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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햇볕과 달빛이 빚는 사랑의 이중주

‘바캉스 베이비’는 이렇게 탄생한다!

  • 난임전문의 조정현

햇볕과 달빛이 빚는 사랑의 이중주

햇볕과 달빛이 빚는 사랑의 이중주
바야흐로 피서의 계절이다. 온갖 시름 다 내려놓고 복잡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도망치고 싶은 여름이다.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가 돼도 좋을 청춘들에게 여름은 정열을 불태울 기회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모든 부부에게도 뜨거웠던 연애 시절이 있다. 뇌과학적으로 남녀가 첫눈에 스파크를 튀기며 반하는 시간은 단 0.2초…. 물론 남녀가 만나자마자 서로 동시에 끌리는 경우는 마른하늘에 번개가 쳐서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낮다는 말이 있지만, 어쨌거나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사랑에 빠질 때에는 뇌에서 ‘페닐에틸아민(Phenylethylamine)’이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페닐에틸아민 농도가 상승할수록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페로몬, 엔도르핀 등 행복과 쾌감의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돼 눈에 콩깍지가 씌게 돼 있다. 

불행하게도 이성이 마비되는 열정적인 사랑은 길어봐야 900일이면 끝난다는 게 뇌과학자들의 결론이다. 어느 부부에게도 결혼생활 그 자체는 녹록지 않다. 살아온 생활환경과 문화가 다르고, 서로 들키기 싫은 단점들도 함께 살면서 여실히 드러나게 돼 있다. 그렇다고 해서 걱정할 일은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달 모양이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로 바뀌는 것은 달과 지구의 공전에 의해 태양빛에 비치는 달의 형상일 뿐, 실제로 달의 모양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부부 간의 사랑도 상황에 따라 소원해지기도, 혹은 아예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럴 때 피서지에서 부부만의 시간을 보내면 잠시 잊고 있던 사랑의 감정을 되살릴 수도 있다.


임신 확률 높여주는 비타민D

‘바캉스 베이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여름휴가를 보낼 때 만든 아기를 뜻한다. 7~8월이 유독 임신율이 높은 것인지, 여름휴가를 뜨겁게 보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캉스 시즌이 끝나면 산부인과 병원은 임신을 확인하러 오는 여성이 늘어난다. 물론 원치 않은 늦둥이로 울먹이는 여성도 있지만, 여하튼 임신 소식은 난임의사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IVF(시험관아기 시술)을 받고 있는 부부들도 휴양지에서 임신에 성공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바캉스 베이비’는 단순히 현실에서 벗어나서 잠시나마 스트레스와 권태감에서 해방된 기분에 세로토닌과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다량 분비돼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시상하부도 활성화된 결과라 생각할 수 있다.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살짝 귀띔하자면 다름 아닌 ‘뜨거운 뙤약볕’에 비밀이 숨어 있다.
 
먼저 인간의 뇌 시상하부에 대해 얘기하겠다. 시상하부는 우리 몸의 주요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기능을 도맡는 일종의 사령부다. 사실 인간의 몸에 흐르는 호르몬은 인체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일 뿐 아니라 감정 기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교감신경에 지배를 받으면 생식기능이 떨어지고 자율신경계까지 불균형 상태가 되는데, 이와 반대상황이 되면 모든 점에서 활동성이 좋아진다. 상상만 해도 설레지 않는가. 비록 한여름 뙤약볕 때문에 한껏 인상을 찌푸릴지언정 사랑하는 사람과 피서를 떠난다는 것 자체만으로 세로토닌이 듬뿍 분비될 수 있다니 말이다. 현실로부터의 해방감으로 인해 여성의 몸에서는 에스트로겐 분비가 활발해진다.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증가하면 배란 촉진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렇다면 뙤약볕은 임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빛이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하진 않는다. 중요한 건 빛의 밝기다. 형광등의 밝기는 조도를 기준으로 100~400럭스(lux) 정도이지만 햇빛은 3만~10만 럭스나 된다.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하려면 3000럭스 이상이 필요한데, 여름철 강렬한 햇빛은 이 수치를 넘고도 남는다. ‘세로토닌 활성 뇌’가 되면 성욕이 왕성해지고 성감도 남달라진다. 빛은 임신 성공률을 높이는 훌륭한 촉진제인 셈이다. 

