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 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군 생활이 워낙 험난해 ‘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로 알려진 강원도 인제군 원통에서 군 생활을 할 때 탄생한 노래다. 정년을 앞둔 선임하사가 막걸리 두 말을 내고 의뢰해 만든 곡. 30여 년 군 생활을 마감하는 노병이 토로한 국방색 제복의 서러움에서 모티프를 얻어 노랫말과 곡을 붙였다고 한다. 병영에서 암암리에 애창되던 이 노래도 곧 금지곡으로 지정됐지만 오히려 일반인에게까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음울하고 어려웠던 시대, 강남 룸살롱 숙녀들까지 애창, 졸부들의 호화 주석(酒席)에 무언의 반항을 했으며 민주화에 목마른 동남아 국가들에 수출되기도 했다.
군 사기 저하와 군 이미지 실추를 이유로 금지됐지만, 노래는 서정성, 그리고 운동권 가요로는 보기 드문 애잔한 멜로디로 대학가, 재야 운동가, 노동계의 큰 호응을 얻으며 오랜 세월 사랑을 받아왔다. 기이하게도 금지 조치가 혹독할수록 그의 노래는 멀리 그리고 널리 퍼져나갔다. 비록 방송에서 퇴출되고 음반 발매는 금지됐지만, 이 노래는 가난한 사람들의 벗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좋은 시절에는 잊혔다가 삶이 고통스럽고 시대가 암울하면 먹먹한 가슴으로 부르는 기구한 운명의 노래가 ‘늙은 군인의 노래’였다. 지금의 잠깐 유행하는 걸 그룹의 댄스 음악과는 차원이 다르다.
노랫말에 등장하는 군인 대신 교사, 농민, 노동자 등으로 다양하게 바뀌어 불리면서 민초의 삶의 현장에서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다. 얼마 전 KBS ‘불후의 명곡’에서 가수 홍경민이 대형 중창단과 함께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그날 이후 김민기의 구닥다리 노래들이 연달아 유튜브에 오르는 등 신세대에게도 리바이벌 붐을 일으켰다.
또 다른 전설적인 노래는 ‘공장의 불빛’이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진 악명 높은 동일방직 똥물테러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공장의 불빛’은 당국의 눈을 피해 은밀히 카세트테이프로 제작됐지만 곧바로 압수당했다. 김민기의 노래는 이처럼 늘 통제를 받았다. 노래를 통제해야 할 필요성은 지배세력의 통치 정당성이 떨어질 때 더욱 커진다. 우리 노래 역사에서 일제강점기와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5공 신군부 시절 노래에 대한 통제가 극심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 금지곡의 역사를 훑는 게 곧 우리 사회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이 되는 것이다.

동숭동 시절 서울대 본관 건물, 무성한 마로니에가 제 무게에 겨운 듯 넓은 잎을 늘어뜨리고 있다.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그럼에도 김민기는 남들에게 그러한 일들을 설명하고 또 변명하는 데 완강하게 반발한다. “노래라는 것은 만들어지면 부르는 사람이 임자지, 작곡자는 철저히 제3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자신의 노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 자체를 기피하다 못해 혐오한다. 정작 도가(道家)의 도인 같은 초탈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아침이슬’도 정작 자신은 이한열 군 장례식 때 듣고 비로소 그 노래가 가진 엄청난 위력과 역사성을 깨달았다고 회고한다. 운구가 시작되면서 수십만이 핏발선 눈빛으로 노래를 부를 때 “소름 끼치고 온몸이 떨려와 귀를 막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민기, 그리고 ‘아침이슬’은 1970~80년대 우리 시대의 아픔을 대표하는 무한한 의미를 지닌 이름이고 노래다. 1970년대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노래를 불러보지 않은 기성세대가 과연 몇 명이나 있겠는가. 그는 그냥 그렇게 무심하게 노래를 만들었다지만, 그가 만든 노래는 가장 의미 있는 노래가 되어 우리 시대를 관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