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다이하드 3’와 샴페인 동 페리뇽

“나는 별을 마시고 있다”

  • 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입력2010-04-02 20: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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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하드 3’와 샴페인 동 페리뇽
    영화 ‘다이하드(Die Hard)’는 1988년에 첫 편이 소개된 이후 브루스 윌리스를 일약 세계적 액션 스타로 만든 유명한 작품이다. 첫 편의 인기에 힘입어 1990년에 2편, 1995년에 3편, 그리고 가장 근래인 2007년에 4편 ‘다이하드 4.0(Live Free or Die Hard)’까지 개봉했는데 모두 흥행 성적이 좋았다. 영화에서 주인공 존 매클레인은 강력한 악당들과의 대결에서 온갖 고비를 넘기며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그야말로 ‘쉽게 죽지 않는’ 현대판 영웅으로 시리즈 전편에 걸쳐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복수를 주제로, 1편의 연작 성격을 띤 3편이 1편과 함께 가장 재미있는 것으로 손꼽힌다. ‘다이하드’ 3편은 1편을 연출한 존 맥티어넌이 다시 감독을 맡았다. 브루스 윌리스를 중심으로 ‘다이하드’ 시리즈에 처음 얼굴을 내민 제레미 아이언스(테러리스트 사이먼 피터 역)와 사무엘 L 잭슨(주스 카버 역)의 명연기가 작품을 빛낸다.

    ‘다이하드’ 3편은 2편으로부터 7년이 지난 뉴욕시를 배경으로 시작한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뉴욕시 중심부의 한 백화점이 강력 폭탄에 의해 붕괴되는 대형 사건이 발생한다. 이어 뉴욕경찰서에 자신을 사이먼이라고 칭한 한 남자가 폭파 사건의 범인이라면서 연락해온다. 이 남자는 더 이상의 대형 피해를 막으려면 자신과 ‘사이먼이 말하기를(Simon says)’이라는 게임을 해서 이겨야 하는데, 정직(停職) 상태인 형사 매클레인이 게임에 나서야 한다고 조건을 내건다.

    폭발 막으려면 게임에서 이겨라

    영문도 모른 채 술에 찌든 상태로 경찰서에 불려 나온 매클레인은 곧바로 할렘가로 향한다. 거기서 흑인을 모욕하는 문구가 적힌 광고판을 몸에 걸치고 있는 게 사이먼이 제시한 첫 번째 과제였다. 마침 주위에서 농구 게임을 하던 동네 흑인 청년들의 눈에 띄어 매클레인은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는다. 그때 인근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고 있던 주스 카버라는 이름의 흑인이 나타나 매클레인을 구해준다. 주스 역시 백인을 싫어하지만 뉴욕 형사인 매클레인이 죽거나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그러지 않아도 흑인을 괴롭힐 명분을 찾고 있던 백인 형사들에게 공연한 구실을 만들어줄까 걱정했던 것이다.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난 매클레인은 경찰서에 돌아와 사이먼으로부터 강력한 폭탄이 뉴욕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는 통고를 받고 생사가 걸린 게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사이먼이 주스도 게임에 참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남의 일에 괜히 나서서 매클레인을 살려준 벌이라면서 말이다. 주스는 완강히 거부하지만, 매클레인이 할렘가에도 폭탄이 설치됐다고 거짓말하자 어쩔 수 없이 게임에 동참한다.

