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를 베는 데 한껏 욕심을 부리는 승수(왼쪽). 허리가 아픈지 벌떡 섰다.
그러면서 조금씩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차츰 자기다운 생각을 정리해간다. 자신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보려 하고, 자신을 좀더 사랑하게 된다.
“그전에는 제 모습이 너무 초라했기에 자신에게 자꾸 싸움을 걸었던 거 같아요. 이제는 제 안 좋은 점을 힘들게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제 장점을 찾으려고 해요. 한동안 노는 게 좋았는데 이제는 노는 것도 지겹더라고요. 지금은 놀더라도 특별한 걸 하면서 놀아요. 기타를 친다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을 한다거나, 제 성장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하려고 해요. 공부도 기본적인 거는 해야겠지만 제가 원하는 교육은 나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배우는 것이거든요. 앞으로도 많은 걸 보고 싶어요. 그리고 예전보다 참을성도 많이 생겼고, 이제 저는 방황하지 않아요.”
승수는 우리 집에 머물며 뭐든 다 해보고 싶어 했다. 우리 집에서 잠을 자려면 군불을 지펴야 한다. 군불을 지피자면 나무를 자르는 톱질과 자른 나무를 쪼개는 도끼질을 해야 한다. 남이 대신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잠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승수는 호기심을 갖고 톱질과 도끼질을 열심히 했다. 눈치껏 설거지도 잘 했다. 우리 식구 누구하고도 잘 어울렸다. 승수에게는 선배이자 누나인 우리 큰애와 어울리면서도 작은애가 고스톱을 같이 치자면 이것 역시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도 가르칠 때 행복하다
나는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로부터 뭐든 한 가지라도 배우기를 좋아한다. 어른이건 아이건 상관이 없다. 손님 처지에서는 우리 식구가 필요해서 찾아오지만 우리 식구는 어떤 손님이든 그에게서 뭔가 배울 게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승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이랑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우리 식구가 승수에게 배울 수 있는 게 브레이크댄스였다. 물론 승수가 춤을 잘 추진 않는다. 한 5개월 해보았단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우리 식구 역시 춤을 깊이 배울 생각은 없다. 그냥 춤 동작 하나라도 익히면 좋지 않겠나. 승수를 따라 좁은 거실에서 몇 가지 동작을 배워보았다. 한참을 했더니 무릎이 다 시큰거린다. 주제 파악이 필요한 시점. 승수에게 춤을 좀 보여달라고 했다. 아이가 보여주는 몸짓은 서툴렀지만 그 속에는 억압된 에너지를 발산하고자 하는 몸부림 같은 게 보였다. 춤을 잘 춰야 맛인가.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 자체가 좋을 뿐이다.
“승수야, 우리 서로 가르쳐줄 수 있는 것들은 아낌없이 나누자.”
“하하하, 좋아요.”
승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진다. 꼭 전문가만이 가르치라는 법은 없다. 또한 아이들이라고 배우기만 하라는 법도 없다. 누구든 자신이 잘하는 걸 남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이런 가르침은 청소년들에게 공부 이상으로 자기 존재감과 희열을 주는 또 다른 배움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 식구가 승수한테 배우는 게 있듯 나 역시 승수한테 뭔가를 가르쳐주고 싶다. 집짓기에 대한 간단한 기초 이론. 한옥을 지을 때 수직과 수평을 어찌 보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하니 승수는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나타냈다. 이 이론을 기초로 이튿날 간단한 목공 실습도 했다. 기회가 되면 집짓기를 더 배우고 싶단다.
승수가 우리 큰애에게 기대하는 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사회생활 해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거란다. 이건 한두 마디 말로서 되는 건 아닐 테다. 그리고 틈틈이 우리 큰애한테 태극권도 배웠다. 태극권을 하려고 간단히 몸 풀기를 하는데 승수는 쪼그리고 앉는 걸 잘 못한다. 저런, 관절이 굳었나 보다. 자기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승수말고도 몇몇 청소년이 우리 집에 온 적이 있는데 대부분 비슷하게 몸이 굳었다. 어떤 친구는 아예 쪼그리고 앉아 김매는 자세 자체가 되지를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