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골의 아침은 상쾌하기만 하다. 집 앞 마당에서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하는 필자의 아들 김규천.
장마가 오기에 앞서 밭마다 김을 매 풀에 치이지 않게 해야 한다. 이때를 놓치면 장마에 밭이 풀밭이 되고, 곡식 곁에 난 풀을 뽑다가 곡식까지 뽑고 만다. 지나다 보이는 대로 맨손으로라도 뽑고, 호미로 찍어내고, 그래도 안 되면 낫으로 치고.
이렇게 밭마다 풀을 매고 다니다 보면 정작 마당에 풀을 맬 겨를이 없네. 이때 풀은 키가 사람만큼 자랐지만 아직 씨는 안 맺혀서 풀 베어 밭에 덮어주기 좋다. 풀이 거름도 되고, 풀이 두둑이 덮이면 새로 풀이 자라지 못하니 풀로 풀도 잡고. 하지만 조심조심. 벌이 있는지 살피며. 욕심 부리며 일을 하다가는 낫이 내 몸을 베기도 한다.
곡식들은 하룻밤 자고 나면 쑥쑥 자란다. 비가 한 줄기 오고 나면 어제오늘이 다르다. 하지에는 호박꽃, 오이꽃, 메꽃이 피고지고 자귀나무에도 꽃이 핀다. 생강 촉이 올라오고 고구마 순이 뻗어난다. 부지런히 심는다고 심었지만 군데군데 빈 곳이 남아 있다. 늦게 심는 고구마, 팥, 조, 기장 심고. 새 먹고 벌레 먹은 곳을 때우다 그만 호미를 던지고 만다. 빈 곳을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날이 더워지면 감자와 밀 음식이 당긴다. 밀은 지난해 농사한 걸 남겨 두었다가 먹는다. 감자는 이맘때까지 남아 있질 않다. 처음 농사를 시작한 때는 감자 나올 때까지 못 기다리겠어 그만 한 상자 사다 먹었다. 캐기 전에라도 한 두 포기씩 후벼다가 먹으면 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밭을 갈지 않으니 감자를 심었던 밭에서는 저절로 감자가 싹터 자란다. 그러니 감자밭에 가지 않아도, 감자 한두 포기 후벼올 수 있다. 이 감자는 껍질이 맨손으로 슬슬 문대도 벗겨진다. 그대로 밥 위에 얹어 찐다. 땀 흘리고 일한 뒤 뜨거운 감자를 후후 불어가며 먹는 그 맛이란….
6월 가뭄 끝에 장마가 밀어닥친다. 여름 장마에 산에는 여름 버섯 돋아나고, 도라지와 더덕꽃이 피어나며, 6월은 7월에 자리를 내준다.
음식은 되도록 싱싱하게, 단순하게
산에 가면서 풀, 나무 하나하나 본다. 이건 이름이 뭘까? 먹을 수 있을까? 망개(청미래) 순이 눈에 띈다. 저것도 먹는다는데…. 어, 굵은 순이 뻗어나온다. 저건 맛있겠다. 사람은 참 가지가지 많이 먹는다. 온갖 열매, 잎, 뿌리. 그뿐인가. 꽃도 먹고 나무순도 먹는다.
우리가 먹는다는 건 무얼까? 먹는 음식도 습관이라는 걸 요즘 절실히 느낀다. 참깨는 볶아서 빻아 깨소금을 만들어 먹는 건 줄 알았다. 이건 습관일 뿐이다. 날참깨를 그냥 먹어본다. 땅콩도 날땅콩을 까서 속껍질째 먹는다. 처음에는 비릿하더니 이제는 즐겨 먹는다. 손이 부르트도록 땅콩 껍질을 까고, 그걸 볶고, 심지어 속껍질까지 까서 먹게 내놓는 그런 수고는 꼭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쓸 에너지를 새로운 세계를 여는 데 써보리라.
또 생각해본다. 무엇을 먹는 걸까? 학교에서 배운 대로 영양을? ‘다섯 가지 식품군에 맞춰 골고루 영양을 섭취해야….’ 과연 그럴까? 밭에서 금방 따온 싱싱한 푸성귀와 며칠을 냉장 보관한 푸성귀가 같은가? 그렇지 않으리라. 그럼 무엇을 먹는가? 농사를 해보니 먹는다는 건 생명력을 먹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 몸에 좋다는 쑥을 보라. 그 놀라운 생명력. 씨앗 하나만 떨어져도, 뿌리 한 조각만 땅에 붙어 있어도 다시 살아난다. 그러기에 약이 될 수 있겠지.
내 손으로 농사하기 전에는, 무얼 먹어도, 그 본디 모습을 상상해볼 생각조차 못했다. 그냥 내 눈앞에 있는 그대로, 내 혀에 느껴지는 대로 먹었지. 지금은 그 본디 모습을 아니 그렇게 안 된다. 풀 하나를 봐도 우리 조상들은, 이건 먹을 수 있고 저건 못 먹는다는 걸, 이건 어디에 좋은 약이 된다는 걸, 어찌 먹으면 좋은지를 어떻게 알게 됐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하다.
나무에서 그 생명을, 봄에는 새 순으로, 가을에는 열매로 얻고. 풀에서 그 생명을 뿌리에서, 잎에서, 열매에서 그리고 꽃에서까지 얻는다. 어떤 생명이건 그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고 우리가 얻는다면 어떻게 먹어야 할까? 되도록 싱싱하게, 되도록 단순하게 먹어야겠지. 그런데 지금까지도 지지고 볶아, 그 본디 모습을 알 수 없게 만들어 먹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농사를 지으려 씨앗을 구하던 때가 떠오른다. 아직까지 농사를 지으시는 시어머니, 맨 처음 살았던 산청 이웃집, 이곳으로 옮겨와 마을 아제들. 이들로부터 볍씨, 콩, 팥, 깨, 옥수수…. 물려받으며 나도 잘 가꾸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데 이렇게 물려받을 수 없는 게 있다. 이건 종자가게서 사야 했다. 고추씨, 토마토씨, 배추씨….
어째서 그런가? 씨를 사서 심기 시작하면서 씨를 잃어버리고 말았단다. 더 많이 열리도록 개량된 씨. 한동안 인기 있던 고추씨 이름이 ‘마니따’였다. 많이 딴다는 뜻이겠지. 이런 씨는 어떤 처리를 했는지, 씨를 받아 이듬해 심으면 제대로 안 되고. 그러니 다시 사서 심고. 종자가게는 점점 커지고. 드디어 다국적 기업이 되고. 덴마크에서 온 시금치씨, 이탈리아에서 온 당근씨, 일본에서 온 양배추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