    첫 번째 게임이 시작됐다. 매클레인과 주스는 사이먼의 수수께끼에 농락당하면서 72번가 지하철역에서 무려 90블록이나 떨어진 월스트리트 지하철역까지 30분 안에 도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악명 높은 뉴욕의 교통정체를 감안하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를 수행하지 못하면 30분 후 월스트리트 지하철역으로 들어오는 열차에 장착된 폭탄이 터지고 막대한 인명피해를 낳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주스와 다른 경로로 지하철 안에 들어간 매클레인은 마침내 열차 내에 설치된 폭탄을 발견한다. 그러나 폭탄을 제거하기엔 시간이 촉박한 나머지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폭탄을 열차 밖으로 내던진다. 이로 인해 열차가 궤도에서 탈선해 전복되지만 다행히 승객들의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매클레인은 FBI 등 국가 정보기관을 통해 사이먼의 정체를 파악한다. 전직 동독 특수부대 장교 출신으로 ‘다이하드’ 1편 마지막에 매클레인에 의해 죽음을 맞은 악당 두목 한스 그루버의 친동생, 사이먼 피터 그루버였다. 사이먼은 이즈음 그의 부하들과 함께 헝가리 출신 전문 테러리스트 타르고(Targo)와 임시 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었다. 사이먼은 다시 경찰에 전화를 걸어 3시간 남짓 후인 오후 3시에 한 초등학교에서 엄청난 양의 폭발물이 폭발할 것이라고 통고한다. 그리고 만일 경찰이 뉴욕시 전체 학생들을 대피시키려는 노력을 하거나 통신 수단을 이용하면 폭탄은 바로 터질 것이라고 위협한다. 그러면서 참사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매클레인과 주스가 20분 안에 인근 공원에서 자신이 낸 수수께끼의 단서를 찾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너무 일찍 터뜨려버린 샴페인

    ‘다이하드 3’와 샴페인 동 페리뇽
    매클레인과 주스는 어쩔 수 없이 사이먼과 수수께끼 게임을 계속한다. 그러는 사이 경찰은 일체의 통신 수단을 사용하지 않은 채 뉴욕시의 모든 초등학교를 수색한다. 사이먼의 노림수에 말려든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채 말이다. 초등학교들을 수색하는 데 경찰력이 총동원되는 바람에 월스트리트 중심부는 치안 공백 상태가 됐고, 매클레인과 주스는 공원에서 사이먼이 낸 수수께끼를 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이먼은 바로 이 기회를 이용해 미리 계획한 대로 타르고 일당과 함께 월스트리트에 있는 뉴욕 연방은행을 털어 1400억달러 가치의 금괴를 빼돌린다.

    우여곡절 끝에 사이먼 일당의 계획을 눈치 챈 매클레인은 그들이 덤프트럭으로 빼돌린 금괴를 추적한 끝에 금괴를 운반하고 있는 유조선에 잠입한다. 한편 사이먼은 해양경비대에게 자신들이 훔친 모든 금괴를 폭파시켜 바다 밑으로 가라앉게 함으로써 사악한 자본주의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겠노라고 밝힌다. 그러나 이 또한 사이먼의 속임수였다. 실은 타르고 몰래 금괴를 어디론가 빼돌리고 유조선 안에는 고철로 가득 찬 가짜 금괴 상자들만 있었다. 타르고는 뒤늦게 이를 눈치 채지만 이미 사이먼에게 포섭된 정부(情婦)의 총에 맞아 죽는다. 매클레인과 주스도 사이먼에게 붙잡혔다가 간신히 배에서 탈출한다. 사이먼의 행방은 다시 묘연해진다.

    매클레인은 바다에서 구조된 뒤 주스의 권유로 별거 중인 아내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던 중 사이먼이 그에게 주었던 아스피린 병에서 그의 행방에 관한 단서를 발견한다. 아스피린 병의 프랑스어 상표에 따라 캐나다의 국경 도시 퀘벡에 간 매클레인은 사이먼 일당이 빼돌린 금괴를 놓고 축하연을 벌이고 있는 현장을 덮친다. 사이먼은 헬리콥터로 탈출을 시도하면서 매클레인을 죽이려고 하지만 오히려 헬리콥터가 폭파하면서 최후를 맞는다. 영화는 매클레인이 아내와 통화하기 위해 공중전화에서 수화기를 집어 드는 장면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한 발포주의 대명사

    시종일관 긴장감이 넘치는 액션영화라 한가롭게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이 나타날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극의 종반부에 매우 특징적인 술 하나가 의미 있게 등장하는 것이 눈에 띈다. 바로 사이먼이 금괴를 탈취한 후 퀘벡의 한 창고에서 부하들과 마시는 샴페인 ‘동 페리뇽’이다. 샴페인은 발포주(發泡酒)의 대명사다. 간단히 말하자면 1차 발효가 끝난 와인을 병에 넣은 뒤 여전히 살아 있는 효모에 의해 2차 발효를 유도함으로써 병 안에서 자연적으로 작은 탄산가스 기포가 형성되도록 한 술이다. 코르크 마개를 딸 때 터져 나오는 특유의 ‘펑’ 소리는 매력적인 거품과 함께 샴페인을 각종 축제의 상징주로 만들었다.

