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은 북구신화와 켈트설화, 그리고 선악의 대결이라는 기독교 전통에 뿌리박고 있다. 또한 그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모험과 환상으로 가득 차 있어서 만인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독자들을 즐겁게 해준다. 톨킨의 환상세계에서는 나무들이 살아 움직이고, 괴물들이 말을 하며, 인간보다 작은 종족들이 서로 도우며 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선과 악의 대결을 목도하고, 선의 승리를 경험하며, 세상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서는 정의로운 종족들이 펼치는 삶의 여정에 같이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지적 여행과 모험을 통해, 독자들은 궁극적으로 현실세계의 여러 문제점들을 성찰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톨킨의 중간계는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영어권 사회는 ‘반지의 제왕’을 읽은 사람들과, 이제부터 읽게될 사람들로 나누어진다”(‘선데이 타임스’) “기독교인이 성서를 읽지 않은 것은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판타지 독자가 ‘반지의 제왕’을 읽지 않은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폴 휴즈)는 얘기가 나올 만큼, ‘반지의 제왕’은 중요한 소설이다. 또 현재 페이퍼 백으로 나와 있는 모든 소설들의 10분의 1이 ‘반지의 제왕’에 빚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올 만큼, 그리고 현재까지 나온 모든 판타지소설의 10분의 9가 ‘반지의 제왕’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세계문학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해리포터’의 작가 J.K. 롤링도 13세 때 이 소설을 읽었다고 밝혔는데 그녀의 ‘해리포터’ 시리즈에도 ‘반지의 제왕’의 흔적이 도처에 엿보인다. 예컨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악의 상징인 사우론과 주인공을 도와주는 선한 마법사 간달프, 그리고 마법의 종족들이 살고 있는 중간계는 각각 ‘해리포터’에 나오는 볼트모트와 덤블도어, 그리고 마법의 세계와 서로 긴밀히 병치되고 있다. 다만 포스트모던 시대와 인식의 산물인 ‘해리 포터’에서는―특히 제3권 ‘아즈카반의 죄수’가 그렇지만―절대악으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선한 것일 수도 있다는 포용력과 이중의 시각을 더욱 더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론 ‘반지의 제왕’에서도 톨킨은 마법사 간달프의 입을 빌려, 절대악의 상징인 사우론도 사실은 더 큰 악의 추종자 중 하나일 뿐일 수도 있다고 말함으로써, ‘절대성’의 개념을 해체하고 있다.
‘해리포터’는 결코 푸른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고, 사실은 톨킨과 ‘반지의 제왕’의 탄탄한 전통 속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즉 ‘해리포터’는 쟁쟁한 영국 판타지문학이 산출한 값진 문학적 성과라는 것이다. 영국은 이미 추리소설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에게 데임 작위를 수여했고, 007 영화를 통해 영국을 알리는 데 공헌한 숀 코너리와 로저 무어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영국의 문화적 위상을 전세계에 떨치는 데 공헌한 J.K. 롤링에게도 영국황실은 언젠가 데임 작위를 수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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