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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의 고전환담古傳幻談

선화공주傳

서동을 끌어안은 공주님의 슬픈 삶

  • 윤채근 단국대 교수

선화공주傳

SBS드라마 ‘서동요’의 한 장면.

SBS드라마 ‘서동요’의 한 장면.

홀몸으로 미륵사 서탑에 사리를 봉안한 젊은 왕비는 바로 사비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절에서 며칠 더 묵었다. 주지에게 부탁해 승사 한 채를 통째로 빌린 그녀는 자신을 찾는 금마 땅 백제 백성들을 일일이 친견하며 복을 빌고 상을 내렸다. 그녀는 금마 지역 최대 호족이던 사택씨(沙宅氏) 출신이었기에 선물을 손에 쥔 백성들은 기쁨에 겨워 ‘금마백제만세’를 외치고 또 외쳤다. 사비 시대를 끝내고 금마에 새 도읍지를 열어 백제를 부흥시키려는 염원은 그녀와 그녀의 남편 무왕을 연결해주는 가장 질긴 끈이었다.


“그분께선 잘 계시니껴”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 전 모습. [동아일보 김광오 기자]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 전 모습. [동아일보 김광오 기자]

남편이 기다리는 사비성으로 출발하기 전날, 성대히 예를 갖춘 왕비는 미륵사 근처 암자에 기거하고 있던 늙은 비구니 한 명을 맞이했다. 보살로 불린 비구니는 불당에 정좌해 경을 염송했고 왕비는 말없이 그 곁을 지켰다. 발원을 마친 새벽녘 비구니가 비로소 입을 열어 왕비에게 물었다.

“그분께선 잘 계시니껴? 마이 늙었지예?”

상대 옆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왕비가 속삭이듯 낮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선화보살님 야그를 여태 하지유. 보고프시믄 사비로 같이 가셔도 되는데.”



미묘하게 웃음을 머금다 이내 정색을 한 선화보살이 갓 스물을 넘긴 왕비의 고운 피부를 찬찬히 뜯어보고는 말했다.

“이 큰 가람을 지어주신 것만도 황송하니더. 여기서 살다 조용히 사리지는 게 제 운명이라예. 오래 살다보믄 천도하는 모습까진 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왕비는 당장 천도는 어려울 거라 대답했다. 사비 귀족들의 반대가 격심한데다 강력한 후원자였던 사택씨들도 화려한 사비 생활에 젖어 고향인 금마 땅을 잊은 지 오래이며, 무엇보다 왕이 노쇠해 패기를 상실했다고 했다. 깊게 한숨을 몰아쉰 선화보살이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왕비님 성명이 사택지란이라 했지예? 예쁜 이름이니더. 백제에 국모 자리가 비어 있다고 얼마나 말이 많았어예? 그분과 혼인한 게 벌써 3년인데 후사 소식은 왜 안 들리니꺼?”

대답 대신 환한 웃음을 머금은 왕비 사택지란이 대답했다.

“실은 저 회임했어유, 며칠 전 서탑에 사리 봉안한 것두 다 배 속 아이 복덕을 빌려고 한 건디. 친정 아부지 성화가 심해 조금 노력해봤어유. 보살님껜 죄송하기두 하고.”

왕비의 말을 전해 들은 선화보살은 잠깐 얼어붙은 듯 침묵했지만 곧이어 상대 손을 꽉 움켜쥐고 다정히 말했다.

“축하하니더. 진정 감축드리니더. 이제 백제 부흥은 왕비님 손에 달렸다 아입니꺼?”

두 사람은 짐짓 서로를 위로하며 길게 마음을 나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밝아온 먼동은 각자의 다른 운명을 결코 감춰주지 못했다. 떠나는 왕비 행차를 미륵사 앞 당간지주까지 배웅 나선 선화보살은 가슴속에 감추고 또 감추고 싶었던 말을 마침내 왕비에게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우리 의자를 부탁하니더. 그 아이 미워하지 마입써. 부디 어여삐 챙겨주시소.”

마차 밖으로 나온 왕비는 선화보살의 팔을 쥐고 대답했다.

