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神 중심의 세계관 허물고 인간·과학의 세계를 열다

  • 김학순 |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神 중심의 세계관 허물고 인간·과학의 세계를 열다

2/2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은 기우에 그치지 않았다. 초판 400부도 다 팔리지 않았다. “구입해서 읽고 활용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선전문구가 무색하게 당시 독자로 추정할 수 있는 사람은 케플러, 갈릴레이, 튀코 브라헤 같은 천문학자와 출판업자 9명에 지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이런 평가에 대해 깅거리치 전 하버드대 교수는 여러 증거를 대며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의 주장이 틀렸다고 반박한다. 깅거리치는 갈릴레이와 케플러, 미하엘 마에스틀린 같은 일급 천문학자가 소유하고 메모가 적힌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소개하면서 천문학자 사이의 격렬한 다툼과 더불어 새로운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교회가 벌인 검열의 흔적까지 있음을 알려준다.

지구가 다른 행성들과 더불어 태양 주위를 회전한다는 코페르니쿠스의 결론은 과학 역사뿐 아니라 인류의 삶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획기적인 사고방식의 변화를 흔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하는 것만 봐도 알 만하다.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처음 사용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용어는 이제 세계인의 화두가 될 정도다. 칸트는 인식이 대상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주관 구성에 근거한다는 자신의 인식론적 입장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서양이 신(神) 중심의 세계관을 극복하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게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계기로 우주에서 신을 제거하고 우주와 지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을 물리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로 등극했다. 성서에 따라 우주를 해석하고 과학을 말하던 세계에 평범한 인간의 비범한 상상이 개입되면서 새로운 과학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책

지동설에 대한 독일 문호 괴테의 언급이 흥미롭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점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포기해야 했다. 이제 인간은 크나큰 위기에 봉착했다. 낙원으로의 복귀, 종교적 믿음에 대한 확신, 거룩함, 죄 없는 세상, 이런 것들이 모두 일장춘몽으로 끝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새로운 우주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상 유례가 없는 사고의 자유와 감성의 위대함을 일깨워야 하는 일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사용한 ‘회전’이란 용어 ‘Revolution’은 훗날 ‘혁명’이라는 정치사회적 단어로 변용된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회전, 순환, 주기, 반복 등의 뜻을 지녔으나 천체의 회전처럼 정치사회적 변화도 어떤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반복되는 일로 보고 비유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Revolution’을 혁명이라는 정치적 용어로 사용한 게 17세기에 일어난 영국 명예혁명부터였다고 말한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당부한 코페르니쿠스의 친구 앤드루 오시안더 서문 때문인지 가톨릭 교계에서도 이 책이 나온 직후에는 위협이 있었을 뿐 금서 조치는 없었다. 오히려 루터파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의 위협이 더 컸다. 하지만 지동설을 입증하는 학설이 난무하자 교황청은 1616년 마침내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지 70여 년이 흐른 뒤의 일이다.

교황청은 ‘움직일 수 없는 과학’으로 증명된 1835년에 들어서야 금서에서 해제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후 시대에도 허상 바로잡기가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중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데 3세기나 지나야 했다. 올바른 과학을 규탄당한 코페르니쿠스가 복권되는 데 5세기가 걸린다. 로마 가톨릭이 지동설과 관련된 오류를 인정한 것은 1992년의 일이다.

신동아 2014년 6월호

2/2
김학순 | 고려대 미디어학부 초빙교수·북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목록 닫기

神 중심의 세계관 허물고 인간·과학의 세계를 열다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