다. 물론 법적으로 선거와 관련된 여론조사 자료를 6개월 동안 보관해야 한다는 것도 조작이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다.

여론조사 조작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조사를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특정 언론이나 회사만 독점적으로 발표한다면 모를까, 동시에 발표되기도 하므로 서로 다르면 눈총을 받게 된다.

최근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검증 논란 이후, 같은 시기에 집중된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조사기관마다 지지율 차이는 있었지만 대개 오차범위 이내로 그 추세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설명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일반적 관점에서 여론조사 결과가 조작될 수 있다는 문제 제기의 핵심은 설문의 순서와 ‘묻는 방식’이다. 이러한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최근 국내 유수의 조사회사들은 대개 민감한 자료인 ‘대선주자 지지도’ 등을 묻는 질문을 제일 앞에 배치한다.

또 ‘묻는 방식’ 역시 어차피 문항 내용이 사후에 공개되고 확인도 가능하므로 낯 뜨거운 조작이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언론기관이나 조사회사마다 조사 주제를 정하는 ‘의제설정(agenda setting)’ 기능에 따른 효과는 좀 문제가 다르다. 대개 언론사의 관점에 따라 문항 구성이 다르고, 같은 주제라 할지라도 묻는 방식에 차이가 나므로 조사결과도 곧잘 달라진다. 물론 이 경우에는 문항 내용을 확인하다보면 어디서 결과의 차이가 나타났는지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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