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각. 장한평 강동호텔 뒷골목에 위치한 분식집 안.
이곳도 손님이 없다. 어제만 해도 이 시간에는 방학을 맞은 동네 중고생이 가득 차 있었다. TV를 보고 있던 가게주인 양명옥이 문이 열리는 소리에 머리를 들었다. 집이 상계동이라 가깝긴 했지만 가게 문을 닫고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던 중이었다. 가게 안으로 사내 둘이 들어섰다.
“아줌마. 김밥 두 줄에 오뎅 두 그릇요.”
사내 하나가 앉기도 전에 양명옥에게 주문을 하더니 힐끗 TV를 보았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털썩 의자에 앉으며 말한 사내는 한민족민주연합 사무총장 조경구다. 그의 앞에 잠자코 앉은 사내는 조직국장 정수남. 둘은 소공동의 사무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TV에서 시선을 뗀 조경구가 말을 잇는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우리가 유리해. 중국이 나설 것이고 웰빙 놈들은 지구력이 약하거든, 그때 우리들이 나서는 거야.”
“그때까지 북한군이 견뎌줘야 하는데.”
입맛을 다신 정수남이 길게 숨까지 뱉고 나서 조경구를 보았다.
“왜 이렇게 밀리죠? 지금 서해안의 제공, 제해권을 완전히 뺏기지 않습니까? 옹진반도와 강령쪽 북한 기지는 다 궤멸된 것 같습니다.”
“남조선 놈들의 선전 선동에 넘어가면 안돼. 놈들이 전과를 조작한 거라고.”
화가 난 조경구가 북한 사람들처럼 한국을 남조선으로 표현했다.
“놈들이 화면을 조작한 거야. 600만 인민군이 들고 일어나면 금방 전세가 역전돼. 그리고 북한은 밑져야 본전이라구. 손해 볼 것 없으니까 끝까지 달려들 거란 말야.”
“하긴 그렇습니다.”
“당분간 잠수 타고 있어. 동지들한테 연락하고.”
그때였다. 분식집 문이 열렸으므로 둘은 머리를 돌렸다. 사내 셋이 한꺼번에 들어서고 있다. 사내들의 표정을 본 조경구가 벌떡 일어섰다.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랐다. 그때 사내들이 다가와 둘을 둘러싸고 섰다.
“개새끼들.”
하고 조경구가 쓴웃음을 연 얼굴로 말했을 때 사내 하나가 따라 웃었다. 비슷한 웃음이다. 그러고는 잇사이로 말한다.
“쥐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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