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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시네마 테라피 ④

현실에 물어뜯긴 청춘을 위로하며

  • 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현실에 물어뜯긴 청춘을 위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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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물어뜯긴         청춘을 위로하며

무기력한 20대를 그린 영화 ‘여기보다 어딘가에’.

어떤 점에서 성공에 대한 열망은 아주 세속적인 욕망과 허영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정의를 구현한다거나 나누는 삶을 살기 위해 혹은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성공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남이 우러러보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미래를 설계한다. 넓은 집, 좋은 차, 질투 나도록 아름다운 배우자, 고액 연봉 같은 꿈 말이다. 우리는 이 세속적 욕망과 허영을 ‘꿈’이라 부르며 살아간다. 20대 백수들이 꿈꾸는 삶의 한가운데 개츠비가 느꼈던 좌절과 허기가 놓여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나의 20대는 어땠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돌이켜 곰곰이 생각해보니 좀 다르다. 실은 난 그 시절 일기장에 하루빨리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싶다고 썼다. 20대에 놓인 무한한 가능성이 버거웠고 지루하게 남아 있는 미결정의 시간이 무거웠다. 미래는 현재를 견인한다. 대학에 들어가면 뭔가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낙관론이 고교시절을 버티게 하고, 대학만 졸업하면 멋진 사회인이 되어 자급자족하는 경제인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대학 졸업을 낭만적으로 미화한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전문직 종사자나 대기업 사원들이 그렇듯 폼 나게 연애하고 즐기며 살아가겠지, 대학을 입학하자마자 떠올리는 4년 후 미래란 그렇다.

지독한 현실로 밀려나온 ‘조산아’

하지만 캠퍼스 드라마가 캠퍼스의 실상과 거리가 있듯 대학 신입생 때 꿈꾸는 졸업 이후의 삶은 현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대학만 졸업하면 일자리가 보장되던 시절은 이미 20년 전에 지나갔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점수에 목을 매고, 인턴사원 모집 정보를 선점하기 위해 친구를 배신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게 현실이라고.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비루한 욕망과 작은 꿈을 먼저 버려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아직 이 지독한 현실과 만날 준비가 되지 않은 ‘조산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학생이라는 제법 폼 나는 아이덴티티를 반납해야 하지만, 아직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지 못한 그들이 정착할 곳은 어디인가?

대학 졸업반, 졸업 작품으로 만든 이승영 감독의 ‘여기보다 어딘가에’는 이 질문을 따갑게 내뱉는다. ‘여기보다 어딘가에’가 기존 청춘영화와 결별하는 지점도 여기다. 우선 이승영 감독 자신이 젊음을 되돌아볼 만한 객관적 거리도 여유도 없다. 그가 영화 속에서 그리고 있는 인물 수연과 동호는 이승영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수연이 멋진 반항아라기보다 ‘찌질이’와 닮아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연은 말 그대로 ‘찌질하다’. 그녀의 ‘소망’을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납득된다.



수연은 영국으로 음악 유학을 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막연하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음악이 무엇인지, 어떤 아티스트의 영혼에 자극을 받았는지, 어떤 음악을 자신과 동일시하는지 전혀 단서가 없다. 수연이 유학에 대해 갖고 있는 바람은 ‘난 커서 우주여행을 해볼 거야’ 하는 수준의 망상적 소망과 다를 바 없다. 그녀는 단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고 싶어 할 뿐이다.

