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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여의사 정혜신의 남성탐구

김대중과 최민수의 카리스마

김대중과 최민수의 카리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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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지나친 오해와 의심 또는 지나친 존경의 대상이었다.”

한 기자의 분석대로 그는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극단을 오가는 정치인이었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의 맹목적인 추앙도 있었고, 단지 DJ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알레르기를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기도 했다.

만일 그가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면 그는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권위적이고 전투적이며 권력에 집착하는 인물로 인식된 채 일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한 개인에게 그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필자는 정치적인 이유를 떠나 그가 대통령이 된 게 너무나 다행스럽다. 적어도 지독한 편견이나 맹목적 추앙에서 벗어나 비교적 공정하게 ‘인간 김대중’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형성되는 그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는 기꺼운 마음으로 ‘인간 김대중’이 감당해야 할 문제다. 중매 과정에선 어쩔 수 없이 상대에 대한 부풀림이나 편견이 작동하지만 일단 결혼을 해서 살기 시작하면 각자의 느낌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필자는 두 인물을 분석하면서 분석의 물리적인 양을 맞추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최민수를 분석한 분량보다 김대중 대통령을 분석한 분량이 다소 적었을지 모른다. 어떤 모임에서 두 사람을 소개할 때, 한 사람은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생면부지인 경우 똑같은 시간을 할애해 두 사람을 소개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자료의 신빙성(?) 문제다. 차고 넘칠 만큼 많은 그에 관한 자료는 정치인답게 정교하고 세련되게 포장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취사선택이나 해석의 문제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그의 카리스마에 대한 관찰에는 최민수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필자의 주관적인(그래서 일정부분은 편파적일 수도 있는) 시각이 많이 개입되었을 것이다.

DJ는 83년에 담배를 끊었다. 그전까지는 하루에 세 갑을 피우다가 아예 파이프 담배로 바꾼 스모커였다. 미국 망명 중 흡연자에 대해 사회적 규제가 심한 것을 보고 ‘마음놓고 피우지 못하면 안 피우겠다’는 생각에 금연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김대중은 자신의 금연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기도 하고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자신이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피워 온 담배를 끊은 용기는 뻔히 감옥에 갈 줄 알면서도 ‘나 잡아가시오’ 하는 식으로 긴급조치를 위반하며 박정희에게 저항하던 용기에 못지않은 것이라며 우쭐해 한다.

최민수가 아들을 키우는 일에 애국애족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담배 끊은 일을 독재자에 대항한 용기로 환치시켜 놓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 남자의 비장함(?)에서는 일종의 귀여움마저 느껴진다.

대중 앞에서 징징 울 줄 아는 남자

그가 엄청난 책벌레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가 가진 카리스마의 많은 부분은 책에서 비롯한 것인지 모른다. 토인비나 니체의 사상을 즐겨 읽으면서 동시에 ‘토지’에 등장하는 용이와 월선이의 애절한 사랑에 목이 메어 밑줄을 그을 수 있는 남자는 그리 흔치 않다. 그는 이발을 할 동안에도 마땅히 읽을 만한 것이 없으면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후후 불어가며 여성잡지를 뒤적인다고 한다.

‘뜨거운 얼음’처럼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둘의 통합이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람, 그게 김대중이란 인물이다. 그러나 독특하고 매력적인 그의 카리스마가 정치개혁 등 그의 직무수행에는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는 집권 초기부터 이전의 정치 패러다임을 전혀 바꾸려 하지 않았다. 김영삼 전대통령에 대한 비교 우위를 과시하기 위해서인지 자신의 말솜씨를 보여주는 무대를 만든 게 고작이었다. 그 특유의 자화자찬 병은 여전했고 모든 게 구태의연했다.”

최근 시국에 대한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진단에 99% 동의한다. 그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다만 변화가 있을 때에 변화하지 않고 구태의연을 고집했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물론 그건 바로 인간 김대중의 한계이며, 이건 비판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강교수의 말에 이의를 달아야겠다. ‘정치인 김대중’의 한계라고 했다면 동의할 수 있지만 ‘인간 김대중’의 한계라는 대목은 수긍하기 어렵다. 필자의 생각이긴 하지만 그만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 중에 김대중만큼 유연한 인물은 우리나라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이나 감성적인 측면이 지적 능력이나 냉철한 의사결정 능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지적 능력이 결여된 대통령이 어떤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는 과거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김대중은 지나칠 만큼 충분히 지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감성적 카리스마’는 무한의 파괴력을 가진다.

