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황승경의 Into the Arte

팩트로 보는 영화 ‘고지전’

참혹한 고지전으로 소환한 인간의 야만성

  •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입력2020-06-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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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흘간 24차례 주인 바뀐 백마전투 모티프

    • 탁월한 고지 탈환 묘사, 스펙터클 戰場신

    • 고증 미비, 역사 왜곡 논란…팩트체크 필요

    • 이성적 접근, 고민·사색해야 하는 영화

    [쇼박스 미디어플렉스 제공]

    [쇼박스 미디어플렉스 제공]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으로 시작하는 ‘비목(碑木)’은 국민가곡으로 불린다. 1964년 강원 화천에서 군복무 중이던 한명희(81) 시인은 백암산 기슭을 순찰하다 한 돌무덤을 발견했다. 애처롭게 뒹구는 녹슨 철모 뒤로 6·25전쟁 당시 숨진 병사의 십자가 비목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휴전이 임박한 1953년 5월 중공군은 서울의 주요 전력 공급원인 화천수력발전소(화천댐)를 차지하기 위해 요충지 백암산에 포화를 퍼부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시인은 이름 모를 병사를 향한 벅찬 감정을 시에 담았다. 

    당시는 금강산이 보이는 동부전선 강원 고성에서 황해도 옹진반도가 바라보이는 서부전선 끄트머리까지 전 전선(戰線)에서 고지전이 한창이었다. 이 고지전을 모티프로 재창작한 영화 ‘고지전’(2011)은 그래서 호국보훈의 달 6월에 더욱 생각나는 영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뺏고 빼앗기는 사투 현장에서 전투를 멈출 수 없던 병사들 이야기다.

    전쟁영화 아닌 戰場영화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 영화 ‘고지전’의 한 장면. [쇼박스 미디어플렉스 제공]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 영화 ‘고지전’의 한 장면. [쇼박스 미디어플렉스 제공]

    영화 ‘고지전’은 휴전협정 회담이 한창이던 1953년 여름, 전선 최전방에 위치한 가상의 애록(AERO-K)고지에 포커스를 맞춘다. 장훈 감독은 모두가 아는 6·25전쟁의 시작이 아니라, 처참한 전쟁의 끝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는 장르 특성상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자신의 시야에 맞춰 편집하기에, 관객은 감독의 의도대로 빠져든다. 제작비 100억 원이 든 ‘고지전’은 대작다운 블록버스터 전투신과 배우들의 명연기가 돋보였다. 6개월 촬영 기간 1만4000여 명이 동원되고 4만5000여 발의 총알을 사용한 만큼 고지 탈환 묘사도 탁월하다. 요즘도 영화 전문 채널에서는 빠지지 않는 스펙터클 전장(戰場)영화로 손꼽힌다. 

    일반적으로 참상을 다룬 전쟁영화에서 관객은 ‘기-승-전-감동’을 기대한다.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피어나는 가슴 뭉클한 감동 말이다. 그런데 영화 ‘고지전’은 지극히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휴머니티, 형제애, 전우애를 앞세우는 2000년대 전쟁영화에서 ‘고지전’은 한 편의 연극처럼 많은 물음을 던진다. 따라서 관객은 고민하고 사색해야 한다. 다른 영화처럼 편하게 집중하기는 어려운 편이다. 지나치게 반전(反戰)에 치중하다 보니 실제 6·25전쟁 당시의 객관적 사실에서도 벗어난 부분이 꽤 있다. 헷갈리는 설정에 관객의 호불호도 나뉜다. 감독의 진지한 물음이 부담스러웠을까. 손익분기점이라는 400만 관객에 100만 명 부족해 흥행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증 실수로 인한 설정 오류에 유의하면서 ‘고지전’을 들여다보자. 역사는 영화가 아니니까. 



    반격에 반격을 거듭한 6·25전쟁은 1951년 7월 무렵부터 교착상태를 보인다. 종전(終戰)의 명분을 고민하던 유엔군과 중공군은 미국의 시선을 유럽에 집중시키지 않으려는 소련의 제안으로 기꺼이 휴전회담을 시작한다. 동시에 전면 공세를 펼치던 유엔군과 중공군의 전술은 전선 주변 요지를 탈환하는 고지전으로 전환된다. 개성에서 고성까지 38선을 중심으로 수많은 군인이 죽고 죽이는 고지쟁탈전이 계속됐다. 휴전회담은 159회의 본회담과 765회의 각종 회담을 이어갔다. 

