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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술 이야기 ⑥

‘노킹 온 헤븐즈 도어’와 데킬라

천국에 가기 전, 마지막 여행에 동행한 술

  • 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노킹 온 헤븐즈 도어’와 데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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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킹 온 헤븐즈 도어’와 데킬라

데킬라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규모 아가베 밭(왼쪽). 히마도르라고 하는 전문 인부들이 아가베에서 피냐를 만들고 있다.

데킬라라는 상표는 멕시코 할리스코(Jalisco) 주의 데킬라 마을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정 용설란(blue agave)을 이용해 만든 제품에만 사용된다. 데킬라는 술 이름인 동시에 마을 이름이기도 한 것이다. 일찍이 데킬라의 상업적 가치를 인식한 멕시코 정부의 꾸준한 노력 덕분에 지금은 데킬라 명칭의 사용 독점권이 국제적으로 인정된다. 데킬라는 마가리타(Margarita), 선라이즈(Sunrise) 등 칵테일의 기본 술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장기 숙성의 고급 제품들이 속속 출시되면서 스트레이트용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데킬라를 만드는 첫 과정은 8~10년 잘 자라 숙성된 용설란(아가베)을 골라 가지를 쳐내는 것이다. 용설란이라는 이름은 가지 모양이 용의 혀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졌다. 선인장과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가지를 다 쳐낸 아가베는 파인애플과 닮았다고 해서 그 이름도 스페인어로 파인애플이라는 뜻인 ‘피냐’다. 이 피냐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데 이들 전문 인부들을 히마도르(Jimador)라고 부른다. 아가베를 피냐로 만든 다음에는 오븐에 넣고 증기로 찐다. 이 과정을 통해 아가베의 녹말 성분이 당분으로 바뀐다. 이렇게 찐 아가베를 아가베 아사도(Agave Asado)라고 한다. 그 다음, 아가베 아사도를 압축기로 짜서 주스로 만든 뒤 저장통에 일시 저장해 발효 준비를 한다. 발효 과정을 거치며 효모에 의해 아가베 주스 안의 당분이 알코올로 바뀐다. 대부분 상업용 효모를 이용하나 에라두라(Herradura)사 경우에는 천연 효모를 사용하기도 한다.

‘노킹 온 헤븐즈 도어’와 데킬라

오븐에 넣기 전의 피냐(왼쪽). 호세 쿠에르보사의 데킬라 증류기.

발효가 끝난 발효액은 데킬라 제조의 핵심인 증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데킬라는 두 차례에 걸쳐 증류를 한다. 1차 증류를 끝내면 ‘오르데나리오(Ordenario)’라고 불리는 25도 정도의 증류액이 나온다. 오르데나리오를 또 한번 증류한 게 데킬라다. 증류가 끝난 술은 나무통에 저장되어 숙성 과정을 거친다.

데킬라의 다양한 종류

데킬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데킬라의 종류에 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데킬라는 우선 용설란으로만 만들어진 ‘100% 아가베’ 제품, 그리고 용설란 주스와 다른 당(糖)을 섞은 혼합액으로부터 증류한 ‘믹스토(mixto)’ 제품으로 나뉜다. 믹스토 제품은 적어도 51% 이상의 아가베를 포함해야 한다. 100% 아가베 제품은 다시 블랑코(blanco), 레포사도(reposado), 아네호(anejo)의 세가지 등급으로 나뉜다.



먼저 블랑코는 영어로는 ‘white’ 라는 의미인데 흔히 ‘silver’라고도 표현한다. 블랑코는 증류 후 바로 출하하거나, 스테인리스 스틸통(간혹 오크통)에서 30일 이내 기간 저장한 뒤 출하한 제품을 말한다. 이 제품은 데킬라의 기본이 되는 대중적인 제품으로서 스트레이트로도 즐길 수 있지만 대부분 데킬라 베이스의 칵테일에 사용된다.

레포사도는 영어로는 ‘rested’라는 의미로 2개월 이상 나무통에서 저장한 뒤 출하한 제품이다. 아가베의 강한 향이 주를 이루는 블랑코 제품에 비해 레포사도는 순화된 맛으로 감미로운 느낌을 준다.

아네호는 글자 그대로 숙성된(aged) 제품이란 의미다. 아네호는 600ℓ이하의 작은 나무통에서 최소 1년 이상 저장한 뒤 출하한 제품으로 데킬라 중 최고급으로 인정받는다. 오크통에서 장기 숙성된 덕분에 부드러운 나무 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100% 아가베로 만든 아네호 제품은 데킬라 중 최고급품이며 값도 비싸다. 고급품인 만큼 스트레이트용으로 음미하며 칵테일용으로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데킬라 아네호는 몇십년 숙성시키는 위스키나 브랜디와는 달리 오크통에서 3~4년만 숙성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이 이상 나무통에 숙성시키면 데킬라 특유의 아가베 향이 강한 오크통 향에 가려져 특유의 풍미를 잃기 때문이다.

믹스토 제품 역시 100% 아가베 제품과 마찬가지로 블랑코, 레포사도, 아네호로 나뉜다. 다만 믹스토 제품에는 이 세 종류 외에 호벤 아보카도(joven abocado) 라는 제품이 있다. ‘호벤 아보카도’는 ‘young and smooth’라는 의미로 블랑코가 흔히 ‘화이트 데킬라’로 불리는 데에 대비되어 ‘골드 데킬라’로 불린다. 이 제품이 황금빛을 띠는 것은 믹스토 제품의 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카라멜 또는 사탕수수를 혼합해 넣었기 때문이다.