필자는 DJ가 평생의 민주화 동지인 문익환 목사의 장례식장에서 아들 문성근씨의 손을 잡고 우는 사진을 가지고 있다. 94년 1월19일자 신문에 게재된 사진인데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스크랩해놓은 것이다.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바로 그의 우는 모습이었다. 늘 취재진과 카메라가 뒤따르는 사람이었음에도 남의 눈이나 체면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아이처럼 ‘징징’ 울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성인남자가 자기 안방이 아닌 곳에서 그처럼 ‘징징’거리며 울고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일거수 일투족이 어쩔 수 없이 국민에 노출되는 보스 중의 보스가 울다니. 울고 싶어도 어금니 한번 꽉 깨물고는 참아야지. 그럼에도 그는 문 목사의 죽음 앞에서 아무 생각없이 ‘징징’ 울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출가한 딸들이 다 모였다. 딸 중에 가장 섧게 우는 이는 제일 고생스럽게 사는 딸일 가능성이 많다. 초상집에서는 자기 설움에 우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94년 1월이라면 김대중 당시 총재가 대선에서 패배하고 정계를 은퇴한 지 1년이 된 시점이다. 일생의 꿈을 접고 야인으로 살던 그에게 평생 동지의 죽음은 엄청난 상실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 설움에 울었을 수도 있다.

백번 양보해 그렇다손치더라도 여전히 그의 울음은 아름답다. 자기 부모가 돌아가셔도 남 앞에서는 목놓아 울지 않는 남자들의 겉치레적인 남자다움에 견주어보면 그 유연함은 더 빛난다.

진화된 감성에서 나오는 유머

솔직하게 말하면 그 이전까지 필자에게 ‘김 총재’는 권위적이고 권력에 집착하는 정치가였을 뿐이다. 그의 눈물을 본 후에 필자는 그에 대한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풀리는 재미난 경험을 했다. 그는 그 나이 또래에 비해서가 아니라 남자로서는 흔치않은 감성의 소유자다. 대통령이 된 후에야 알게 된 뛰어난 유머감각도 바로 그의 진화된 감성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97년 대선 때 TV토론 덕을 가장 많이 보았다는 김대중 대통령. 그의 지적 사고능력과 당차원의 전략적 치밀함이 밑거름이 되었겠지만 필자는 그의 진화된 감성이 조미료와 같은 핵심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논리적인 정견 발표와 같은 언어적 요소에 의한 것이 아니고 말하는 이의 얼굴표정, 눈빛, 몸짓 같은 비언어적 요소에 90% 이상 좌우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힘은 논리가 아닌 감성이라는 말도 된다. 그의 논리에 가미된 감성적 힘은 많은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꼼짝없이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게 했는지 모른다.

어린 아이처럼 ‘징징’ 울고 있는 사진이 대통령 재임중의 모습이었더라도 신문에 공개되었을까. 대통령의 권위에 먹칠을 한다거나 구질구질하다는 등의 국가차원(?)의 전략적 이유로 공개를 꺼리는 참모가 있다면, 그는 김대통령의 진짜 매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느낌이 없는 남자를 좋아할 수 없고 좋아할 수 없는 남자를 따를 수는 없는 일이다. 남자의 카리스마란 근본적으로 느낌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고3의 카리스마’를 진화시켜 일흔의 나이에도 여전히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질 수 있는 배우 최민수를 볼 수는 없을까. 9시 뉴스를 통해서 부드럽게 웃을 수 있는 ‘감성적 카리스마’가 내면화된 매력적인 대통령을 가질 수는 없을까.

대통령 김대중의 카리스마는 우리의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배우 최민수의 카리스마는 우리에게 정서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그래서 각기 다른 이유로 대통령과 스타배우의 카리스마는 우리에게 동시에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카리스마의 소유자 두 사람에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요구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이 정신과 의사의 또 다른 사회적 소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신동아 200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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