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노 소재를 사용한 인조모발.
SF 작가 닐 스티븐슨은 ‘다이아몬드 시대’에서 나노 기술이 일상이 된 시대상을 그렸다. 탁구공만한 소형 감시 비행체, 먼지처럼 떠다니면서 온갖 활동을 하는 나노 기계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물질 변환기, 나노기술을 이용한 전쟁과 테러 등이 그것이다. 그가 말하는 물질 변환기가 바로 클라크의 만능 복제기다.
나노 단위에 속한 작은 원자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첨단 장치들이 잇달아 개발되면서 나노 기술이라는 말은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은나노 가전제품, 나노 화장품 등 나노라는 말이 들어간 제품도 많이 나와 있다. 아직 정체가 모호하긴 하지만, 나노 세균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한 상태다. 하지만 지금 유행하는 이 나노 기술이라는 말은 우리가 나노 단위의 세계를 다룰 능력을 이제 겨우 초보적으로 지니게 됐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물질 변환기는 인류가 보다 더 능률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를 상징한다. 우리는 더 이상 곡류, 채소, 육류를 자연에서 얻을 필요가 없어진다. 연료도 자연에서 구할 필요가 없다. 물질 변환기가 다 만들어내니까. 원자와 분자를 공급하는 컨베이어 벨트만 있으면 된다. 식량을 얻기 위해 자연을 파괴할 필요도 없어진다. 이야말로 꿈의 세계가 아닌가.
반면 물질 변환기가 뜻하지 않게 전염성 바이러스나 세균, 혹은 치명적인 독소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때는 악몽이 현실이 된다. 나노 기계를 인간의 몸속에 넣어 통제하는 세상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
생명의 특성에 관심이 있고 생명을 흉내 낸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은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나노기술의 제안자들도 자기 복제 능력을 지닌 장치를 떠올렸다. 어떤 기능을 지닌 나노 기계가 스스로 자신을 복제하도록 한다면 금상첨화라고 본 것이다. 예를 들어 몸속을 돌아다니다 암 덩어리를 만나면 자체적으로 증식해 그것을 없애는 나노로봇 말이다.
그러나 인류는 자기 복제의 피해를 수없이 겪었기에 또 다른 자기 복제자가 등장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 독감 바이러스 등 자연에 존재하는 바이러스들이 그렇고, 컴퓨터 바이러스도 그렇다. 통제를 벗어난 자기 복제는 극심한 피해를 안겨준다.
드렉슬러가 말하는 본래 의미의 나노기술은 엄청난 사회적 파급 효과를 빚어낼 수 있다. 인간 복제가 미칠 파장은 아마 그것에 비하면 초라할 것이다.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물질 변환기라면 당연히 생물도 만들어낼 수 있다. 인간까지도 말이다.
클라크는 2040년이면 만능 복제기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나노기술에 회의적인 사람도 많다. 나노 기술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만만치 않은 가운데 윤리적 논쟁이 벌어지고 개발 한계를 정하는 규칙까지 논의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불가능하다는 쪽은 원자 수백개를 모아 정교한 분자 모터나 펌프를 만들었다고 치더라도, 양자 불확정성 때문에 그런 장치가 제 기능을 하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 장치가 가동될 때 생기는 열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열 때문에 모터나 펌프가 금방 망가지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