난임전문의로서 가임 남녀들에게 “하루에 30분이라도 햇빛 아래 서 있으라”고 당부하고 싶다. 비타민D의 혈중 수치가 높을수록 임신과 출산 성공률이 높고 반대로 유산율은 낮다. 비타민D는 여성의 자궁내막에도 영향을 줘 임신 성공률을 높이고, 조산 확률과 임신 합병증 확률을 낮춘다는 보고도 있다. 그래서 일조량이 많은 여름에는 다른 계절에 비해 임신율이 더 높은 것이다. 다행히 매일 피부를 자외선에 15~30분 노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비타민D가 만들어진다니 임신을 기다리는 부부라면 햇살을 즐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덴마크 코펜하겐 연구팀(2011)에 따르면 비타민D는 남성의 정자 속도와 난자의 착상 능력 또한 좋게 만든다. 하루 종일 책만 읽는 샌님보다 지게꾼의 정력이 훨씬 더 좋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다. 실제로 햇볕을 많이 쬐는 남성은 비타민D가 충분히 합성돼 정력이 더 좋다. 또한 남성도 감정에 따라 수태력이 달라진다. 환경과 상황에 따라 사정하는 정액 속 화학성분이 변한다. 설레는 마음이 강렬한 빛에 더 자극이 되면서 정자생산자극 호르몬의 농도가 높아진다. 

남성의 정액이 배란을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정액 내의 단백질(ovulation-inducing factor·OIF)이 여성의 뇌에 작용해 배란을 일으키고 신경세포 생존과 성장에 관여한다는 것이다. 이 단백질이 여성의 몸에서 혈액을 타고 뇌로 흘러들어가 시상하부를 통해 작용하면 난소에 난자를 배출하라는 신호가 돼 배란유도호르몬(LH)을 빨리 분비하게 만든다는 기전이다. 그 뿐만 아니다. 더욱이 흥분되는 성행위 시 사정하는 정액 속에는 약 2500만 개의 정자가 더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휴양지에서의 황홀한 밤

휴양지에서의 밤은 황홀하다. 어둠 역시 호르몬 분비에 깊게 관여한다. 멜라토닌은 밤에 뇌에서 분비되는 생체 호르몬으로 수면을 유도하고 배란을 앞당긴다. 특히 달빛은 멜라토닌 분비를 부추긴다. 도심에서보다 더 크고 선명한 달을 보면서 깊은 수면에 빠질 수 있다. 인공 조명이 가득한 도시에서는 불면증에 시달리다가도 달빛만 있는 곳에서는 꿀잠을 자게 되는 이유다. 더욱이 휴양지에서는 낮에 햇빛에 상당 기간 노출됐다가 밤에는 멜라토닌이 듬뿍 분비될 터이니 오죽하겠는가. 

결국 ‘바캉스 베이비’는 피서지에서 더 뜨거워진 부부관계 덕분이라기보다는 낮에는 강렬한 햇살에서 세로토닌과 에스트로겐이 다량 분비됐고, 검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달빛에 멜라토닌이 듬뿍 분비돼서가 아닐까 싶다. 

난임부부들에게 둘만의 여행을 권하고 싶다. 아이가 없어서 늘 둘만의 생활이었겠지만, 의외로 성생활에 소원한 경우가 많다. 난임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성생활의 목적이 오로지 ‘임신’이 돼버리는 탓이다. 남성들도 의사가 “오늘 배란일이어서 잠자리를 하세요”라고 권하면 10명 중 2~3명은 “관계를 했지만 사정이 안 됐다”고 얘기한다. 즉 성행위는 감정적인 부분이 지배한다.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면 즐거움이 아니라 숙제가 된다. 아직 여름이 한참 남았다. 더위에 지쳐 서로 데면데면하게 쳐다보지 말고 사랑의 절정이던 그날처럼 손잡고 휴양지로 떠나는 걸 추천한다.


햇볕과 달빛이 빚는 사랑의 이중주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신동아 201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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