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토 오브리옹 지하 셀러에 있는 제퍼슨 흉상.
샤토 오브리옹은 품질만큼이나 뛰어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유명세가 유럽 뿐 아니라 대서양을 넘나드는 오브리옹은 일찍이 프랑스 밖에서 먼저 명성을 얻었다. 샤토 오브리옹은 보르도의 쟁쟁한 라이벌 샤토 마고나 샤토 라투르가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프랑스 최고의 와인이었다. 1663년 영국 수필가 사무엘 피프스는 일기에 “내가 한 선술집에서 ‘호 브라이언’이란 와인을 마셨는데, 그건 전에 마셔보지 못한 훌륭한 그리고 아주 개성 있는 맛이었다”고 적었다. 영국의 계몽사상가 존 로크는 1677년에 샤토를 방문해 당시 영국 귀족사회에서 인기가 넘쳤던 오브리옹의 실체를 확인하려 했다. 오브리옹의 인기는 대서양을 건너갔다. 오브리옹은 5대 샤토 중에서 가장 먼저 미국에 수출됐다. 1787년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 제퍼슨이 셀러를 방문했으며, 200년 뒤 그의 동상이 셀러에 세워졌다.
중세 귀족의 별장으로 널리 애용된 샤토는 가문의 부침에 따라 사고 팔렸다. 오브리옹 역시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1801년에는 한때 유럽 외교무대를 주름잡았던 프랑스 외무부 장관 탈레랑의 손에 들어갔다. 3년 만에 큰 차익을 남기고 팔았지만, 그가 소유하는 동안 오브리옹이 외교에서 참기름 구실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근거 없는 소문들이 오늘날 오브리옹의 판타지를 강화한다. 탈레랑이 당대 최고의 요리사 카렘과 손잡고 오브리옹과 요리의 환상 궁합을 무기로 빈 회의에 참석한 각국의 외교관들을 녹였다는 일화가 그중 하나다. 어쨌거나 빈 회의 결과 프랑스 국토가 예상보다 넓어졌다.
1935년에 미국인 클라렌스 딜롱이 오브리옹을 인수한 이후 딜롱 가문이 계속 소유하고 있다. 클라렌스는 월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은 금융인이다. 그의 아들은 케네디 시절 재무장관을 역임했다. 현재의 오너는 클라렌스의 외증손자이자 룩셈부르크 왕자인 로버트. 오브리옹의 유명세는 영화에도 나온다. 톰 크루즈 주연의 ‘야망의 함정(The Firm)’에도 등장하고, 한국영화 ‘작업의 정석’에서는 여성을 유혹하는 도구로 쓰인다.
오브리옹은 눈을 감고도 찾아낼 수 있다. 5대 샤토를 섞어놓아도 오브리옹은 샤토 이름이 양각된 데다 병 모양이 남달라 손으로 만져보면 쉽게 골라낼 수 있다. 오퍼스원은 보르도 표준 병에 담는다.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오브리옹을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오브리옹은 보르도 1등급 와인 중에서 100점을 가장 많이 받았다. 오브리옹의 유일한 단점은 비싸다는 점이다. 요즘 환율대로라면 수입 원가만 해도 100만원에 육박한다. 그런 면에서 와인은 이미 럭셔리다.
반면 오퍼스원이 등장하기 전까지 미국 와인은 그저 그런 와인이 대부분이었다. ‘보물섬’으로 유명한 영국 작가 스티븐슨의 신혼여행 이야기인 ‘실버라도 무단점유자(The Silverado Squatters)’를 읽어보면 과거에 나파가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여행 시기는 1880년이다. 제3장 ‘나파 와인’ 대목에서 작가는 나파의 환경을 자세히 기술했다. 작가가 임시로 묵었던 공간은 마야카마스 산맥의 세인트헬레나 산 어깨 부분에 버려진 한 광산 캠프. 와인애호가였던 작가는 나파 와인이 실험적인 수준에 불과하다며, 캘리포니아 와인의 저급한 이미지를 감추고 스페인산이라고 허위 라벨을 붙이는 행태를 목격했다고도 적었다. 작가는 슈램스버그(Schramsberg winery)를 방문했는데, 이 양조장 웹사이트를 보면 자세한 내용이 기술돼 있다.