“제 배 속 아기가 사내아이라믄 의자가 든든한 형 노릇 할 것인디 저가 왜 미워해유? 염려마세유. 보살님은 여 큰 도량서 불덕 잘 닦으시며 안분자족하시면 될 것인디 자꾸 사비 걱정은 왜 하신대유? 속세 일은 속인들이 알아서 할 것인디.”

멀어져가는 왕비 일행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선화보살은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찬란했던 자신의 젊음과 그 젊음이 만들어냈던 행과 불행 그리고 눈앞에 닥칠 고독한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에게 미륵사는 여생을 마칠 감옥이었지만 혹시 금마가 새 도읍지가 된다면 아들인 부여의자를 죽기 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자유분방한 신라 공주

백제 옛 도읍 충남 공주에 있는 공산성 풍경. [뉴시스]

백제 옛 도읍 충남 공주에 있는 공산성 풍경. [뉴시스]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이었던 선화는 다른 공주들과 달리 자유분방했다. 그녀는 언니들처럼 왕궁 행사에 참여하는 대신 궁복들과 어울려 서라벌 저잣거리를 쏘다녔고 포구를 드나드는 외국 상인 구경하기를 즐겼다. 부처께서 태어나셨다는 천축국, 또 그 너머에 있다는 신비한 서역 나라들을 선망하던 그녀는 자신의 끝없는 호기심을 채워줄 누군가 나타나기를 막연히 기다렸다. 남몰래 여왕 수업을 받고 있던 큰언니 덕만은 그런 여동생을 나무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세상에. 니 또 저자 이야기꾼들 만나고 다녔나? 들키기 전에 당장 안 그만두나? 우린 성골인기라. 왕가에 아들내미 하나 없다고 망조 들었다고 다들 난리 안 치드나? 선화 니 조신해야 된데이.”

큰언니가 그러거나 말거나 선화는 자신의 고집을 굳세게 지켰고 유별나게 덥던 어느 여름날 황룡사 대웅전 앞에서 운명의 사내를 만났다. 사내는 백제에서 건너온 삯꾼으로 막 기초를 닦고 있던 분황사에서 노역하는 중이었다. 달변이었던 그는 예불을 마친 일꾼들을 모아놓고 자신이 가본 서쪽 나라들에 대해 한참 수다를 떨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화는 언제나 그러하듯 몸을 빼내어 군중 사이로 슬쩍 끼어들었다.

“내 야그가 재밌는가배. 저그 귀족 아가씨가 들어섰구먼. 과연 재미있는가유?”

얼굴이 붉어진 선화는 주변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라 출신과 백제 출신이 마구 뒤섞여 있던 일꾼 무리는 귀족 소녀의 등장에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일기사덕이라 소개한 백제의 이야기꾼은 일터인 분황사로 떠나기 전 선화에게 속삭였다.

“우리 예쁜 공주님은 뉘 집 따님이신가유?”

말없이 상대를 바라보던 선화는 침을 꼴깍 삼키고 대답했다.

“내는 진짜 이 나라 공준데. 이름은 선화라카고.”

일기사덕은 한참 동안 선화를 응시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황룡사 옆에 붙어 있던 분황사 일터 쪽에서 동료들이 큰소리로 부르고서야 그는 입을 뗐다.

“진짜 공주님이라 이 말이지유? 선화공주님?”

힘주어 고개를 끄덕인 선화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일기사덕의 잘생긴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물었다.

“그 많은 나라를 다 가봤단 게 사실이가? 내는 부럽데이.”

희미한 미소를 흘리던 일기사덕이 선화 앞으로 다가서며 대답했다.

“거짓말만 들어왔는가배. 배를 타고 서쪽으로 가면 엄청스리 큰 땅이 나오지유. 거서 강을 타고 한없이 올라가면 벼라별 나라가 수두룩 나온다니까유. 백제 상단에 끼면 못 가볼 데가 세상에 없시유.”


