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호

한국 정신문화의 뿌리이자 자부심

경북 영주

  • 구자홍|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hkoo@donga.com |

    입력2010-08-02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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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정신문화의 뿌리이자 자부심

    소수서원

    기자는 영주시와 관련해 세 가지 기억을 갖고 있다. 첫째는 ‘교통의 요충지’라는 것이다. 고교 시절 ‘지리’(현재는 사회탐구영역으로 통합됐다) 시험에 자주 출제되던 ‘다음 도시 중 교통의 요충지가 아닌 도시는?’이란 문제에 오답을 내지 않기 위해 열심히 암기한 도시 가운데 하나다. 또 다른 기억은 ‘풍기 인삼’이다. 강화, 금산과 함께 풍기는 대표적 인삼 집산지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는 영주 출신이 연거푸 후배로 들어왔다. 영주와 관련해 이런 기억을 갖고 있지만, 정작 영주를 방문한 일은 없었다.

    7월6일. 녹색관광 취재를 위해 생애 처음 영주를 찾았다. 서울에서 경기와 충청도를 지나 죽령고개를 넘어 경상도 땅에 들어서야 영주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꽤 오래 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서울 서대문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출발해 북영주IC(풍기IC)까지 가는데 2시간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경상도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심리적 거리가 멀게 느껴져서 그렇지, 실제로 가보면 영주는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명물 많은 고장, 영주

    “영주 사과는 전국에서 맛이 좋기로 유명합니다.”

    “풍기 인삼은 또 어떻고요.”



    “선비촌도 전국에서 가장 잘 보존돼 있습니다. 없는 것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영주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선비 가옥을 그대로 본떠 한곳에 모아 조성했습니다. 선비들이 많이 살았던 영주는 선비정신이 깃든 곳이지요.”

    “우리나라 최초 사액서원인 소수서원도 있고요.”

    “부석사도 빠뜨릴 수 없는 우리나라 대표적 문화유산이죠.”

    소백산 자락길 취재를 위해 내려간 취재진에게 영주시청 김제선 문화관광과장과 김영섭 주무관의 영주 자랑은 끝이 없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일단 소백산 연화봉에 올라 소백산 자락을 둘러보기로 했다. 소백산은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에 걸쳐 있다. 단양 방면은 산이 가파른 반면, 영주 쪽은 완만하게 산자락이 펼쳐져 있어 전체 소백산 가운데 상당부분이 영주시 관할이다. 연화봉 인근에 다다르자 철쭉축제로 유명한 산 능선은 녹음으로 짙푸르렀다.

    연화봉에서 바라본 비로봉은 뿌연 안개가 낀 탓에 뚜렷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장대하게 펼쳐진 소백산은 절로 넉넉함을 느끼게 해줬다. 7월 들어 30℃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계속된 날씨였지만 연화봉 정상에서는 에어컨 바람보다 더 쾌적하고 시원한 골바람이 불었다. 10여 분을 머물다보니 시원하다 못해 오히려 춥기까지 했다. 여름 산행에 긴팔 옷을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이유를 알 만했다.

    죽령으로 내려와 소백산 자락길 1구간 가운데 첫 코스인 초암사로 향했다. 초암사를 지나 비로사로 향하는 숲길은 햇빛을 보기 힘들 만큼 나무가 울창하고 자락길 옆 죽계구곡 물소리가 청량감을 더해줬다. 계곡 물소리에 이름 모를 새소리가 어우러져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듯했다.

    문화해설사 권화자씨는 “소수서원에서 초암사를 거쳐 비로사에 이르는 1코스는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며 “비로사로 향하는 길에는 달밭골을 지나게 되는데, 지금도 주민 몇몇이 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고 했다.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

    한국 정신문화의 뿌리이자 자부심

    국보와 보물이 각 5점씩 있는 부석사는 우리나라 문화재의 보고다.

    영주 소백산 자락길은 크게 3구간 총 110㎞ 규모로 조성된다. 소수서원에서 출발해 죽령에 이르는 40㎞가 1구간, 순흥면 배점리에서 단산면 좌석리까지가 2구간(30㎞), 단산면 좌석리에서부터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에 이르는 40㎞가 3구간이다. 1구간은 다시 1코스에서 3코스로 구분되는데, 코스마다 제각각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설이 스며 있다.

