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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이 쓰는 이 사람의 삶

‘정신대 할머니’ 김수해

“불인두로 지지고 자궁까지 도려냈지, 그래도 새벽은 오지 않았어”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정신대 할머니’ 김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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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대 할머니’ 김수해

일본이 사실을 인정하고 제대로 사과를 하는 것, 그것이 김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이다.

솔방울과 솔가리(땔감용 마른 솔잎)를 긁어서 이고 가기 좋을 만큼 단을 묶어 동생들 편에 내려보내고 저는 맨 나중에 따로 한 짐을 크게 해서 지고 내려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런 일을 혼자서 쓱싹 잘도 해냈다. 학교에 간다는 건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그 많은 동생과 밥을 굶지 않고 산다는 것만도 버겁고 바빴다. 어머니가 글자를 조금 알아 받침 없는 글자 몇은 읽을 줄도 알게 됐다. 그걸로 족했다. 오로지 먹을 것만이 문제이던 시절이었다.

“우리 아부지가 청년 때 일본놈을 하나 죽여 돌을 매서 바다에 빠뜨렸다오. 그래서 늘 쫓기는 몸이었제. 배를 타고 늘 강원도다 어디다 바다로만 돌아댕기느라 혼인이 늦었다오. 한 20년 지난 후에 순사들도 갈리고…. 그런 연후에야 육지에 올라와 살 수 있었던 갑소. 내가 아부지 서른일곱 살에 낳은 첫딸이오. 그러니 말도 못하게 귀애했지. 이름자도 특별히 공을 들여서 짓고. 어머니는 아부지보다 스무 살 아래로, 날 낳을 때 열일곱 살이었소.”

고모가 시집가서 구룡포에 살고 있었다. 고모부는 배를 타고 나가 일본, 대만 같은 데서 장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살림이 제법 괜찮았다. 가까이서 어려운 친정을 이모저모 도와주던 그 고모에게 풍병이 났다. 어리지만 걱실걱실 일을 잘하는 수해가 고모집 일을 도와야 한다고 어른들 사이에 공론이 모아졌다.

그래서 열다섯 살 쯤엔 구룡포 등대 근처 고모집에서 살았다. 밥하고 빨래하고 우물물을 길었다. 식모가 하는 일이었지만 박대받지 않았으니 섧지도 않았다. 기질이 천성적으로 밝고 씩씩했다. “그때 고모집 인근에 일본 사람이 하는 점방이 있었소. 과자도 팔고 비누도 팔고 하는 집인데 그 집에 남갑숙이라고, 어데 촌에서 온 아~가 하나 있었소.”



자연 남갑숙과 친하게 지냈다. 나이는 한 살 아래지만 둘은 밤마다 모여서 수도 놓고 돈 벌 궁리도 하고 막막한 미래도 꿈꿔보고 그랬다. “하루는 갑숙이가 오더니 오데 외국으로 돈 벌러 갈 길이 있다고 그래요. 저네 집 주인남자가 그런 말을 꺼내드라 캐요. 부모께 의논하면 못 가게 붙들 게 뻔하다, 그러니 일단 먼저 가서 돈을 벌자. 그래놓고 편지를 하자. 봉투에 든 돈을 받아보시면 부모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나…. 그렇게 우리끼리 의논이 모아졌댔소.”

며칠 후 저녁 먹고 설거지까지 해놓은 후에 남갑숙이네 점방으로 갔다. “일본 남자 둘이 이미 와 앉아 있데요. 낯선 처녀도 두 명 더 있고. 일본 남자 중 하나는 순사 옷을 입었데요. 점방주인 남자가 차비는 자기가 대줄 테니 걱정 말라고 해요. 집에다는 말하지 말고 그냥 가서 나중에 편지로 알리라고 갑숙이가 했던 말을 또 하대요.

입던 옷 입은 채로 신던 신 신은 채로 그날 밤에 배를 탔네요. 내가 머저리니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있나요. 어디 기차역이 있는 곳에 내리니 우리말고 처녀 4명이 더 있데요. 꺼먼 무명 치마에 흰 저고리를 뻘춤하니 차려입고…. 외출한다고 벌건 댕기도 들였대요. 차림새만 봐도 숭악한 촌에서 데려온 처녀들인 줄 알겠데요. 지금 생각하면 거게가 아마 포항쯤 된 거 같애요.”

김 할머니는 이야기를 아주 구성지게 했다. 다 잊었다고 하면서도 어떤 부분은 대화 내용, 배경 설명, 입은 옷들까지 두루 선명하게 기억했다. 구술 여성사(史)에 관심 있는 친구와 나는 할머니가 내준 알록달록한 몸뻬 바지를 입고 할머니가 자랑하는 자석요에 엎드려서 60년 전 내 나라 처녀들이 당한 기막힌 고초의 사연을 통분하며 들었다.

악몽이 시작되다

이야기하다 말고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 오징어를 데쳐오고 채소전을 부쳐왔다. 그리고 먹으라, 먹으라고 권했다. 식사 때는 수북한 밥그릇을 국그릇에다가 팍 엎어서 말아버렸다. “많지 아이 하오. 든든하게 다 먹어놓시오. 먹어야 이야기도 듣고 글씨도 쓰잖것소?” 할머니는 경상도 단어와 옌볜식 억양을 절묘하게 섞어 쓰는 화법을 구사했다. 키가 크고 살성이 희고 정 많고 화통하고 솜씨 좋은 여장부 기질이 언뜻언뜻 내보였다.

그는 처음 본 내게 하염없이 먹으라, 먹으라고 권했다. 오로지 먹는 것만이 절체절명의 가치였던 젊은 날을 지내온 할머니 세대, 사랑을 표현하는 절실한 방법은 밥을 해 먹이는 일밖에 없다. 그러니 한 숟갈이라도 덜 먹어 다이어트를 실천해야 한다는 지금 처녀들과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지 못해 안달하는 할머니들은 승강이를 벌일 수밖에 없다.

이건 압축성장의 대표국인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일까. 모처럼 밥을 국에 덤벙 말아버리는 할머니를 보면서 이야기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 친숙한 동작 때문에 나는 지레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바다 깊이 잠수했던 것도, 고모 집에 얹힌 것도, 부모 몰래 집을 떠난 것도 배부르게 밥을 먹기 위한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다. 그 많은 동생을 배곯려서는 안 된다는 누이로서의 의젓한 사랑이 시킨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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