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파 멜로 조폭 드라마’라는, 사실은 가장 상투적인 장르만을 결합한 영화치고 ‘남자가 사랑할 때’는 ‘답지 않게도’ 큰 그림, 곧 풀 쇼트를 즐겨 사용하는 영화다. 아마도 그것은 감독의 예술적 욕심이었을 것이다. 신파 영화는 사실 클로즈업 기법을 많이 쓴다. 우는 연기가 많고 캐릭터의 표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가 사랑할 때’는 종종 그것을 포기하고 반대로 간다.
예컨대 종종 치매기를 보이는 아버지를 경찰서에서 간신히 찾아낸 후, 온 가족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 말이다. 정신이 약간 없는 아버지가 뭐라고 중얼거리며 걸어가면, 그 옆으로 며느리 미영과 손녀딸 송지(강민아)가 터덜터덜 걸어간다.
그 뒤로는 영일, 태일 형제 둘이 티격태격 뒤따라간다. 동생은 형에게 “너 같은 인간도 형이냐?”고 하고, 형은 동생에게 “이 새끼야, 너 언제 형 대접 제대로 해봤어?”라며 박박댄다. 그 모습을 카메라는 옆에서 트래킹(tracking)으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따라간다. 이상하게도 평화롭게 보이고 달이 떠 있다. 이 가족도 어떤 면에서는 행복한 것이 아니냐고 자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지금은 식구 모두 같이 있는 거 아니냐며.
태일에게 극단적 배신감을 갖고 떠났던 호정이 태일을 다시 만나는 장면도 풀 쇼트로 처리됐다. 그 장면, 별것 아닌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을 많이 울린다. 태일은 이제 죽어간다. 자기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 호정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호정은 우연한 기회에 그걸 알게 됐다.
태일은 해성식당(군산시 금암동 1-21)에서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소주를 마신다. 그가 거기 있을 것을 예견한 호정은 바쁘게 발길을 옮긴다. 둘은 해성식당을 옆으로 두고 멀찌감치 서로 마주친다. 거리감 때문에 말을 나눌 수가 없다. 그래도 안다. 태일은 호정이 왜 왔으며, 호정은 태일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태일은 비죽비죽 울기 시작하고 호정은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가로등은 이들의 머리 위에서 그늘진 빛을 던지며 둘을 포근히 감싼다. 둘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가깝게 다가서 있음을 안다.
사랑은 그렇게 멀리 있는 듯 가까운 데서 소리 죽여 눈물을 흘리는 법이다. 그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 이문세의 노랫말처럼 더 슬프고 외롭고 힘든 법이다. 풀 쇼트의 예술은 그 점을 가감 없이 설명해낸다. 이 영화에서 풀 쇼트는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해내는 데 매우 중요한 기법으로 사용된다.

12월 4일, 초겨울부터 눈이 많이 쌓인 군산 거리.
‘남자가 사랑할 때’를 보면서 실컷 울고 나면 군산에 가고 싶어진다. 치매기로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며 태일은 아버지에게 고백한다.
“아버지, 그 여자 참 착한 애야. 자기 아버지 죽어갈 때 병 수발 다 하고 그랬어. 그런 여자한테 어떻게 나까지 돌보라고 하겠어. 나 같은 놈을 말이야. 그렇게 못하겠더라고. 그러니까 나 죽으면 아버지가 그 여자 좀 잘해줘. 아버지, 내 말 알아들어?”
라면을 꾸역꾸역 먹으며 독백으로 이 장면을 연기하는 황정민은 진실로 사람들을 라면 모양으로 꾸역꾸역 울린다. 그러나 이 장면 역시 황정민보다, 그 얘기를 무표정하게 듣는 아버지 남일우의 뒷모습이 압권이다. 그동안 얼굴을 잘 비추지 않던 원로배우 남일우는 이 영화에서 자신이 극중 인물처럼 세상일에 대해 안 듣는 척, 사실은 모든 것을 듣고 살아왔음을 알려준다.
그렇게 모르는 척하지만 사실 마음으로 울고 있을 이 여위고 늙은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들며 가슴을 자꾸 때린다. 언제나 그렇지만 안으로 집어삼키는 눈물이 더 견디기 힘든 법이다. 그래서일까.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다시 한 번 군산에 가고 싶어진다.
그리고 다시 군산을 떠날 때는 노래를 바꿔보는 것이 좋다. 이때는 ‘When a man loves woman’이 제격일 것이다. 마이클 볼튼의 느끼한 목소리보다는 퍼시 슬레지의 호소력 넘치는 원곡이 좋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해야 사람이 되는 법이다. 요즘 남자들은 진정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아는가. 군산에 폭설이 내렸다. 올해는 서해안 항구에 눈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눈처럼, 남자들의 진정한 사랑이 쌓여가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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