    소수서원에서 출발해 순흥향교와 죽계구곡, 초암사에서 달밭골을 거쳐 비로사를 지나 삼가동에 이르는 1코스는 말 그대로 ‘문화생태탐방길’이다. 소백산 자락길 순례가 시작되는 소수서원은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 시초다.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해 온 뒤 조정에 상소를 올려 명종으로부터 소수서원이라는 사액(임금이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그것을 새긴 편액을 내림)을 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소수서원을 방문한 관광객은 누구나 문화해설사로부터 서원의 유래에서부터 서원 곳곳에 자리 잡은 건물의 쓰임새, 각종 문화유적 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다. 문화유적이 많은 영주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문화해설사를 두고 있는 자치단체 가운데 하나다. 외국어 능력을 갖춘 4명의 해설사를 포함해 모두 34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소수서원과 선비촌, 부석사, 소백산 자락길 등 영주 일원의 문화생태관광지에서 관광객들에게 유적과 관광지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줘 관광의 재미를 배가해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다보면, 기왓장 하나, 나무 한 그루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소수서원에서 삼가동에 이르는 소백산 자락길 1구간 가운데 1코스의 길이는 12.6㎞로 3시간40분 정도 소요된다. 2코스는 삼가리에서 삼가호를 지나 금선정과 정감록촌, 희여골과 장수골을 거쳐 풍기온천에서 희방사역으로 향한다. 16.7㎞ 길이로 4시간20분 정도 걸리는데 ‘삶의 지혜와 고뇌가 있는 십승지 과수원길’로 이름 지어졌다. 희방사에서 대강면까지 11.4㎞ 길이의 3코스는 죽령옛길을 통해 죽령을 오른 뒤 충북 단양의 용부원리를 지나 대강면으로 이어져 있다.

    자가용을 이용해 좌우로 굽은 도로를 따라 죽령을 오르다보면 ‘험한 준령이겠구나’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소백산 자락길에 포함된 죽령옛길은 생각보다 험하지 않다. 여행전문가 양영훈씨는 정책정보지 ‘공감’에 기고한 글에서 죽령옛길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죽령옛길은 먼발치서 바라볼 때와 실제로 걸어볼 때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풍기에서 아스라이 보이는 죽령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험산 준령 같다. 하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고갯길이라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편안하고 경사가 완만하다. 숲은 낙엽송 우거진 인공림과 참나무 빼곡한 천연림이 혼재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은 낙엽송이 보기에도 시원스럽다.”

    영주를 찾은 관광객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선비촌과 부석사다. 선비촌은 영주 일원에 흩어져 있는 선비 가옥을 그대로 재현해 한데 모아놓은 곳으로 관람은 물론, 숙박까지 할 수 있다.

    극락으로 가는 길

    선비 가옥에서 하룻밤이라!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자연과 어우러진 전통가옥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특권을 제공하는 곳이 바로 영주 선비촌이다.

    자가용으로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지나 10여 분을 이동하면 부석사에 이른다. 무량수전, 배흘림양식 등으로 널리 알려진 부석사는 눈에 띄는 것이 국보 아니면 보물일 정도로 국가적 문화재의 보고다.

    부석사에 있는 국보로는 제17호 무량수전 앞 석등을 비롯해 무량수전(18호)과 조사당(19호), 소조여래좌상(45호), 조사당벽화(46호) 등 5점이 있고 보물도 석조여래좌상(220호), 부석사삼층석탑(249호), 부석사당간지주(255호), 화엄경판(735호), 오불회괘불탱(1562호) 등 5점이 있다. 각종 문화재를 관람하는 것 못지않게 의미 있는 것은 무량수전에 오르는 것. 그 자체가 ‘극락’으로 가는 길이다.

    문화해설사 권화자씨는 “천왕문에서 무량수전까지의 석축이 아홉 단인데, 구품만다라를 의미한다. 그 아홉 단의 석축을 잇는 석계단의 숫자가 108개로 백팔번뇌를 의미한다”고 했다. 즉 무량수전에 도달하는 것 자체가 백팔번뇌를 극복하고 극락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극락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려하다. 방랑시인 김삿갓도 무량수전 앞 안양루에 선 뒤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시 한수를 지었다고 한다.

