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광주에 있는 허난설헌의 무덤과 시비.
마지막 이르노라/ 원수와 상수는 호호 탕탕/ 두 갈래로 소리치며 흐르는데/ 나의 긴 여로는 가려 보이지 않고/ 바른 도리는 멀고 아득하구나//
미쁜 성품과 고운 마음씨/ 나는 짝 잃은 외톨이/ 백락은 이미 죽었으니/ 천리마를 누가 알아보랴//
사람의 삶은 누구나/ 각각 제 자리가 있는 법/ 바른 마음과 큰 뜻을 품었거늘/ 내 무엇을 두려워하랴//
이제 실망은 슬픔이 되어/ 길게 탄식하노니/ 혼탁한 세상 나를 알아줄 리 없고/ 인심이란 믿을 수 없는 것//
죽음을 물리칠 수 없음을 아노라/ 애석하게 생각지 마라/ 군자들이여 분명히 말하노니/ 장차 나를 본보기로 삼아라.//
굴원이 죽은 뒤로 초나라는 날로 국세가 기울어 수십년 뒤에는 결국 진나라에게 망하고 만다.
조선의 비극시인
사마천은 굴원이 멱라수에 몸을 던지고 100년이 지나서, 한나라의 가생을 이야기했다. 가생이 굴원의 뒤를 이은 중국인이라면, 조선에는 허난설헌이 있다. 나는 허난설헌에게서 굴원의 마음을 보았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이름을 가질 수 없었다.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을 남과 구분하는 행위인데, 난설헌은 ‘난설헌’이라는 당호말고도 ‘초희’라는 이름과 ‘경번’이라는 자(字)까지 가지고 자신의 모습을 지키며 살았다.’
허미자 선생은 허난설헌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허난설헌 연구서를 시작한다. 난설헌은 굴원이 맛본 좌절을 고스란히 품고 태어난 여인이었다. 난설헌의 조선은 어찌할 수 없는, 넘을 수 없는 좌절의 벽이었다. 여자는 글을 배워서 안 된다는 사대부의 세상에서 난설헌은 어깨 너머로 글을 익히고 배웠다.
조선의 여자로 태어난 딸의 재능을 안타까워하던 아버지 초당 허엽은 일찍이 영민한 딸의 불행을 짐작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자가 글을 읽으면 팔자가 세다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난설헌의 오빠인 하곡 허봉은 누이 난설헌으로 하여금 자신의 글벗인 손곡 이달에게 시를 배우게 했다. 그녀는 학문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당대 석학이던 아버지와 오빠들의 책을 모조리 읽고 외워 스스로 시세계의 지평을 넓혔다.
난설헌의 스승인 손곡 역시 좌절한 조선의 지식인이었다. 그의 울분은 서자로 태어난 신분에서 기인한다. 양반이 첩에게서 얻은 자식인 서자는 뛰어난 재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널리 쓰이지 못했다. 그는 재능이 뛰어나서 한리학관(漢吏學官)이 되었지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일정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방탕하게 살았다고 한다. 이 손곡을 품어준 곳이 바로 난설헌의 집안이었다. 스승의 이러한 기질이 난설헌에게도 전해졌을 것이다.
좋은 집안에서 아버지와 오빠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공부하고 시를 짓던 난설헌의 불행은 안동 김씨 집안의 성립에게 시집을 가면서 시작됐다. 뛰어난 재능의 아내를 맞은 김성립은 어찌된 일인지 밖으로만 나도는 난봉꾼 같은 행태를 보였다. 사람들은 그가 아내의 뛰어난 재능에 질투를 느낀 것이라고 숙덕거렸다. 달콤한 신혼을 꿈꾸었을 젊은 난설헌에게는 한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제비는 처마 비스듬히/ 짝 지어 날고,/ 지는 꽃은 어지럽게/ 비단옷 위를 스치는구나/ 동방에서 기다리는 마음/ 사뭇 아프기만 한데/ 풀은 푸르러져도 강남에 가신 님은/ 여지껏 돌아오시질 않네.//
굴원이 변방에서 회왕의 부름을 기다리면서 님에 대한 그리움을 ‘사미인곡’으로 노래했다면, 난설헌은 못난 남편을 기다리며 시를 짓는다. 굴원의 님은 왕의 은유지만, 난설헌의 님은 직접적인 현실이다.
조선의 고질적인 고부갈등까지 겹치면서 난설헌의 몸과 마음이 병들기 시작하고, 아낌없이 사랑한 아들과 딸을 연이어 하늘나라로 보내야 하는 부모의 한까지 마음에 품으니, 난설헌의 일생이 28년으로 짧은 것을 건강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당대 명문장 집안에서 태어나 탁월한 재능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문집을 간행한 시인 허난설헌. 나는 그녀를 여성시인이라 부르지 못한다. 조선시대에 여성으로 태어나 가슴 깊이 한을 새겼을 시인을 훗날 다른 시인이 여성시인이라 부르면 안 될 일이다. 나는 그녀를 굴원의 대를 잇는 위대한 ‘조선의 비극시인’이라 부른다.
지상으로 귀향 온 선녀
그녀는 대선배 굴원처럼 신화, 신선의 세계를 노래한 시인이다. 중국 시인 주지번은 난설헌의 시집에 머리말을 쓰면서 그녀를 ‘봉래섬’을 떠나 인간세계로 우연히 귀향 온 선녀라고 소개하고, 그녀가 남긴 시들은 모두 아름다운 구슬이 됐다고 했다. 천재로 태어난 조선의 여인, 현실에 좌절하고 고통 받은 눈물은 난설헌 시의 구슬이 되었고, 당대 중국 선비들은 난설헌의 시집을 허리에 차고 다니며 읽었다고 한다.
난설헌의 시에는 신선과 꿈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현실에 대한 좌절과 분노가 터져 나와 꽃봉오리로 피어난 것이다. 이 꽃봉오리에 신선이 노닌다. 그것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다. 자신의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울분의 마음이 지평을 넓힌 것이다.
어젯밤 꿈에 봉래산에 올라/ 갈파의 못에 잠긴 용의 등을 탔었네/ 신선들께선 푸른 구슬지팡이를 짚고서/ 부용봉에서 나를 정답게 맞아주셨네/ 발 아래로 아득히 동해물 굽어보니/ 술잔 속의 물처럼 조그맣게 보였어라/ 꽃 밑의 봉황새는 피리를 불고/ 달빛은 고요히 황금 물동이를 비추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