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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여고생 임예진

한국 영화사상 전무후무한 하이틴 스타

영원한 여고생 임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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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여고생 임예진

전영록 임예진 이덕화(왼쪽부터)가 출연한 영화 ‘푸른 교실’의 한 장면.

기적은 황홀하지만 그들은 1970년대 목포에 사는 아직 미숙한 고등학생일 뿐이다. 그들의 사랑은 임예진을 찍었다며 자기 것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또래의 고등학생 깡패에게 위협당하고, 고아인 이덕화는 그제까지 키워준 형 신구의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놈이 연애질이냐”는 폭언에 상처를 받는다. 그뿐 아니다. 사랑을 하는 그들은 ‘학칙을 위반하고 학생의 본분을 벗어나는 행위를 한 자’로 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사람들, 정확하게 말하면 어른들과 또래 학생들의 눈을 피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면 좋겠다며 한숨을 내쉰다. 그들의 사랑은 숨어서 해야 하는 애틋한 사랑이다. 사랑의 완성이 결혼은 아니지만 그들은 결혼을 꿈꾼다. 하지만 현재는 미성년이고, 경제적인 능력도 없다. 이 세상 어디에도 그들이 마음 놓고 사랑을 나눌 공간이 없다. 그러니 그들은 검은 교복을 벗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영화의 라스트에 이르러 눈물을 강요하는 신파조의 억지스러운 결말과 그들의 사랑을 자꾸만 우정이라고 포장하는 감독의 검열과 세상에 대한 눈치가 몹시 거슬리기는 하지만, 임예진의 놀라운 연기는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그들의 욕망과 불안을 생생히 전달한다. ‘진짜 진짜 잊지 마’는 한국 청소년들의 욕망과 불안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며 그해 흥행 성적 2위에 올랐다.

그리고 ‘임예진·이덕화·문여송’의 두 번째 영화가 만들어진다. ‘진짜 진짜 미안해’(1976). 고아이며 학교도 다니지 않고 야생마처럼 날뛰는 불량소년 이덕화와 그를 선도하려는 임예진의 노력이 줄거리인 이 영화는 일본에서 유행한 이른바 ‘학복물’의 영향을 받은 느낌이 강하다. 학생복을 입은 깡패 소년들의 액션 만화 ‘사나이 골목 대장(男一匹ガキ大將)’이나 ‘남조(男組)’‘청춘산맥(靑春山脈)’ 등의 흔적이 보인다.

어른이 된 소녀

영원한 여고생 임예진

1980년대 스크린에서 사라진 임예진은 이후 TV 드라마에서 생활 연기를 펼쳤다. 채널A 드라마 ‘불후의 명작’의 한 장면.

임예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3년간 극장에선 온통 임예진 주연의 청소년 영화가 상영됐다. 당시 극장가 풍경을 보면 한쪽에서는 발차기를 하는 사나운 표정의 남성이 등장하는 권격 액션영화가 걸려 있고, 다른 쪽에는 침울하고 슬픈 표정의 호스티스들이 등장하는 여성 멜로 영화가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세상 근심과 두려움과는 상관없는 다른 세계를 사는 발랄하고 깨끗한 표정의 임예진이 등장하는 하이틴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활짝 핀 꽃도 시간이 지나면 지고 만다. 여고를 졸업한 최고의 인기 배우 임예진은 1979년, 10여 년 전 신성일 엄앵란 조가 눈부신 활약을 했던 ‘맨발의 청춘’(김기덕 감독, 1964)의 리메이크에 도전한다. 대학생이 된 임예진과 이덕화가 주연한 ‘맨발의 청춘’(김수형 감독, 1979)이다. 여고생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임예진 덕에 이 영화도 성공할 듯 보였지만,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더 이상 여고생이 아닌 임예진을 그 누구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 영화는 실패한다. 얄개 패거리 이승현과 김정훈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 얄개’(김응천 감독, 1982)가 된 것에 대한 반응 역시 시들했다. 휴교조치와 최루탄이 난무하던 그때 ‘대학 얄개’라니 시대착오였다. 그들의 시대는 그렇게 흘러갔다.

같은 해 임예진은 다시 성인 영화에 도전한다. 이원세 감독의 ‘땅콩 껍질 속의 연가’(1979)였다. 하숙방을 전전하던 30대 노총각 신성일은 집을 보러 갔다가 집주인이 이민을 떠나고 갈 곳이 없어진 가정부 임예진을 보고 어찌 보면 무례하고 바보 같은 제안을 하나 한다. 갈 곳이 없으면 자신의 가정부가 돼달라고. 그런데 문제가 있다. 신성일이 얻은 방은 달랑 한 칸이다. 결혼도 안 한 성인 남녀가 같은 방에서 살 수 있나?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당찬 임예진은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방 한가운데 커튼을 쳐놓고 밤 8시 이후에는 서로 커튼을 넘어가지 않기로 약속을 하는 것이다. 만약 이를 어기면 서로의 관계는 끝내기로 한다.

더 이상 고등학생이 아닌, 숙녀가 된 임예진은 1963년 영화 ‘또순이’ 속 도금봉처럼 악착같이, 굳은 일 안 가리고 일을 해 자기 생활을 한다. 신성일과의 관계도 유지한다. 그 사이 임예진을 사랑하게 된 신성일. 그러나 임예진은 “나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일식집 주방장 김영호와 결혼하겠다”며 기분 좋게 거절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간다. 영화는 무척 유쾌했고 임예진의 연기도 좋았다. 하지만 극 중 임예진이 누드모델을 하면서 그녀의 반라가 사진 속에 등장하고, 제작사가 그것을 홍보해 흥행의 미끼로 삼으려 하자 임예진의 남성 팬들이 분노한다. 그들 마음속의 여동생 또는 연인이었던 소녀의 변모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대의 종말

이듬해 임예진은 좋은 영화에 적역으로 출연한다. 이장호 감독이 절치부심해서 만든 걸작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이었다. 한창 개발 중인 강남의 어느 곳에서 중국집 배달부, 목욕탕 때밀이, 이발사 보조로 일하는 세 청년의 이야기인데, 임예진은 이발사 보조인 이영호의 여동생으로 나와 중국집 배달부 안성기를 좋아하는 가난하지만 당차고 똑똑한 또순이를 연기한다.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안성기와 우연히 마주치자 그에게 곱게 포장한 양말을 선물하면서 은근히 데이트 신청을 하려는 장면. 그때 가난한 청년 안성기를 희롱하는 정체가 아리송한 부잣집 처녀 유지인이 차를 몰고 나타나 그들의 사이를 방해한다. 안성기는 요염하고 아름다운 여자 유지인에게 홀렸다. 공장 노동자인 임예진이 끼어들 틈은 없다. 안성기는 유지인에게 홀려 그녀와의 데이트 약속이 불러올 비극적인 결말은 생각지도 않고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임예진은 그런 그들을 한심하게 쳐다본다.

영원한 여고생 임예진
오승욱

1963년 서울생

서울대 조소학과 졸업

영화 ‘킬리만자로’ 각본·연출

1999년 제36회 대종상영화제 각본상 수상


1980년대 초. 여배우들이 온통 성적 자극만으로 승부를 걸던 시대. ‘애마부인’을 비롯한 수많은 매혹적인 ‘부인’이 남성의 눈을 희롱할 때 임예진이 설자리는 없었다. 임예진은 이 영화를 끝으로 스크린에서 사라져버린다. 한국 영화사상 전무후무한, 깨끗하고 순진했던 여고생 스타가 조용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신동아 201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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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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