    浮石寺(부석사)

    平生未暇踏名區 (평생미가답명구)

    白首今登安養樓 (백수금등안양루)

    江山似畵東南列 (강산사화동남열)

    天地如萍日夜浮 (천지여평일야부)

    風塵萬事忽忽馬 (풍진만사홀홀마)

    宇宙一身泛泛鳧 (우주일신범범부)

    百年幾得看勝景 (백년기득간승경)

    歲月無情老丈夫 (세월무정노장부)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여 있고

    천지는 부평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 영주 부석사(浮石寺) 안양루(安養樓)의 김삿갓 시(詩)

    인터뷰 | 김주영 영주시장

    “소백산 자락길을 전국 최고의 아름다운 길로 가꾸겠다”


    한국 정신문화의 뿌리이자 자부심
    “규모에서 질로, 중앙에서 지역으로,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인위적인 것에서 자연친화적인 것으로 변하는 시대 조류에 가장 걸맞은 도시가 바로 영주입니다. 영주는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곳이지만 그동안 덜 알려진데다, 전국에서 가장 낙후했다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녹색성장시대를 맞아 영주는 발전 가능성이 높은 도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6·2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김주영 시장은 의욕이 넘쳐 보였다. 그는 “한국 전통문화의 멋과 맛,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한문화 테마파크’를 조성해 한국 전통문화의 산업화와 세계화를 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소백산 자락길과 함께 소백산역에서 서천과 구계천을 따라 무섬마을과 소수서원까지 이어지는 Y자형 자전거 탐방로를 조성하고, 국립테라피단지를 조성해 국제적인 산림휴양의 허브로 발전시키겠다는 야심 찬 포부도 밝혔다.

    소백산 자락길을 찾는 관광객에 대한 배려도 남달라 보였다. 김 시장은 “자연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많은 관광객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우회도로와 편의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주에는 사과 인삼 같은 명품 농산물에서부터 부석사와 소수서원 등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은 명소도 많더군요.

    “소백산을 등지고 있는 영주는 고승들이 마지막으로 수행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천년 넘은 고찰이 10여 개에 달합니다. 또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가보시면 알겠지만 선비정신과 선비문화가 깃든 고장입니다. 수도권 집중이 완화되고 균형발전이 이뤄진다면, 영주의 가치는 새롭게 살아날 것입니다. 그동안 낙후했던 것이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될 수 있을 테니까요.”

    -영주는 ‘교통의 요충지’인데 그간 낙후한 게 이해가 잘 안 갑니다.

    “교통의 요충지라는 건 초창기 철도와 도로가 막 생겼을 때 얘기입니다. 경부선을 중심으로 개발축이 형성되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측면이 있습니다. 또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아요. 녹색성장시대를 맞아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개발축이 형성되고 있는데, 영주가 가장 적합한 도시입니다. 적절한 지원과 개발이 가미된다면 멋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만한 곳이 많습니다.”

    -직접 내려와 보니 영주는 서울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더군요.

    “철도교통도 앞으로 더 좋아질 겁니다. 중앙선이 복선화되면 서울서 1시간30분 정도면 올 수 있어요.”

    -더 많은 관광객이 소백산 자락길을 찾도록 하려면 보완해야 할 점도 있겠죠. 좁은 도로라든지, 편의시설이든지….

    “계곡을 따라 나 있는 기존 오솔길의 훼손을 최소화해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편리하게 이용할 방안을 강구할 것입니다. 자락길에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인근에 전용도로를 개설하는 안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소백산 자락길을 걷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의 문화유산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강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안향이 성리학을 처음으로 도입했던 곳이 영주입니다.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으로 통치철학을 마련한 정도전 선생이 태어난 곳도 바로 이곳 영주입니다.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있고요. 부석사를 모르는 국민은 아마 없을 겁니다. 이런 점에서 영주는 한국 정신문화의 뿌리이자 자부심이 담긴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백산의 청정자원을 영주시의 자랑인 찬란한 문화유적과 전통문화와 잘 조화되도록 개발해 전국 최고의 아름다운 길로 가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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