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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연인 세븐과 잘 만나고 있어요”

‘잘 키운 딸’ 박한별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오랜 연인 세븐과 잘 만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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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연인 세븐과 잘 만나고 있어요”

영화 ‘요가학원’의 박한별.

“엄마의 방치 덕에 잘 컸다”

드라마 종영 후 출연진과 경남 거제도로 ‘이별여행’을 다녀온 그는 “평소에도 극중 이름을 부를 정도로 정든 배우들과 헤어지는 게 몹시 아쉽다”며 “작품이 끝나면 배우들과 관계가 소원해지는데 ‘잘 키운 딸 하나’ 식구들과는 평생 갈 것 같다”고 말했다.

▼ 연예인 친구가 많은 편인가요.

“아는 연예인은 많지만 속마음까지 털어놓는 절친은 유진 언니 정도예요. ‘요가학원’이라는 영화를 같이 하면서 친해졌는데 그때 제게 ‘성경’이라는 것을 알려줬어요. 언니가 결혼해서 자주 보진 못하지만 신앙도 같고 얘기도 잘 통해서 함께 있으면 편해요.”

▼ 배우로 살면서 좌절을 경험해봤나요.



“드라마나 영화에 비친 모습과 원래 제 모습의 간극이 너무도 큰데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왜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지?’ 하는 생각에서 허우적댄 적도 있고, 여배우의 행동지침을 순순히 따르지 않아서 혼난 적도 많아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100% 보여주면 안 된다. 말투와 행동을 어찌어찌 하라’고 소속사에서 가르치면 ‘왜 그래야 하지?’ 했거든요. 한때 이 일을 그만둘까도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저와 안 맞는 일 같아서요.”

▼ 지금도 배우생활이 안 맞나요.

“20대 초중반에는 안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많이 휘둘렸어요. 예를 들어 ‘스타가 되고 싶어? 배우가 되고 싶어?’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저 스스로 답을 찾으려고 혼자 끙끙거렸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런 걸로 고민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를 스타로 보든, 배우로 보든,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건 상대의 몫이잖아요. 그렇게 나를 내려놓으면서 이 일이 편해졌어요. 예전에는 감독님과 미팅할 때 어떻게든 잘 보여서 배역을 딸 목적으로 만났다면, 지금은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요. 그런 저를 믿어주면 더없이 고마운 일이고, 이상하게 봐도 어쩔 수 없죠. 배역이 나와 안 맞는 거니까.”

▼ 배우가 안 됐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아빠는 제가 운동신경이 뛰어나다며 축구선수나 핸드볼선수를 시키려고 했어요. 엄마가 말리지 않았다면 운동선수가 됐을 거예요. 골프선수 아니면 스피드스케이팅선수. 어릴 때 스피드스케이팅을 배웠는데 대회에 나가서 1등을 했어요. 골프는 배운 지 3~4년 됐는데 80대를 쳐요. 악바리 근성이 있어서 한번 꽂히면 끝장을 보죠.”

그의 아버지는 축구선수 출신으로 예산FC 감독을 지낸 박채화 서울시축구협회 부회장이다. 부친이 운동선수를 다루듯이 엄하게 키웠는지 묻자 그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선수들을 대할 때는 호랑이 같지만 제 앞에서는 순한 양이세요. 그래서 제자들이 저만 가면 좋아했어요. 아빠가 유해지니까. 아빠보다 오히려 엄마가 저를 더 강하게 키우려고 했죠.”

▼ 어머니가 엄하신가요.

“아니요. 엄마와 친구처럼 지내요. 저희 집은 각자 플레이예요. 엄마들 대부분이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살지만 저희 엄마는 당신 인생을 즐겼어요. 자유로운 영혼이시거든요. 제가 10년간 한 무용을 갑자기 그만두고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도 뜯어말리지 않았어요. ‘네가 하기 싫으면 못 하는 거지’ 했죠. 공부하라는 소리도 거의 안 했어요. 고등학생 신분으로 술을 마셔도 나쁜 짓이라고 혼내기보다 ‘다 해봐야지’ 하는 식이었어요. 저를 방치해두고 정말 잘못된 점이 있을 때만 바로잡았는데 어릴 땐 그런 엄마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했어요. 날 사랑하지 않나 싶었고요. 근데 지금은 엄마가 이해돼요. 저도 엄마처럼 자식을 키울 거예요. 엄마의 교육방식 덕분에 뭐든 저 스스로 해내려는 자립심이 생겼거든요. 제가 바로 ‘잘 키운 딸 하나’라니까요.(웃음)”

어릴 적 그는 “꿈이 없는 아이”였다. 유년기부터 발레를 배우고 초등학생 시절 리틀엔젤스 단원으로 활동한 것도 무용가를 꿈꿔서가 아니었다. 외동딸이 외골수로 자랄 것을 염려한 모친의 결단이었다. 리틀엔젤스 단원으로 해외와 지방 공연을 다니며 단체생활 경험을 쌓은 그는 자연스럽게 선화예중을 거쳐 선화예고에 진학한다.

‘꿈 없는 아이’의 꿈 찾기

발레와 한국무용으로 10년간 가꾼 그의 외모는 어디를 가든 눈에 띄었다. 중학교 때부터 길거리에서 연예기획사 명함을 받는 일이 다반사였고, 자신도 모르게 인터넷에 돌아다닌 학생증 사진 때문에 ‘얼짱 1호’로 유명세를 치렀다. 그럼에도 연예계의 언저리만 맴돌던 그는 고3 때인 2002년 하이틴잡지 ‘쎄씨’ 표지모델로 정식 데뷔한다. 학적도 연예활동이 자유로운 안양예고로 옮긴다.

“사실 중3 때 ‘서클’이라는 다국적 그룹에 들어갈 뻔했는데 엄마가 목덜미를 잡았죠. ‘노래도 못하는 게 뭔 가수야’ 하고요. 저도 연예계에 관심이 없어서 미련은 없었는데 길거리 캐스팅을 하도 많이 당하니까 이게 운명인가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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