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호

뜨거운 카리브 해변, 마셔라 여인이여, 달콤한 밤이 밀려오네!

‘007 어나더데이’와 모히토

  • 김원곤|서울대 의대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입력2011-02-22 13: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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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카리브 해변, 마셔라 여인이여, 달콤한 밤이 밀려오네!
    ‘007 어나더데이(원명 ‘Die Another Day’)’는 2002년 리 타마호리 감독의 작품으로 007 시리즈 중 여러 가지 면에서 남다른 의미를 가진 영화다.

    우선 이 영화는 007시리즈 중 20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1962년 첫 작품 ‘007살인번호(Dr No)’ 이후 007 영화의 탄생 40주년에 개봉됐다. 또 이 영화는 ‘살인번호’의 줄거리 이후 시간 흐름에서 볼 때 마지막 이야기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2006년 새롭게 소개된 ‘카지노 로얄’은 다시 시간을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간, 말하자면 재부팅을 한 작품이다. ‘007 어나더데이’는 본드 역의 피어스 브로스넌이 007시리즈에 네 번째로 출연한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그밖에 이 영화는 ‘카지노 로얄’ 개봉 이전에는 역대 007 영화 중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흥행 수익을 기록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007 어나더데이’는 한국과는 좋은 인연을 맺지 못했다. 007 영화사상 처음으로 한국이 배경이 됐음에도 일부 내용의 오류와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장면 때문에 영화 안보기 운동까지 일어났다. 대표적인 문제 장면은 미국이 한국 군대의 동원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장면과 불상 앞에서 정사를 벌이는 장면이다.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당시 정권의 대북 유화정책에 익숙했던 젊은 관객층의 반미감정을 자극해 국내 흥행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영화에 대한 긍정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영화는 북한의 동쪽 북청 해안에 3명의 서퍼가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영국 정보국 M16 소속 첩보원 007 제임스 본드(피어스 브로스넌 분)는 무기 거래용 다이아몬드를 중간에서 가로챈 뒤 무기 밀매상으로 위장해 비무장지대 근처의 북한 군사기지로 들어간다. 그의 목적은 무기 거래를 구실로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의 문단선 대령(윌 윤 리 분)을 암살하는 것이었다. 문 대령은 유학파로 옥스퍼드와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한 인재였으나 매우 비틀린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문 대령의 심복 자오(릭 윤 분)의 방해로 암살 계획은 실패하고 만다. 누군가가 자오에게 본드의 정체를 전송해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포로교환 협상으로 풀려난 본드



    본드는 다이아몬드 상자 속에 장치해놓은 폭탄을 터뜨려 간신히 현장을 탈출한다. 폭발 과정에서 다이아몬드 파편들이 얼굴에 박히면서 자오의 얼굴이 손상된다. 곧이어 호버크라프트(Hovercraft·공기부양정)들이 동원된 추격전이 벌어지고 문 대령은 그가 탄 호버크라프트와 함께 낭떠러지 아래 강물에 떨어져 사라지고 만다. 본드도 뒤이어 쫓아온 문 대령의 아버지 문 장군(케네스 창 분)에 의해 체포된다.

    14개월간 혹독한 고문과 수감 생활 끝에 본드는 포로교환 협상으로 풀려난다. 남한과 중국의 정상회담 때 폭탄 테러기도 혐의로 체포된 자오가 교환 대상이었다. 그런데 영국 정보국 책임자 M(주디 덴치 분)은 정보누설 혐의로 본드의 자격을 박탈한다. 영국과 미국 정보부 측은 본드가 고문에 못 이겨 북한 고위층으로 위장해 있던 잠복요원의 신원을 누설해 죽게 했다고 믿고 있었다. 이 때문에 본드의 추가 정보 누설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오를 놓아주며 본드를 빼온 것이다.

    결코 어떤 정보도 누설하지 않았던 본드로서는 과거 자오에게 자신의 신분에 대해 전송해준 것을 포함해 정보국 내에 자기를 음해하려는 배신자가 있다고 확신한다. 본드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M은 본드를 멀리 포클랜드 제도에 가두어 그가 보안에 위협이 되지 않을 때까지 무기한 격리하려 한다. 본드는 포클랜드 제도로 가는 배에서 탈출해 홍콩 해안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배신자 추적을 시작한 본드는 중국 정보요원을 통해 자오가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먼저 자오를 찾기 위해 아바나로 간 본드는 해변에서 아름다운 여인 징크스(할리 베리 분)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그녀는 사실 미국 국가안보국 소속 요원이었으나 본드와 징크스는 그때까지 서로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였다.