‘벌레가 들어있는 데킬라’는 메즈칼

이처럼 다양한 데킬라 제품은 그 질이나 가격에 관계없이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한층 숙성되고 고급스러운 맛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100% 아가베 아네호 제품을 찾으며, 거칠지만 순수한 향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오히려 블랑코를 즐겨 찾기도 한다. 또 두 취향을 절충한 레포사 역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데 이 데킬라와 비슷한 맛으로 메즈칼(mezcal)이라는 술이 있다(정확한 멕시코 발음으로는 메쓰칼이라고 한다). 실제 많은 사람이 이 메즈칼을 데킬라의 일종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벌레가 들어있는 데킬라’의 정체도 실은 데킬라가 아니라 메즈칼이다. 이번에는 이 두 술의 차이점을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메즈칼 역시 기본적으로는 멕시코에서 용설란으로 만들어지는 증류주라는 측면에서 데킬라와 같다. 그러나 ‘모든 데킬라는 메즈칼일 수 있지만 메즈칼은 결코 데킬라가 될 수가 없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메즈칼은 넓은 뜻에서 용설란으로 만든 증류주의 총칭이다. 그리고 데킬라는 이 중 특별한 용설란으로 특별한 지역에서 생산한 제품에 한정되는 단어다. 메즈칼이란 용어는 일반적으로 데킬라보다 저급한 용설란 증류주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면 데킬라와 메즈칼의 차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멕시코에서 자생하는 136종의 용설란 중 데킬라는 블루 아가베(blue agave)라는 고급 용설란 한 종만을 사용하는 데 비해 메즈칼은 에스파딘(espadin) 품종을 비롯해 여덟 종류의 용설란을 사용한다. 둘째, 데킬라는 블루 아가베의 주산지인 할리스코주 데킬라 지역에서 생산되는 데 비해 메즈칼은 대부분 옥사나(Oaxana)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기타 내수용 제품은 게레로(Guerrero), 자카테카스(Zacatecas), 듀랑고(Durango) 등의 지역에서 생산된다. 셋째, 데킬라는 두 번 또는 세 번 증류하는 데 비해 메즈칼은 한 번만 증류한다. 다만 고급 메즈칼 제품 중에는 두 번 증류하는 것도 있다. 넷째, 용설란을 구울 때 데킬라는 스팀을 사용하지만 메즈칼은 석탄 오븐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메즈칼에서는 강한 훈제향이 느껴진다. 다섯째, 메즈칼에는 구사노(gusano)라는 벌레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은 반면, 데킬라에는 이것을 절대 넣지 않는다. 여섯째, 데킬라에 비해 메즈칼은 대량 생산된다.

‘노킹 온 헤븐즈 도어’와 데킬라

‘노킹 온 헤븐즈 도어’의 한 장면. 병원 식당에 몰래 내려가 데킬라를 마시는 마틴과 루디.

앞서 말한 메즈칼 속의 벌레는 용설란에 기생하는 나방의 애벌레들이다. 스페인어로 벌레를 구사노라고 하기 때문에 애벌레를 넣은 경우에는 술병에 ‘con gusano (with worm)’라고 표기한다. 심지어 두 마리, 세 마리를 넣고 자랑스럽게 이를 홍보하는 제품들도 있다.

메즈칼에 나방의 애벌레를 넣게 된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과거 술의 농도를 정확히 측정하지 못했던 시절,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애벌레를 넣어 만일 썩지 않고 잘 보관되면 술이 충분한 알코올 농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했다는 설이다. 이외에 용설란 처리 과정에서 실수로 묻혀 들어간 애벌레들이 결과적으로 메즈칼의 맛을 향상시켜서 넣기 시작했다는 설, 일종의 정력강장제 또는 남성 마초의식의 하나로 시작되었다는 설(마지막으로 술병을 비운 사람이 벌레까지 먹을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다), 또 순전히 상업적 유인책으로 시작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모든 이론이 그러하듯이 설이 많다는 것은 마땅한 정답도 없다는 뜻이다. 어쩌면 여기서 정답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부연하고 싶은 것은 메즈칼이라고 해서 모든 술에 다 애벌레를 넣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 고급제품들은 애벌레를 넣는 것을 저급한 품질을 숨기려는 상업적 술책으로 격하하면서 일부러 데킬라와 같이 애벌레와 무관한 제품을 만들기도 한다.

‘노킹 온 헤븐즈 도어’와 데킬라
김원곤

1954년 출생

서울대 의대 졸업, 의학박사(흉부외과학)

우표, 종(鐘), 술 수집가

現 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영화 ‘노킹 온 헤븐즈 도어’에 나오는 데킬라는 엘 토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엘 토로는 스페인어로 황소라는 뜻이다. 이 제품은 실제 유럽에서 유통되고 있는데 객관적으로 명품 데킬라에 속하지는 않는다. 등급 역시 색깔로 보아 블랑코에 해당되고 그중에서도 믹스토 타입으로 보인다. 영화의 설정상 이는 당연해 보인다. 값싸고 거친 느낌의 데킬라는 죽음을 기다리는 두 청년의 상황을 제대로 나타내는 상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금과 레몬 안주에서 느껴지는 데킬라의 짜고 쓰면서 시큼한 맛이야말로 그들에게 닥친 현실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무쪼록 병든 황소(엘 토로)의 모습으로 데킬라 한 잔에 위안을 받으면서 천국의 문을 두드린 그들이 구름 위에서 바다에 관해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있길 기원한다.

신동아 200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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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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