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는 이따금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가 펼쳐 보이는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기발한 아이디어들 때문에 그런 별명이 따라다니는 게 아닌가 싶다. 지난 7월 그가 서울에 왔을 때 한 여성지 기자가 인터뷰를 하면서 그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천재라고 부르던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는 아이처럼 웃으면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겸손한 천재다. 나 자신을 그렇게 부르지는 않으니까”라고 답했다. 농담으로 받아넘기긴 했지만, ‘천재’라는 소리가 그다지 싫지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필자는 그가 ‘특별한 정신적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라기보다 ‘자기의 천분(天分)을 일찍부터 알고 그것을 계발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지니는 부정적인 측면, 예컨대 심리적 불안정성, 과민성, 모순성 같은 것을 그에게선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베르베르는 1961년 9월18일 프랑스 툴루즈의 한 유태인 중산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프랑수아 베르베르는 나치 군대가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그들의 유태인 사냥을 피해 스페인으로 피신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나중에 미군 기갑부대 공병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한 엔지니어였고, 어머니 셀린은 마치 안네 프랑크처럼 2차 세계대전 동안 줄곧 벨기에의 한 은신처에서 숨어 지낸 피아니스트였다.
어린 시절의 베르베르는 새집 모으기, 볼펜 껍질로 비행기 만들기, 열쇠고리 수집 등을 좋아하던 평범한 아이였다. 공부나 운동, 예술 분야 어디에서도 특별한 재능을 보였던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어려서부터 예술을 즐기는 법을 배운 것은 확실하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6년 동안 피아노를 배웠고,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해서 어른들로부터 장차 화가가 되리라는 소리도 들었다고 한다(이때부터 몸에 밴 예술 취향은 오늘날 그의 삶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 있다. 그는 이따금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형상화하기도 하고,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피아노를 치면서 기분을 바꾸기도 한다).
베르베르의 어린 시절에 아주 특별한 점이 있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일찍 깨달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프랑스의 여류 언론인이자 정치가, 작가인 프랑수아즈 지루는 최근에 낸 자서전 ‘행복’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인생을 그르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실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스무 살 나이에, 좋아하는 거라곤 춤추는 것과 날개 펴고 날아오르는 것이 고작일 아직 어린 나이에 그것을 아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자기의 진정한 천분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어렴풋한 욕망, 막연한 야심, 모순된 혹은 거부된 욕망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가?”
그런 점에서 베르베르는 대단한 사람이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니까 말이다. 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친구들과 장난치고 스포츠를 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것이 더 즐거웠다고 한다.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글을 쓸 때 자기가 진정 행복하다는 것을 아주 일찍부터 알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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