    축하연에서 종종 샴페인의 펑 소리와 동시에 치솟는 거품으로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데, 사실 샴페인은 이런 음주 방법이 어울리지 않는 고급 술이다. 이렇게 단순히 거품 발포용으로 사용되는 술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진짜 샴페인이 아니라 유사 샴페인으로 봐야 할 것이다. 진짜 ‘샴페인’은 근래에 와서 엄격한 원산지 통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오직 프랑스의 ‘샹파뉴(Champagne)’ 지방에서 나는 발포주만을 그렇게 표시할 수 있다. 샴페인이란 술 이름 자체도 샹파뉴의 영어식 이름인 샴페인에서 유래했다.

    영화 ‘다이하드 3’에 나오는 동 페리뇽(Dom Perignon)은 샴페인 회사 중 가장 규모가 큰 모에 샹동(Mot et Chandon)의 최고급 브랜드다. 이 상표는 흔히 샴페인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의 한 수도승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수사 동 페리뇽과 샴페인의 관계는 대부분 잘못 전해진 정보로 인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 페리뇽은 1638년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태어나 베네딕토회 수사가 된 사람이다. 수사로서 그는 줄곧 수도원의 와인 제조를 책임지면서 1715년 사망할 때까지 와인 제조에 공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샴페인 같은 발포성 와인의 개발이나 생산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발포성 와인을 만드는 데 필수 요소인 병 안에서의 재발효(refermentation) 과정이 종종 병 폭발의 원인이 되는 것을 걱정해 이를 예방하는 데 힘을 쏟은 것으로 전해진다.

    학자들에 따르면 샴페인과 동 페리뇽 수사를 연결시킨 것은 훗날 그의 후계자들이다. 수도원의 명성을 높이고자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동 페리뇽에 관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왜곡됐는지는 그가 생전에 포도를 고를 때 포도밭에 대한 선입관을 없애기 위해 포도의 출처를 묻지 않고 맛을 보았는데(blind testing), 그것이 그가 장님(blind)이었다는 이야기로 바뀌어 전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샴페인에도 등급이 있다

    ‘다이하드 3’와 샴페인 동 페리뇽

    영화 ‘다이하드’의 한 장면.

    사실의 진위와 관계없이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고 전설이 또 다른 전설을 만들어 동 페리뇽은 이제 샴페인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제품이 바로 영화에 등장한 샴페인 동 페리뇽이다. 사실 튤립 모양의 맵시 있는 긴 잔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샴페인의 작은 거품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별을 마시고 있다(I am drinking stars!)”고 외쳤다는 동 페리뇽의 전설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샴페인의 유명세에 비해 샴페인의 분류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애주가는 많지 않다. 샴페인은 가격 면에서나 품질 면에서 크게 ①빈티지가 없는 샴페인(non-vintage Champagne), ②빈티지 샴페인(vintage Champagne), ③프리미엄 빈티지 샴페인(premium vintage Champagne)의 3종류로 나뉜다.

    먼저 기본이 되는 빈티지가 없는 샴페인에 대해 알아보면, 전체 샴페인 생산량의 85~90%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보편적인 종류다. 따라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다. ‘전통(classic) 샴페인’으로 불리기도 하고 특정 빈티지의 포도를 사용하지 않고 각기 다른 해에 수확한 포도를 혼합해 사용하기 때문에 다년산 빈티지(multi-vintage) 샴페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상표에 굳이 이러한 내용을 알리지는 않지만 특정 빈티지가 표기되지 않은 것에서 그 종류를 확인할 수 있다.

