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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700m 눈밭의 진미 평창 황태

겨우내 얼리고 녹인 노란 속살, ‘하늘’과 ‘사람’의 합작품

해발 700m 눈밭의 진미 평창 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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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700m 눈밭의 진미 평창 황태

황태덕장은 겨울철 평균기온이 영하 10℃를 유지해야 할 정도로 기후조건이 까다롭다. 3월 중순부터 거둬들인 황태는 황태찜이나 황태국(오른쪽 아래)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유혹한다.

덕장의 3분의 1만 채우는데도 한 해 수억 원의 목돈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런데도 명태를 황태로 만들어서 얻는 이익은 20% 정도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박한 편이다. 그래도 유씨는 ‘대한민국 최고의 황태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남달라 보였다. 더군다나 이 일을 하면서 신문, 잡지나 방송 등에 얼굴 사진이 나간 덕택에 6·25전쟁 때에 함께 피란을 내려왔다가 헤어진 뒤로 수십 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던 동생을 찾는 행운도 찾아왔다.

요즘 들어 황태는 여러 가지 명태 중에서도 윗자리를 차지할 만큼 귀물(貴物)이 됐다. 하지만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황태는 ‘망태’라 불리며 북어처럼 홀대를 받았다고 한다. 명태를 바닷가에서 한 달 가량 말린 북어는 겉모양이 막대기처럼 딱딱하고 몸 빛깔도 거무튀튀하다. 게다가 국을 끓이면 황태처럼 진하고도 깊은 맛이 나질 않는다.

반면에 황태는 산간지방의 눈과 바람, 그리고 햇볕을 맞으며 숙성, 건조된 것이다. 기온이 영하 15℃ 이하로 내려가는 밤에는 꽁꽁 얼어붙었다가 낮에는 따스한 햇볕과 맑은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녹는다. 이렇게 한겨울부터 이른봄까지 서너 달 동안이나 얼고 녹기를 되풀이하다보면, 속살이 노랗게 변하고 솜방망이처럼 연하게 부풀어오른 황태가 만들어진다.

황태는 최종 건조상태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건조기간 내내 날씨가 너무 추워서 색깔이 하얗게 된 것은 ‘백태’, 반대로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색깔이 검어진 것은 ‘먹태(흑태)’ 또는 찐태라고 한다. 몸통이나 머리에 흠집이 생기거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은 ‘파태’, 아예 머리가 없어진 것은 ‘무두태’로 불린다. 그리고 내장이 미처 제거되지 않은 것은 ‘봉태’, 덕장에 널려 있다가 땅에 떨어진 것은 ‘낙태’라고도 한다.

제대로 건조된 황태는 꼬리 부분을 손으로 꺾으면 ‘딱’하는 소리를 내며 부러진다. 물론 좋은 황태를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황태는 하늘과 사람이 7대3으로 동업한다’고 할 만큼 기후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겨울철 내내 따뜻한 날이 계속되면 수분이 모두 빠져서 ‘깡태’가 되고, 날씨가 도와주기만 하면 황태 가운데서도 최상품으로 치는 ‘노랑태’가 된다.



황태의 맛은 북어나 명태와 사뭇 다르다. 더욱이 콜레스테롤이 거의 없고, 간을 보호하는 아미노산 등의 유익한 성분이 함유돼 있어 숙취해소의 효과가 탁월하다. 특히 황태는 단백질 함량은 56%로 높고 지방은 2%에 불과한 ‘고단백 저지방 영양식품’이다. 또한 산에서 캔 더덕과 육질이 비슷하고 약효가 좋다고 해서 ‘더덕북어’라고도 불린다.

‘더덕북어’로 불리기도

황태는 대체로 3월 중순부터 4월 초순 사이에 덕장에서 거둬들여 원래 모양을 그대로 살린 통황태, 납작하게 펼친 황태포, 노란 속살을 잘게 찢어놓은 황태채 등으로 포장된다. 싸리나무 줄기로 통황태의 코를 꿰는 작업을 ‘관태’라고 하는데, 몸집이 큰 것은 10마리, 작은 것은 20마리씩 꿴다. 횡계리의 농특산물직매장이나 건어물 상점을 찾아가면 각종 황태 제품을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황태덕장을 찾았으니 본고장의 황태요리를 맛보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침 횡계리에는 황태회관(033-335-5795), 송천회관(033-335-5943) 등 전국적으로 소문난 황태요리 전문점이 몇 군데 있다. 대개 황태는 구이나 찜, 해장국으로 조리된다. 물에 알맞게 불린 황태에다 갖은 양념을 해서 구우면 고들고들한 황태구이가 되고 황태와 콩나물, 버섯 등에다 갖은 양념을 해서 쪄내면 쫄깃하고 담백한 맛의 황태찜이 된다. 그리고 뽀얀 국물에다 솜처럼 부푼 황태살을 넣고 끓인 황태국은 술꾼들의 속풀이에 그만이다.

맛 좋고 영양가 높은 황태국과 황태찜을 맛보고 나면, 횡계리의 모진 삭풍조차 맑고 상쾌하게 느껴진다. 속이 따뜻하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도 죄다 그림 같다. 그래도 눈의 고장 횡계리만의 독특한 정취를 보여주는 풍경은 역시 눈 덮인 황태덕장이다. 먼발치에서 바라만 봐도 겨울날의 스산함과 매서운 추위가 잊혀질 만큼 서정적이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득한 시절에 즐겨 부르던 가곡 ‘명태’(양명문 시, 변훈 작곡)의 노랫말이 입안에 맴돌았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중략)…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 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짜악 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은 남아 있으리라/ ‘명태,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신동아 200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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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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