백제로 가출

전북 익산 왕궁리유적 5층석탑. [뉴시스]

전북 익산 왕궁리유적 5층석탑. [뉴시스]

그날 이후 선화는 황룡사를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그때마다 일기사덕을 만나 그녀가 가보지 못한, 아니 어쩌면 영원히 가볼 수 없을 곳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이야기는 친밀함을 낳고 친밀함은 연모의 정을 낳았으니 말괄량이 선화는 급기야 일기사덕과 야합하기에 이르렀다. 격렬한 정애에 빠진 그녀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일기사덕이 보고 싶은 밤이면 사다리를 타 궁궐 담장을 넘었고 그의 품속에서 달콤한 꿈에 들곤 했다. 그런 그녀에게 큰언니 덕만은 이렇게 말했다.

“어디 한번 신나게 놀아봐라. 얼마 지나면 사내가 다 그게 그건 기라. 고마해라 쫌.”

선화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일기사덕이 보이지 않으면 심장이 찢어지는 슬픔이 찾아왔고 행여 그가 백제로 떠나버릴까 밤잠을 편히 이룰 수 없었다. 영혼이 다 소진돼 죽을 것 같던 무렵 일기사덕이 말했다.

“선화. 난 거짓말쟁이여. 어린 너한테 못할 짓을 한겨.”

선화는 상대가 하는 말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바다 건너 돌아댕겼다는 얘기가 다 빈말이었다고? 속였다는 기가? 내를?”

선화는 악을 쓰며 울다 지쳐 잠들었고 다시 깨어났을 때 일기사덕이 옆에 있어 안심했다. 그녀가 신음하듯 말했다.

“이제 낸 어쩔 수 없데이. 어차피 니랑 살기다. 어데 다른 방법 있드나?”

둘은 야반도주해 일기사덕의 고향인 백제 금마 땅에 이르렀다. 이 사실을 깨달은 진평왕은 노하는 대신 얼굴을 찡그리며 이렇게 말했다.

“딸내미는 똑똑스러운 덕만이로 충분하데이. 선화 갸는 지금부터 내 딸아가 아이라.”

진평왕의 뇌리에서 셋째 딸의 기억은 그렇게 지워졌고 서라벌 사람들 사이로 선화공주가 마 캐는 뜨내기와 눈이 맞아 사라졌다는 풍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풍문이 노래를 낳아 유행하자 진평왕은 이를 부르는 자들을 옥에 가뒀다. 하지만 노래는 바람과 강물을 타고 흘러 다니다 백제 금마에까지 도착했다. 일기사덕의 아이를 회임한 선화는 노랫말을 전해 듣자 폭소를 터뜨렸다.

“하필이면 마가 뭐꼬? 내 낭군은 마가 아이고 내를 캤던 기라.”

금실이 좋다 못해 한시도 서로 떨어지지 않고 붙어 다니던 부부는 큰돈을 벌기 위해 사비로 이주했다. 변죽 좋고 입담 센 일기사덕은 밤마다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고 그런 분주함이 선화를 외롭게 했다. 외로운 선화는 처음으로 서라벌을 떠올렸고 언니들과의 추억에 잠겼다. 그녀는 가만히 앉아 어릴 적 부르던 자장가를 되뇌곤 했다.

“월성의 연못은 몰라. 계림의 나무들도 모르긴 마찬가지. 부처님만 아시네, 내가 잠들 시간을.”


백제왕이 된 서동

백제의 불교 문화를 보여주는 금제사리내호와 금제사리외호, 금제사리봉영기(왼쪽부터). [미륵사지유물전시관]

백제의 불교 문화를 보여주는 금제사리내호와 금제사리외호, 금제사리봉영기(왼쪽부터). [미륵사지유물전시관]

사비 생활에 지쳐갈 무렵 오랜만에 집에 들른 일기사덕은 뜬금없이 이렇게 소리쳤다.

“선화. 내가 백제 왕족 혈통이란 걸 얘기했던가? 내 이름은 본디 부여장이여. 이자 우리 고생 그만하는겨.”

남편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선화는 얼핏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일기사덕의 뺨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의자 아부지.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게 믿어봅시다. 어쩌다 부여장이 되셨소?”

