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수련 초기에 기감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것도 별로 염두에 둘 일이 아니라고 김교수는 말한다. 기감이 빠른 사람이 있고 느린 사람이 있는데, 빠르다고 해서 결코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김교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기를 느끼는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완만한 상승형으로 꾸준히 기를 느끼는 사람이다. 둘째는 전혀 기를 느끼지 못하다 일정 기간 수련이 쌓이면서 어느날 갑자기 수직상승형으로 기를 느끼게 되는 경우이며, 셋째는 계단식으로 발전해가는 경우다. 김교수는 어떠한 경우에도 나중에는 일정 수준에 도달하게 되며 아예 기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란 없다고 자신했다. 기감이 높다고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기공에 심취하면서 김교수는 점점 머리가 맑아지고 성격까지 바뀌어갔다. 급하던 성격이 차분하게 바뀌었고 따라서 말투까지 변했다. 정신적으로도 점점 안정됨을 느꼈다. “이렇게 좋은 운동을 왜 이제야 발견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김교수는 결국 교수직을 그만두고 기공에 전념할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자 그동안 걱정스럽게 지켜보기만 했던 가족들이 본격적으로 반대의 깃발을 들었다.
“아버지는 제가 기공을 배우러 다닌다니까 저러다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거나 이상한 약 팔러 다니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내도 그랬습니다. 허구한 날 목욕탕에서 사는 남편을 의심스럽게 생각했죠. 그런 거 배워서 어디에 써먹냐고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말로 사표를 써서 학장에게 제출했다. 그런데 당시 학장이던 노진철(작고) 교수는 그 자리에서 사표를 찢어버리더니 대뜸 “협회장과 교수의 차이를 아느냐”고 물었다. 김교수가 교수직을 그만두고 기공에 전념해 뜻을 이룬다면 기공협회장까지 오를 수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기공 발전에 어떤 도움이 되겠냐는 물음이었다. “이왕 하려면 아직 학계의 인정을 못받고 있는 기공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해서 사회에 내놓아라, 그것이 교수로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 아니냐”고 어깨를 두드리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때부터 김교수는 기공의 이론을 세우고 학문적으로 실증·체계화하는 데 전력을 다하게 된다.
1995년 김교수는 한 가지 연구를 실시했다. 기공운동이 과연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해보기 시작한 것. 우선 기공을 습득하는 정도가 빠른 유아들을 대상으로 시험해보았다. 인천시내에 소재한 2개 유치원의 유아 86명을 평소 수업에 잘 적응하는 ‘적응행동집단’과, 주위가 산만해 집중력이 떨어지는 ‘부적응행동집단’으로 나누어 집중력의 정도와 평형성, 협응성(協應性) 등을 측정했다. 그리고 부적응행동집단으로 분류된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2회, 매회 30분씩 3개월간 기공태극 15세(氣功太極十五勢)를 가르쳤다.
3개월 후 똑같은 검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뚜렷한 차이를 나타냈다. 기공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부적응행동집단의 아이들이 적응집단 아이들에 비해 집중력과 평형성이 다소 떨어졌으나, 기공운동을 실시한 이후에는 오히려 역전되어 부적응행동집단 아이들이 적응집단에 비해 모든 영역에서 월등한 성과를 보였다.
검증받기 시작한 기공
김교수는 이같은 연구결과를 1995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기공학술대회에서 ‘기공을 통한 부적응행동 유아와 적응행동 유아의 운동능력 비교분석’이란 제목의 보고서로 발표했다. 기공운동의 성과에 대한 실증적 연구결과가 전무한 실정에서 김교수의 보고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고려대 체육학과 이천희 교수가 크게 관심을 갖고 기공학을 개척해볼 것을 제의했다. 당시엔 기공학이란 용어조차 없던 때라 망설였지만, “협회장이 되는 것보다 교수로서 기공 발전에 기여하라”는 노진철 학장의 호령이 생각나 1997년 고려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게 됐다. ‘국내 최초의 기공학 박사’는 이렇게 해서 2000년 12월 탄생했다.
김교수의 기공학 이론은 그리 어렵고 심오하지 않다. 그는 늘 ‘쉬운 기공’ ‘원리를 아는 기공’을 강조한다. 1990년 기공에 입문한 김교수는 1992년부터 기공운동을 주제로 한 강의에 나섰다. 처음엔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서 주부들을 상대로 기공이론을 설명했고, 점차 공무원, 교사, 중·고등학생, 노인 등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지난 10년간 그의 기공학 강좌를 들은 사람은 10만여 명.
김교수가 강단에 설 때마다 빠뜨리지 않는 내용이 있다. 이제는 유명한 기공원리가 된 곤지곤지, 잼잼, 도리도리, 짝짜꿍. 김교수는 이 네 가지도 중요한 기공운동이라고 강조한다.
“저는 ‘어린이의 몸으로 돌아가자’고 사람들에게 얘기합니다. 알다시피 어린이의 몸은 어른의 몸보다 경직돼 있지 않습니다. 경직되지 않다는 것은 유연하다는 것이고, 몸이 유연할 때 기는 원활히 흐르게 됩니다. 그래서 기가 잘 흐르는 몸으로 만들려면 어린이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고 그대로 따라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특히 영유아 때의 행동은 학습을 통해 만들어진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이고 태초의 행동입니다. 곤지곤지, 잼잼, 도리도리, 짝짜꿍도 그런 행동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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