‘돌아갈 곳이 없다’

찌질한 20대의 표상인 수연의 행동은 그녀가 결국 밴드 생활조차 성공적으로 영위하지 못하는 데서 정점을 이룬다. 우리가 알고 있는 20대란, 자신의 꿈을 위해 무조건 돌진하는 젊음이다. 사회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 비웃음을 받더라도 젊음은 열정과 의지로 자신의 꿈을 관통해나간다. 그게 바로 우리가 기대하는 젊음의 이미지다. 그런데 수연은 그토록 절실히 원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막상 기회가 주어져도 도망갈 궁리만 한다. 밴드 생활 역시 자신의 마음속 무언가를 걸고 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결국 수연은 자신에게 책임감을 요구하는 어른들의 바람을 거부하고 싶었을 뿐 음악을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2007년 부산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상영됐을 당시 많은 20대 관객이 감독과 주연배우들에게 호된 질문을 던졌다. ‘지금 얼마나 많은 20대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는데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라는 논지가 대부분이었다. ‘저렇게 찌질한 인간을 영화적으로 다뤄야 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비판도 있었다.

생뚱맞지만 엔트로피 이론에 따르면 에너지가 높을수록 불확정성도 높아진다. 혼돈은 에너지의 결과물이다. 어느덧 나이를 먹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싶은 거지?’ 하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휘발된다. 해야 할 일들만 남아 있는 세상, 그게 바로 어른의 세계다. 그리고 어쩌면 2000년대 한국 대학생들은 방황할 겨를도 없이 너무도 빨리 어른의 세계에 진입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 ‘Nowhere to turn’은 그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돌아갈 곳이 없다. 결국 수연은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만약 그녀가 영국으로 갈 수 있었다 해도 그곳은 그녀가 가야 할 곳은 아니다. 수연은 그곳에서도 다른 어떤 곳을 꿈꾸고 도피하고 싶어 할 것이다. 답답하고 찌질하지만, 수연처럼 도망치고 싶어 하는 젊음도 있다. 그리고 그 도망치고픈 비루한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마음속 깊이 꾹꾹 눌러 담은 자화상이 아니던가? 별 의미 없이 순결을 버리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짐을 싸는 것, 그것이야말로 청춘의 사실화일 것이다. 이승영 감독의 ‘여기보다 어딘가에’는 그런 점에서 현재를 기록할 만한 청춘의 단면임에 분명하다.

힘들어 하는 그대, 그래도 젊지 않은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다. 문제는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고민이나 반성 없이 그저 사회의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는 순간 그것을 사회화라고 믿는 현실에 있다. 최근 대학생들은 대부분 입학과 동시에 성적을 관리하고 졸업 이후를 걱정한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는 졸업과 동시에 백수 호칭을 부여받아야 했던 ‘포스트 IMF 세대’의 뼈아픈 교훈이 자리 잡고 있다. X세대라 불리며 낭만적으로 재즈와 영화, 음악을 찾아다니던 선배들은 졸업에 즈음해 ‘IMF 경제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고 무너졌다. 졸업하기 전에 한 번쯤 다녀와야 했던 어학연수는 미완의 외화 낭비가 되었고, 낭만적으로 보냈던 시간들이 덜미를 붙잡았다. 영화나 음악 그리고 철학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현실에 물어뜯긴         청춘을 위로하며
강유정

1975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어교육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국문학)

동아일보 신춘문예 입선(영화평론),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문학평론),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문학평론)

現 고려대·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지금의 20대를 ‘88만원 세대’라고 부르는 비극에는 전 세대들이 겪었던 것 이상의 좌절이 자리 잡고 있다. 1970년대 대학생이 고래를 찾아 동해로 갔다면 지금의 20대, 졸업을 미루고 학생 신분을 연장하는 많은 수연이는, 열심히 미래를 준비했음에도 경제 불황이라는 선고를 받는다. 동해로 가기는커녕 도서관과 인터넷 강의에서 미래를 찾았지만 어째 결론은 더 혹독해 보인다. 88만원 세대는 열심히 노력할수록, 스펙을 쌓아갈수록 점점 더 좁은 문 앞에 선다.

하지만 젊음이라는 것 자체가 이 혼돈을 합리화한다. 그 합리화가 성 앞에 선 작은 개인을 구원해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위안은 될 듯싶다.

신동아 200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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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영화평론가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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