    본드는 자오를 추적해 아바나 앞바다의 로스 오르가노스 섬에 있는 유전자치료클리닉(gene therapy clinic)을 찾아간다. 이 클리닉의 실제 정체는 DNA 조작을 통해 한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주는 곳이었다. 한편 징크스도 고객을 가장해 클리닉에 들어가 자오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하나 본드가 먼저 자오를 발견한다. 자오는 미처 자기의 모습을 바꾸지도 못한 채 본드와 징크스의 추격을 따돌리며 헬리콥터로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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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본드가 자오의 목에서 가로챈 목걸이에서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채광된 불법 다이아몬드가 발견된다. 그리고 이 다이아몬드에는 영국 재계의 거물 구스타프 그레이브스(토비 스티븐스 분)의 사인이 새겨져 있었다. 구스타프는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자란 고아로 엔지니어링을 공부했으며 다이아몬드 사업으로 어느 날 일약 세계적인 갑부로 등장한 뒤 수익의 반을 자선 기부한다는 공식적인 프로필 이외에는 알려진 게 없는 의문의 사나이였다. 본드는 런던으로 건너가 펜싱클럽에서 구스타프와 대면한다. 이 장면에서 구스타프의 펜싱 코치 역으로 이 영화의 주제가를 부른 마돈나가 카메오로 출연한다. 본드는 또 구스타프의 측근인 미모의 미란다 프로스트(로저문드 파이크 분)도 처음 만난다. 그녀는 사실 영국 정보국 M16 소속의 요원으로 구스타프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위장 근무 중이었다.

    특수 태양빛으로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 노려

    본드는 구스타프와의 격렬한 펜싱 경기 중에 그에게 자신이 탈취한 다이아몬드를 보여준다. 이미 본드에 대해 알고 있는 구스타프는 본드에게 그의 과학실험을 참관할 기회를 주겠다며 아이슬란드로 초대한다. 그날 M은 몰래 본드를 만나 그의 도움을 요청하면서 007로 복귀시켜 준다.

    아이슬란드 실험 현장에는 마치 얼음으로 만든 궁전과도 같은 숙소 등 관련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본드는 그곳에서 열린 저녁 파티에서 기자로 가장해 와 있던 징크스를 발견하고 반갑게 재회한다.

    이윽고 실험이 시작되고 구스타프는 이카루스라는, 태양빛을 흡수해 필요한 곳에 반사하는 위성을 선보인다. 명목상으로는 곡물 생산에 필요한 태양빛을 어디서건 언제든지 제공해 세계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장치였다.

    한편 자오 역시 얼음궁전에 나타나 구스타프를 은밀히 만난다. 구스타프는 사실 죽은 줄 알았던 문 대령이었다. 그는 쿠바의 유전자치료클리닉에서 가져온 장비를 이용해 구스타프라는 인물로 감쪽같이 위장해 생활해온 것이었다.

    징크스는 얼음궁전 내부를 조사하다 자오를 발견하나 그에게 오히려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레이저로 죽음 일보 직전의 위기까지 몰린 징크스는 때마침 나타난 본드의 도움으로 겨우 구출된다.

    마침내 구스타프가 문 대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본드는 구스타프를 잡으려 한다. 그러나 이때 나타난 M16 요원 미란다는 오히려 본드에게 총을 겨눈다. 그녀는 사실 이중첩자로, 과거 본드가 문 대령과 무기 거래를 할 때 자오에게 그의 정체를 전송해준 것도 바로 그녀였다. 본드가 그토록 찾던 배신자가 그동안 믿고 있던 미란다였던 것이다. 그러나 위기에서 007 특유의 능력으로 탈출에 성공한 본드는 이카루스까지 동원한 구스타프의 공격에도 간신히 살아남는다.

    한편 징크스 역시 구스타프 일당에게 사로잡혀 얼음궁전 내에서 익사할 위기에 처한다. 그동안 본드는 자오와 박진감 넘치는 자동차 추격전 끝에 결국 자오를 죽이고 징크스를 죽음 일보 직전에서 또다시 구해준다. 그동안 구스타프, 즉 문 대령과 미란다는 북한으로 도망간다.

    본드는 징크스와 함께 이런 그를 추적해 북한의 평양 공군기지까지 들어가 구스타프가 탑승한 비행기에 잠입한다. 비행기 내에서 구스타프는 아버지 문 장군에게 그의 실제 목적은 이카루스를 이용해 비무장지대의 지뢰를 모두 폭파해 북한군의 남침로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쟁 강경론에 반대하는 문 장군이 이 계획에 동의하지 않자 구스타프는 아버지를 살해한다.

    이때 본드와 징크스는 구스타프에게 발견되고 미란다까지 합세해 비행기 안에서 그들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진다. 결국 징크스는 미란다를 죽이고 본드는 구스타프를 처리한다. 그리고 본드와 징크스는 구스타프가 작동한 이카루스에 잘못 맞아 추락 위기에 있는 비행기를 아슬아슬하게 탈출한다. 영화는 모든 007 영화의 공식처럼 본드와 징크스의 러브신으로 끝난다.

    여느 007 영화와 다름없이 ‘어나더데이’에도 여러 가지 술이 등장한다. 007의 상징 마티니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샴페인도 빠질 수 없다. 약간의 차이라면 ‘젓지 말고 흔들어서’에 대한 표현 방법이 조금 다르다는 것과 이번에는 샴페인으로 61년산 볼린저를 주문한다는 정도다.

