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는 외부에서 침입하는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등 항원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면역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면역 시스템은 피부와 비강 점막, 눈 점막, 대장 점막 같은 외부의 항원을 퇴치하기 위한 1차 방어선(1차 면역계)와 1차 방어선이 약화되거나 무너졌을 때 발동하는 2차 방어선(2차 면역계)으로 이뤄진다. 2차 면역계는 혈액 속의 항체가 출동해 항원에 대응하는 등 1차 면역계를 돕는 기능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알레르기는 1차 면역계가 약화돼 2차 면역계가 이상 발달한 것을 말한다. 즉 1차 면역계인 피부 방어 시스템이 약해진 상태에서 외부의 항원을 제어하기 위해 2차 면역계인 혈액의 항체가 피부로 다가가면서 과잉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알레르기 증상이다. 알레르기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아토피 질환 역시 2차 면역계의 이상과잉 반응으로 생기는 질환이다.
1차 면역계의 왜곡이 심하지 않던 과거엔 2차 면역계의 과잉활동을 억제하는 스테로이드 제제, 프로토픽이나 엘리델 같은 강력한 소염제와 항히스타민제로 치료했으나, 지금은 1차 면역계의 왜곡이 매우 심해 이런 약물로도 치료가 잘 되지 않고 재발하는 현실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습니까.
“이에 대해 제 의견을 밝히는 것이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면역억제제 계열의 약물을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증상이 좋아질 수는 있으나 지속적으로 사용하다보면 2차 면역계의 과잉반응을 저지하는 데서 더 나아가 1차 면역계인 피부 면역 시스템마저 약화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는 아토피 질환이 잘 낫지 않고 만성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명약이던 것이 지금은 독으로 작용한다고 할까요. 피부과 의사들이 스테로이드 제제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아토피 체질’ 따로 있다
-그렇다면 1차 면역계는 왜 약해지거나 무너지는 걸까요.
“그건 아토피 질환에 유전성이 있느냐 아니면 후천성이냐를 가름하는 대목입니다. 아토피 질환과 관련한 면역계의 왜곡에는 유전적 소인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유전적으로 1차 면역계가 약한 반면 2차 면역계가 강한 가계(家系)에서 아토피 질환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합니다. 한방에서는 이를 ‘아토피 체질’이라고 하는데, 저희 한의원 연구원들의 임상연구에 의하면 아토피 질환에 걸리는 특이 체질이 발견되고 있어요.
유전적으로 아토피 체질을 타고났다고 해서 모두 다 아토피 질환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아토피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조사하면 거의 대부분 아토피 유전 체질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토피 체질을 가진 사람은 당장 아토피 질환에 걸리지 않았다고 방심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김 원장은 아토피 질환자가 요즘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유전적 소인 외에 약물의 오·남용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며,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저는 아토피 질환을 연구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 등 해외로 많이 돌아다녔는데, 1999년 중국의 베이징중의학연구원에서 교환 연구원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인구가 많은 나라인지라 피부 질환을 호소하는 환자가 하루에도 200∼300명씩 피부과를 찾아왔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3개월 동안 눈에 불을 켜고 찾았지만 아토피 환자는 눈에 띄지 않더군요. 소아과를 다 뒤져봐도 없었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하고 머리를 싸맸죠.
2001년엔 일본에서 아토피 질환을 잘 고친다고 소문난 양방병원을 찾아갔는데, 그곳에선 일본 각지에서 모여든 아토피 질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스테로이드 제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제가 만난 일본인 의사는 스테로이드 제제를 아주 기술적으로 사용하면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스테로이드 제제 치료법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봤기 때문에 제 연구에는 그다지 도움을 얻지 못했지만, 한 가지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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