    영화는 회담 줄다리기가 한창이던 1953년 2월 시작한다. 난항에 봉착한 휴전 회담장에서 말실수를 한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 분)는 영창 신세를 면해주는 대신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 악어중대로 차출된다. 그에게는 적과 내통하는 아군을 색출하라는 중차대한 임무가 주어졌다. 앞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악어중대 중대장 시신에서 아군 총알이 발견됐다. 악어중대에서 민가에 보낸 군사우편 중 인민군 편지가 포함된 일도 발생했다. 새로운 중대장 유재호(조진웅 분)를 보좌해 중대에 도착한 은표는 개전 초기 함께 복무한 김수혁 중위(고수 분)를 만나 오랜만에 회포를 푼다. 은표는 2년 동안 180도로 변한 거친 수혁이 낯설다. 또한 악어중대 전체가 적과 내통하고 있고, 상관 살해 사건에도 관련됐다는 혐의를 받는다. 은표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포항철수작전의 진실

    인간은 전쟁을 만들고 전쟁은 인간을 만든다. 영화에서 악어중대 부대원들은 1950년 8월 포항철수작전에 따른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으로 나온다. 퇴각하는 해군상륙정이 승선 인원을 초과하자 신일영(이제훈 분)이 중대원들을 살리기 위해 승선을 요구하는 아군을 무차별하게 쏴 죽였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실제 6·25전쟁 중 포항철수작전은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을 포함해 2만여 명을 무사히 철수시킨 자랑스러운 작전이었다. 당시 상륙정은 4척의 일본 LST(landing ship tank·상륙함)였지만 영화에서는 대한민국 해군 상륙정이 등장한다. 

    영화에서 20대 초반 신일영은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 이등병에서 대위로 빠르게 진급하지만 포항철수작전의 극심한 트라우마로 모르핀중독자가 된다. 악어중대에는 대위 2명(유재호, 신일영)과 중위 2명(김수혁, 강은표)이 배치됐지만 당시 1개 중대에는 소위 중위를 합해 1~2명뿐이었다고 한다. 소위(소대장)가 전장의 선두에서 전투를 지휘하다 보니 일주일을 살아남기 힘들었다. 당시 전장에선 “소대장 3개월이면 환갑을 지났다”고 할 정도였으니 ‘소모품 소위’ ‘하루살이 소위’라는 유행어가 생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소위에서 중위, 대위로 진급한 장교들은 전장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케이스가 많았다. 이 과정을 거쳐 진급한 간부들의 리더십과 애국심은 평가받아야 하지만, 영화에서는 유재호 대위의 무능을 앞세운다. 사실감이 떨어지니 영화 몰입도도 함께 떨어진다. 

    ‘고지전’ 등장인물 중에는 불타는 애국심으로 명예롭게 죽고 사는 군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살아남아 집에 돌아가기 위해 서로 싸우고 죽일 뿐이다. 악어중대 대원들은 사람이 쓰러지고 2초 후 총소리가 난다고 해 ‘2초’라 불리는 명사수(김옥빈 분)를 잡으려 전우의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는 냉혈한 모습도 보인다. 

    물론 감독은 전쟁의 무의미함과 참혹함을 고발하면서 반전을 강조하고 싶었겠지만 관객들은 인간의 야만성에 더 주목하는 듯하다. 일부 관객은 영화 속 군인들을 보며 인간의 본능이 어떻게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지 생각한다. 또 다른 관객은 전쟁터를 누빈 뉴욕타임스 외신기자 리스 헤지스(64)의 “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 같아서 종종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는 말을 떠올린다. 어차피 영화는 맞춤 가공한 예술 장르니 모두 정답이자 오답이다. 

    비록 가상공간이지만 애록고지는 영화 속에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격전지로 투영됐다. 지도상으로 보면 애록고지는 금성전투로 유명한 금성고지(강원 철원군 김화읍)일 가능성이 있다. 고지 주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설정으로 보면 철원 북서쪽 백마전투로 유명한 395고지 전투가, 휴전을 앞두고 벌이는 마지막 공세를 펼치는 대목에선 가곡 ‘비목’의 발상지 화천군 425고지 전투가 유추된다.