    그런데 007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매우 매혹적인 칵테일 하나가 눈에 띈다. 쿠바를 대표하는 칵테일 중의 하나인 모히토(Mojito)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에서도 이 칵테일은 쿠바를 배경으로 등장한다.

    해변에서 만난 매력적인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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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오를 쫓아 아바나까지 간 본드는 해변에서 모히토를 한 잔 주문해 마신다. 그때 바다에서 막 헤엄쳐 나오는 매력적인 징크스를 발견한다. 본드는 징크스에게 마시고 있던 모히토를 권하고는 그녀에게 물어본다. “모히토가 너무 강하냐?” 그러자 징크스는 어느 정도 수긍하는 표정을 보이며 “시간만 있으면 좋아지게끔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본드가 되묻는다. “얼마나 시간이 있느냐?”고. “내일 새벽까지”가 징크스의 답변이었다. 결국 둘 사이의 관계는 그날 밤 정사로 이어진다.

    모히토에 대한 두 사람의 추억은 본드가 구스타프의 얼음궁전에서 징크스를 우연히 발견했을 때도 잘 표현되고 있다. 파티장의 징크스를 본 본드는 그 자신은 보드카 마티니를 마시고 있음에도 그녀에게 모히토라고 소리치며 옛 추억을 환기시킨다. 물론 모히토라는 칵테일이 007 시리즈를 통해 인상 깊게 소개됨으로써 더욱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지만 모히토는 그전부터 상당한 지명도가 있던 칵테일이다.

    모히토는 럼, 설탕, 라임주스, 소다수, 민트의 5가지 재료로 만드는 하이볼 칵테일이다. 럼은 숙성되지 않은 화이트 럼을 사용한다. 만드는 방법은 먼저 잔에 설탕과 민트 잎, 그리고 라임주스를 넣는다. 그리고 적절한 도구를 사용해 민트 잎을 조심스럽게 찧는다(muddling). 이 과정은 민트 잎에서 부드럽게 즙을 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잎이 찢어질 정도로 찧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다음에 럼을 섞어 천천히 저으면서 설탕을 충분히 녹인다. 마지막으로 얼음과 소다수를 충분히 붓는다. 장식은 민트 잎과 라임 조각으로 한다. 영화에서는 잔 안에 들어 있는 민트 잎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모히토는 카리브해의 정취가 담뿍 담긴 럼을 기본으로 라임과 소다수의 상큼한 청량감과 설탕의 달콤함, 그리고 민트향이 어우러져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칵테일 팬에게 사랑받고 있는 술이다. 모히토의 이런 인기를 반영하듯 변형 모히토 칵테일도 여러 가지 소개되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럼 대신 데킬라를 넣은 멕시칸 모히토(Mexican Mojito)다. 정통 멕시칸 모히토에서는 설탕 대신 시럽을 사용한다. 그리고 알코올 없이 만든 모히토는 버진 모히토(virgin Mojito), 또는 노히토(Nojito)라고도 부른다.

    모히토는 다이키리(Daiquiri), 쿠바 리브레(Cuba Libre)와 함께 쿠바에 연고를 둔 칵테일 중 가장 유명하다. 이 칵테일에 모히토라는 이름이 붙은 것에는 먼저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해 라임을 재료로 해 만든 쿠바의 양념 모호(mojo)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주장으로는 스페인어로 젖은(wet) 또는 약간 젖은(a little wet)을 뜻하는 모하도(mojado), 모하디토(mojadito)라는 단어에서 만들어진 용어라는 것이다. 이 칵테일의 원형이 어느 시점에 만들어졌느냐에 관해서도 16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헤밍웨이의 친필 사인

    모히토 역시 다이키리와 마찬가지로 쿠바와 각별한 인연이 있었던 대문호 헤밍웨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헤밍웨이는 아바나에 머물 당시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 레스토랑에 들러 모히토 칵테일을 즐겨 마셨다고 한다.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는 1942년 개장 이래 줄곧 모히토를 고객들에게 제공해 와 실질적인 모히토 칵테일의 탄생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날 이 레스토랑에는 헤밍웨이가 쓴 ‘My mojito in La Bodeguita, My daiquiri in El Floridita’라는 글과 사인이 담긴 액자가 벽에 걸려 있어 대단한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007 어나더데이’에서 모히토는 아바나의 해변을 배경으로 매우 낭만적으로 등장한다. 본드와 징크스는 이 칵테일을 주고받으며 그날 밤 두 사람의 정사를 암시하는 대화를 이어간다. 이 때문에 인터넷 사이트 일부에서는 모히토를 ‘007이 여자를 유혹할 때 마시던 술’이라고 단순화해 소개하기도 한다.

    칵테일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헤밍웨이의 문학적 중후함이건, 007의 경쾌한 주제 음악이건 이 모든 것이 맛있는 모히토를 한층 맛깔스럽게 만드는 훌륭한 술안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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