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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아버지

‘록백꾸’ 몇 판 쳐드려야 “그만 나가 놀아라”|조영남

  • 글: 조영남 가수

‘록백꾸’ 몇 판 쳐드려야 “그만 나가 놀아라”|조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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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에게 상점 건물과 모든 재산을 홀랑 뺏긴 조승초씨는 명당몰이라는 후미진 시골 농가에 밀려와 살던 중 1·4후퇴 때 가족 모두를 이끌고 피난 대열에 섞여 남쪽으로 내려오게 된다. 그런 와중에도 조씨는 좀 남달랐던 듯싶다. 아버지는 한 피난민한테서 잘생긴 말 한 필을 건네받는다. 왜 그걸 주고받았는지 그 이유는 알 길이 없다.

말(馬) 한 마리 끌고 사라지다

우리 일곱 식구는 신막 근처에서 피난열차에 올라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는데, 조승초씨는 식구들을 기차 위에 올려놓은 다음 자기는 말을 버리고 기차를 탈 수 없으니 서울서 만나자는 말(言)을 남긴 채 말(馬) 한 마리만 끌고 홀연히 떠나가시더란다. 그러자 내 누이와 형은 그 아비규환의 와중에 “여보세요, 여러분! 저기 처자식을 버리고 혼자 가는 우리 아버지 좀 잡아주세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급기야 조씨 부인은 막내를 둘러업은 채 “여보! 나도 같이가요!” 하며 따라 나섰단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부모팀과 자식팀으로 갈라져 피난을 가는 괴상한 이산가족이 된다.

물론 며칠 뒤 부모팀과 자식팀이 서울에서 예정대로 상봉을 하게 되지만 이쯤에서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자(DNA)의 실체는 대체로 드러난 셈이다. 자기가 무슨 예수라고 양새끼도 아닌 말 한 마리를, 아내나 다섯 명의 자식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내 아버지의 품성도 그렇고, 자기가 직접 낳은 자식새끼보다 말 한 마리를 끌고 가는 한심한 남편이 뭐가 좋다고 따라나선 내 어머니도 그렇다. 개(犬)판이 아니라 말(馬)판 가족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더욱 기막히는 건 두 분 부모가 자식들을 버리고 떠난 다음 정작 자식들이 올라탄 기차는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는 엄청난 사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서 다시 뭉친 우리 가족의 끼니를 위해 아버지는 목수로 변신하여 미군부대에 취직한다. 손재주가 좋으셨던 모양이다. 그 어려운 시절 우리 형제자매의 양말이나 손장갑은 늘 깨끗하고 멋졌다. 이것은 아버지(어머니가 아니다)가 밤마다 군용 낙하산 천에서 실을 뽑아 우리 형제의 양말이며 다섯 손가락 다 끼우는 장갑까지 일일이 짜주셨기 때문이다.



한편 아버지는 그 판국에도 술주정뱅이로 꽤나 명성을 날리신 모양이다. 피난살이에 속도 상했겠지만 술 살 돈이 없어 미군부대의 의약품용 알코올을 물에 타서 마셨다면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이북에 있을 때도 하필 양조장 주인이 친구라서 허구한 날 술을 퍼마시는 통에 아버지가 늦게까지 안 들어오시는 날이면 누나와 형이 리어카를 끌고 밤길을 헤매며 술 취해 눈밭에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싣고 돌아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란다.

“놀멘 놀멘 하라우!”

미군부대 잡부 노릇이 싫었던지 아버지는 먼저 피난 내려온 친구가 자리잡고 있던 충청도 삽다리로 식구를 몽땅 옮긴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쯤 됐을 때다. 아버지는 미군부대의 잘나가던 목수에서 시골 농부로 변신해서 고구마 감자 밭농사를 짓는 한편 돼지나 닭은 꽤 큰 규모로 키워나갔다. 당시 내가 아버지를 흉내내서 무슨 일이든 열심히 따라할라치면 늘 나에게 입버릇처럼 당부하곤 했다 “놀멘 놀멘 하라우!” 무슨 일이든 서둘지 말고 덤비지 말고 천천히 재미있게 하라는 의미의 이북 사투리였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자서전 비슷한 책을 쓰게 됐을 때 나는 책 제목을 서슴없이 ‘놀멘 놀멘’으로 정했다.

봄이 되면 아버지는 나와 내 동생한테 큰 깡통 하나씩을 들려서 개구리나 뱀 따위를 잡아오도록 부추겼다. 그걸 많이 잡아오면 사탕 한두 알 사먹을 수 있는 현찰이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 철로변을 따라가다 보면 겨울에 동면을 했던 개구리가 기어나와 단체로 선탠하는 광경을 만나게 되는데 우리는 그놈들을 숙달된 솜씨로 무자비하게 낚아채서 깡통에 담아 아버지 앞에 대령하곤 했다. 좀 굵은 개구리나 뱀은 즉석 바비큐나 솥에 푹 끓여 탕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나머지는 잘게 썰어서 닭 모이에 섞어 주었다.

그 무렵 나는 아버지로부터 ‘록백꾸’(화투놀이 육백을 일본식으로 그렇게 발음했다)를 배웠는데 학교를 갔다오면 반드시 아버지를 상대로 록백꾸를 몇 판 쳐드려야 밖에 나가 놀 수 있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니까 내 아버지는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아들한테 화투놀이를 친히 가르쳐서 함께 화투패를 돌렸을 만큼 선천적으로 철이 안 드신 분이었다. 나는 지금도 화투나 카드놀이를 거의 못한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 록백꾸만큼은 선수급이었다.

내 아버지가 철이 안 들었다는 것은 괜히 해보는 소리가 아니다. 아버지는 동네 꼬마들의 장난질 치는 모임에서 실질적인 두목이었다. 우리의 두목님은 장날만 되면 우리더러 말꼬랑지를 여러개 뽑아오라고 시켰다. 아버지가 그걸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연결해서 맨 끝에 일원짜리 빨간 지폐를 달아 길 가운데에 늘어뜨려놓으면 우리는 판자 담장 안에 숨어 담장 틈새로 말꼬랑지 끝을 잡고 조종했다. 말꼬랑지는 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길을 지나던 사람들이 얼씨구나 하며 돈을 집으려고 손을 뻗치는 순간 우리는 담장 안에서 말꼬랑지를 살짝살짝 잡아당겨 돈을 집으려는 사람들을 놀려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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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영남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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