나파밸리의 환골탈태
초라한 과거를 지닌 미국 와인산업은 두 인물을 통해 크게 성장한다. 로버트 몬다비와 로버트 파커다. 파커는 와인 평가에서, 몬다비는 와인 양조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몬다비는 소박한 식탁 위에 와인 한 병만 올려도 분위기가 금세 좋아진다는 와인계의 오랜 믿음을 신봉했다. 2008년 5월, 94세로 작고한 로버트 몬다비의 부고 기사를 쓴 프랑크 프라이어는 ‘뉴욕타임스’에 “그는 훌륭한 와인(fine wine)은 좋은 생활에 절대 필요한 부분이라고 믿었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훌륭한 와인’이란 주관적인 것이다. 와인거래상들은 보통 100달러 이상의 와인을 가리킨다고 홍콩의 와인가게 BBR 대표 니콜라스 페냐가 말했다. 코카콜라와 벌크와인으로 유명한 미국에서도 좋은 와인이 나올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런 와인이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고 나아가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고 믿었던 몬다비는 52세 때 집념을 불사르며 나파밸리에 양조장을 세웠다.
오늘날 나파밸리는 캘리포니아의 핵심 지역이다. 과학적 분석과 기술을 통해 환골탈태했다. 포도를 재배하는 데 있어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이 드러났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온화한 태양이 가끔은 포도를 태워버릴 기세로 뜨겁게 내리쬔다. 포도는 적당한 일조량 속에선 오랜 기간에 걸쳐 천천히 익어야 고유의 특성이 와인에 묻어난다. 이에 일부 고급 생산자들은 시행착오 끝에 서늘하게 오랫동안 익어가는 포도밭을 발견했다. 그래서 나파밸리는 양조가들에게 엘도라도 같은 곳이다. 여기에서 보르도 최고 와인을 능가하는 고급 와인들이 태어나고 있다.
오퍼스원이 이러한 와인에 길을 제공한 것이다. 1979년에 첫 빈티지를 선보인 오퍼스원 이후로 많은 애호가가 전 재산을 양조장에 투자해 최고급 와인생산 붐을 이룬다. 일단의 애호가가 가격에 상관없이 열광하는 와인의 카테고리를 ‘컬트 와인(Cult wine)’이라고 하는데, 오퍼스원은 이런 컬트 와인 탄생에 공헌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와인으로는 1990년부터 시판되고 있는 할란 에스테이트, 1992년부터 출시된 스크리밍 이글이 있다. 스크리밍 이글은 미국의 최고가 와인으로 유명하다.
오퍼스원에서는 미국의 힘과 프랑스의 우아함이 느껴진다. 데뷔한 이후 미국 와인으로는 처음 50달러대에 거래되는 신기록을 세웠고, 이후 출시가격과 유통가격이 계속 상승해 미국산 와인 가격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언론에서는 당시 최고가 와인들이 15~20달러에 거래된 사실과 오퍼스원의 출시가격을 비교하면서 “오퍼스가 이겼다(Opus won!)”며 오퍼스원의 탄생을 축하했다.
독특한 모양의 병 vs 파란 라벨
오퍼스원의 양조장 건물은 환상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창업자인 로쉴드 남작은 완성을 보지 못하고 1988년에 작고했고 1991년에 완공됐다. 그러니 와인이 출시되고 12년이 지나서야 오퍼스원의 실체가 드러난 셈이다. 양조장에서는 여러 근거를 내세워 오퍼스원의 높은 가격을 합리화했지만, 여전히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양조장이 내세운 근거로는 우선 포도나무를 해당 면적에 더 많이 심어 관리비용, 즉 인건비가 더 많이 든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매년 프랑스산 새 오크통을 준비해야 하며, 3개월마다 통 갈이를 실시한다. 오크통의 와인이 산화되지 않도록 눈금이 내려가면 수시로 채워 산화를 방지하는 것도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 ‘블러드 앤 와인’에도 오퍼스원이 등장한다. 130만달러짜리 목걸이를 훔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는데, 와인 가게 주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설정이 독특하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수영장에서 여유롭게 마시는 와인이 오퍼스원이다. 목걸이를 서로 차지하려는 등장인물들의 대립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오퍼스원이 클로즈업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BMW, 목걸이, 고급패션 등과 함께 오퍼스원 역시 그런 럭셔리임을 암시한다.
오퍼스원을 만든 두 인물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와인 병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오퍼스원의 라벨에는 로버트 몬다비와 로쉴드 남작의 옆얼굴이 그려져 있다. 오퍼스원의 파란 빛깔 라벨은 오브리옹의 독특한 병모양만큼이나 기억하기 쉽다.
장 드 퐁탁의 오브리옹 역사는 1525년 4월23일 시작됐다. 보르도의 5대 샤토 중에 이만큼 정확한 정보를 지닌 곳이 없다. 오브리옹은 이미 484주년을 맞았을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보르도, 아니 프랑스를 대표하는 와인이다. 한편 오퍼스원은 이제 30주년을 맞이하는 캘리포니아 포도원이지만, 보르도를 벤치마킹함으로써 보르도 같은 최고급 와인 대열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