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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슬픔을 나누는 지혜

  • 일러스트·박진영

슬픔을 나누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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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정작 당사자는 어떤가? 심노숭은 계속 묻고 있지 않은가? 눈물이란 무엇이냐고? 당사자는 자신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한다. 제아무리 모든 사람은 죽는다고 해도 그는 납득하지 못한다. 그는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이해했기에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다. 눈물이 흘러나오기에 이제 어쩔 수 없이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납득하는 순간, 눈물은 멈춘다. 살구를 따는 자신의 행위를 이해하는 순간, 서른여섯 살의 사내는 더 이상 쓸쓸하거나 적적하지 않다. 알게 되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은 틀렸다. 사랑하게 되면 보이고, 보이고 나서야 알게 된다.

소설가라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창작수업 시간에 가장 중요한 공부는 우리 바깥의 뭔가에 우리를 대입하는 훈련이다. 예컨대 아내를 병으로 잃은 남자의 슬픔에 대해서 쓰되, 그의 낡은 구두를 통해서 쓰라고 말하는 식이다. 왜냐하면 소설가에게 인간의 감정은 오래 들여다보면 실명하게 되는 태양빛과 같으니까. 누구도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직접 말하진 못한다. 소설가는 타인의 고통이 드러내는 그 형식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이게 바로 문학이다. 문학을 통해 우리가 삶을 이해한다고 말할 때, 이는 우리가 감정의 형식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글이 실린 잡지가 발행될 즈음에는 사태가 어떻게 바뀔지 나로서는 짐작할 수도 없지만, 탈레반에 납치된 사람들을 우리가 이해할 방법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먼저 분석하고자 한다. 그걸 분석하게 되면 그들의 두려움과 공포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그 두려움과 공포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게 다다. 오직 두려움과 공포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국제 정세와 탈레반의 역사와 이슬람의 전통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그들의 두려움과 공포는 불가해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 감정의 원인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사실상 우리는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슬픔을 나누는 지혜
김연수

1970년 경북 출생



성균관대 영문과 졸업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저서 : 소설 ‘스무살’ ‘빠이, 이상’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등


냉혹한 국제 질서라든가, 공격적인 한국 기독교 선교의 문제점 등으로 그들의 두려움과 공포를 이해해버릴 때, 우리를 당혹시킨 그 두려움과 공포는 사라질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이해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과 공포의 원인을 이해한다는 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아내가 죽었으니 눈물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의 친구일 수 있을까! 때로는 이해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때가 있다. 지금은 무턱대고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 절실하다.

신동아 200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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