    고지전 모티프 금성·백마·화천전투

    영화에서 악어중대는 10사단 3연대 1중대로 지칭되지만, 실제 존재하지 않는 10사단이라는 설정은 괜한 구설이나 명예훼손 가능성을 차단한 것으로 보인다. 휴전을 위한 협상 기간은 6·25전쟁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했지만, 실제 휴전협정 조인식은 15분 만에 끝났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12분 서명을 마친 수석대표들은 아무런 인사도 나누지 않은 채 판문점을 떠났다. 전방에서는 두 시간 뒤인 정오를 전후로 휴전협정 소식이 알려졌다고 한다. 

    6·25전쟁 참전자들에 따르면, 최전방에서 불과 2~3km 후방에 있던 5사단 사단사령부 정보처(G-2) 근무자들도 천막 밖에서 전우들의 환호성을 듣고서야 협정 체결 사실을 알았을 정도다(육군 대령으로 예편한 조현표 당시 중위의 증언, 월간 ‘영카페’ 2014년 7월호 인터뷰). 이후 고지전을 펼친 국군과 중공군은 각각 시신 수습 작업을 했다. 휴전 협정 당시 5사단 36연대 3대대 9중대장으로 강원도 화천에서 고지전을 벌인 이찬식 대위(당시 20세, 육군준장 예편)의 회고에 따르면, 11시 52분 통신병에 의해 휴전 소식을 접하자마자 “적진 가까이 있는 아군 전사자 시체를 속히 수거해 오라”는 명령을 하달받았다고 한다. 당시 고지전을 벌인 중공군도 마찬가지였다. 국군과 중공군은 서로 얼굴을 맞댈 가까운 거리에서 각각 시신 수습 작업을 했다. 아군은 녹색, 중공군은 황색 전투복을 입고 작업했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휴전협정 직후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들뜬 악어중대 대원들이 북한 인민군 중대장 현정윤(류승룡 분)의 중대와 개울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국군 및 유엔군과 교전을 벌인 주력 병력은 북한군이 아닌 중공군이었다. 1·4후퇴 이후 북한 거주 청·장년이 대거 남하하는 바람에 당시 북한군은 병력 충원이 원활하지 않았다. 영화 ‘고지전’이 모티프를 얻은 금성·백마·화천전투에서도 국군은 중공군을 상대했지만 영화에서는 인민군이 등장한다. 

    결국 6·25전쟁 발발 3년 1개월 2일이 흐른 뒤인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포탄 소리가 멎었다. 협정문 제63항에는 휴전협정일 오후 10시 효력이 발효했지만 휴전일 낮 12시경부터는 전선 어느 곳에서도 지상 전투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휴전 소식에 따른 기쁨도 잠시, 이내 상급 부대에서 오후 10시까지 전투를 계속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고지를 탈환하라는 총공세 명령을 내린다. 협정문 제63항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극적 완성도를 위해 장훈 감독은 영화 속 악어중대가 전열을 가다듬고 빼앗긴 고지를 탈환하려는 총공세로 대미를 장식한다.

    전멸한 악어중대, 유일한 생존자 은표

    영화 ‘고지전’에서 최후의 생존자 강은표 역을 맡은 배우 신하균. [쇼박스 미디어플렉스 제공]

    영화 ‘고지전’에서 최후의 생존자 강은표 역을 맡은 배우 신하균. [쇼박스 미디어플렉스 제공]

    결국 영화는 협정 체결 소식을 들은 국군이 12시간동안 인민군에게 빼앗긴 고지를 탈환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맺지만, 육탄 고지전을 벌인 악어중대원 중 생존자는 은표뿐이다. 실제 영화의 모티프가 된 화천 425고지 전투는 중대원 196명이 사흘간 최후의 격전을 벌인 끝에 1953년 7월 23일 새벽 마침내 승리했다. 그러나 160여 명의 중대원이 유명을 달리해 우리를 숙연케 한다. 

    영화 ‘고지전’은 밀려오는 적군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다 산화한 이름 모를 이들이 마치 67년 전 그날처럼 생생하게 살아난다. 영화는 화려한 전장신에 감탄하면서도 인간의 본성에 대해 사색하게 만든다. 동시에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6·25전쟁에 대한 올바른 역사 공부도 필요할 듯하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문화와 사회’(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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