흥분에 얼굴이 상기된 일기사덕 부여장은 자신이 금마 땅에 버려진 백제 왕족이었고 이를 증명해줄 귀족을 사비에서 만났다고 말했다. 그는 그 사실에 추호의 의심도 품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사택적덕이란 인물이여. 나랑 같은 금마 출신 좌평 어른이신디, 좌평이라고 아는가? 엄청 높은 벼슬인 줄만 아시게. 암튼 그 좌평이 왕도 좌지우지한다면 말 다한 거 아녀? 날 참으로 좋아하는가벼. 보자마자 생긴 게 귀상이라더니만 글쎄 내 본명이 부여장이라는 거 아녀?”

선화는 눈을 감고 자신의 삶을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일기사덕이 지금의 백제왕이 금마 땅에 내다버린 사생아라면 뭐 어떤가? 사비 귀족들을 거느리며 왕마저 손아귀에 쥐고 흔드는 좌평이 남편을 선택했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굶어 죽는 것보단 그게 어딘가?

“당신 뜻대로 마음껏 날아보이소. 왕이라면 더 좋고.”

그날 이후 부여장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들인 의자는 아버지를 찾겠다며 사비성 궁궐에 들르곤 했지만 번번이 흐느끼며 돌아올 뿐이었다. 그런 아들도 갑자기 사라져 소식이 끊겼다가 어느 날 왕자 부여의자가 돼 갑자기 나타났다. 모자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 통곡했다. 아들이 말했다.

“어무이. 살고 싶으시면 머리 깎고 비구니나 돼버리셔유. 아부진 혼인 같은 건 안 하고 혼자 사신답디다. 그리 아시구 참구 기다리면 언젠간 나가 왕이 돼서 어무이 모실라니까.”

남편과 아들을 한꺼번에 잃은 선화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 왕이 된 일기사덕은 그녀의 아버지 진평왕이 다스리던 신라에 맹공을 퍼부으며 입지를 다져나갔다. 백제와 신라는 원수지간이 됐고 신라 출신 공주가 나설 틈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 고향인 금마로 숨어들어 비구니가 됐다.

어두운 미륵사 대웅전 뜨락에 우두커니 선 늙은 선화는 구부정한 허리를 펴려다 도로 주저앉았다. 그나마 그 오랜 세월 왕비 자리를 비워두었던 남편이 대견하기도 했다. 사택씨의 집요한 요구에도 정비(正妃) 자리를 채우지 않고 머뭇대던 무왕은 삶의 끝자락이 돼서야 사택지란을 아내로 맞이했다. 그 우유부단함, 그게 사랑이었을까?

심장께에 격렬한 통증을 느낀 선화는 비스듬히 옆으로 쓰러졌다. 삶의 권능이 천천히 그녀 몸에서 사라져가며 풀무질 소리를 냈다. 아득히 먼 어린 시절, 햇살 가득한 월성 후원을 뛰어다닐 때도 그런 소리가 났었다. 또 있었다. 일기사덕을 처음 만나던 순간에도 그녀 심장은 풀무처럼 요동쳤다.

그날 황룡사에서 언니들 어깨 사이 저쪽으로 콧날 오뚝한 젊은 미남이 보였다. 무슨 말인가를 열정적으로 하던 그는 선화 쪽을 힐끗 쳐다봤다. 짙은 눈썹 아래 샛별처럼 영롱한 눈동자가 빛났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릴 리 없었다. 그녀는 무작정 그가 있는 곳으로 걸었고 자기 얘기가 재밌느냐는 질문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정말 중요하지 않았다.


※ 백제 무왕은 귀족 권력이 왕권을 넘보던 사비 시기 말엽에 왕위에 올라 전성기의 국력을 회복하고자 노력한 현군이다. 그는 신라와의 투쟁을 통해 내부 안정을 도모하며 익산으로 천도를 추진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천도를 위해 건축한 궁궐터가 익산에 남아 있는데 특히 미륵사는 미래의 왕사로 거대한 규모로 축조됐다. 그의 왕비는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를 부정하는 사리봉안기가 미륵사지 서탑 복원 중 발견됐다. 이에 따르면 무왕의 비는 익산 지역 토호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다. 한편 무왕의 아들 의자는 중년에 왕위에 오르자마자 사택씨 세력을 거세하는 일에 전념했다.



신동아 201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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