    샹파뉴 지역의 특성상 좋은 품질의 포도는 4~5년 만에 한 번 정도 생산되기 때문에 해마다 빈티지 샴페인을 만들 수는 없다. 따라서 빈티지가 없는 샴페인은 이러한 환경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법적으로는 한 해에 생산되는 포도 중 적어도 20%는 빈티지가 없는 샴페인용으로 보관해야 한다. 그러나 각 샴페인 회사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양의 포도를 빈티지가 없는 샴페인 생산에 사용하고 있다. 숙성 기간은 법적으로는 최소 15개월이지만 대부분 2년 반에서 3년간 숙성시킨다.

    빈티지 샴페인은 특정 연도에 수확된 포도만을 사용해 만든 샴페인을 가리킨다. 따라서 상표에 포도 수확연도를 표기한다. 전통적인 샴페인에 비해 향이 풍부하고 깊은 맛이 느껴진다. 가격도 더 비싸다. 빈티지 샴페인이 높은 평가를 받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다. ①선택된 좋은 포도밭의 포도를 사용한다. ②비(非) 빈티지 제품에 비해 2~3년 더 숙성시킨다. 빈티지 샴페인의 법적 최소 숙성연한은 3년이지만 보통 4~6년(평균 5년) 숙성시킨다. ③포도 품질이 좋은 해에만 생산한다. ④포도 품종으로는 대부분 최적 품종인 Pinot Noir와 Chardonnay만 사용한다. 비빈티지 샴페인은 Pinot Meunier를 많이 사용한다. 빈티지 샴페인을 만드는 데는 일정한 기준이 있는데, ①그해의 포도 품질 ②그해에 필요한 비빈티지 샴페인의 수요 ③빈티지 연도가 그 회사의 스타일과 맞는지 여부다.

    샴페인 제조사의 자존심, 프리미엄 빈티지

    마지막으로 샴페인 등급 최정상에 프리미엄 빈티지 샴페인이 있다. ‘Prestige Cuvees Champagne’이라고도 불리는 이 샴페인은 각 샴페인 회사들이 자존심을 걸고 생산하는 그야말로 최고급 제품이다. ①기포가 더 작고, 섬세하며 ②향과 맛이 더 우아하면서 복합적이고 강하며 ③뒷맛에 더 여운이 있는 특징이 있다. 프리미엄 빈티지 샴페인이 특별한 것은 가장 좋은 포도밭에서 생산된 최고 품질의 포도만을 사용하고 숙성 기간이 5~8년 정도로 더 길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빈티지 샴페인의 대표 제품으로는 뵈브 클리코사의 라 그랑드 담므(La Grande Dame), 루이 뢰더러사의 크리스탈(Cristal) 등 전설적인 샴페인들이 있으며 동 페리뇽 역시 모에 샹동사의 프리미엄 빈티지 샴페인이다. 동 페리뇽은 첫 빈티지로 1921년산이 1936년에 출시됐다. 이후 계속해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숀 코너리가 주연한 초기 ‘007’ 시리즈에도 자주 등장했다. 1962년 ‘007’ 시리즈 첫 편에서는 악당 닥터 노가 동 페리뇽을 가리키며 “귀한 55년산인데 깨뜨리면 후회할 거요”라고 하자 제임스 본드가 “53년산이 더 낫지” 하며 샴페인 지식을 과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임스 본드의 1953년산 동 페리뇽에 대한 애착은 3편 ‘골드핑거’(1964)에서 또 한번 표현된다. “53년산 동 페리뇽은 비틀스 음악처럼 요란한 술이지” 하면서 말이다.

    최근 ‘트랜스포터’(2002) 등을 통해 새로운 액션 스타로 부상한 제이슨 스태덤이 주연한 ‘뱅크잡(The Bank Job)’(2008)에서도 은행을 털기 위해 금고로 들어간 일당이 우연히 1947년산 동 페리뇽을 박스째 발견하고 거품을 터뜨리며 즐겁게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정작 ‘다이하드 3’에서는 동 페리뇽이 몇 년산인지 알 길이 없다.

    어쨌든 전설의 수도승 동 페리뇽은 샴페인 거품을 하늘의 별로 표현했는데, 오늘날 바로 그 별들이 은막의 별들을 만나고 있는 장면은 호사가들의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없다. 이야말로 별들이 별들을 마시는 참으로 낭만적인 장면들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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