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 공군기지 내 한국병원 초대 병원장으로 2010년부터 10개월간 현지에서 의료봉사를 한 박석산 교수.
“파르완 주 지역보건소나 지역병원에서 초진을 받은 환자에게만 우리 병원 진찰권을 주고 예약한 뒤 병원에 오도록 했어요. 초진환자는 아예 안 받았죠. 바그람 기지에서 20㎞ 이상 떨어진 차리카르시에 전산시스템을 갖춘 사무실을 하나 만들어 환자 예약 처리와 진찰권 발급을 전담하도록 하고, 그곳에서 취합한 예약 환자 리스트를 매일 e메일로 받았어요. 하루에 진찰권을 가진 환자 150명만 들어오게 하니까 병원 앞 줄서기나 돈 주고받는 관행이 사라졌죠.”
▼ 돈줄 끊긴 마을 사람들과는 사이가 나빠질 수밖에 없었겠네요.
“우리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차리카르 시까지 다녀와야 한다는 데 대한 불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가까운 데 병원 지어놓고 못 가게 한다고 화가 난 거죠. 계속 항의하고 데모도 하고 그랬어요. 나중에 하루 몇 명씩은 진찰권 없이도 우리 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걸로 타협했지요. 그 순서를 정하면서 또 돈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처럼 혼란스러운 분위기는 없었어요.”
폭격과 테러에 대한 공포
▼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 자살폭탄 테러에 대한 염려는 없었나요?
“한국병원은 미군기지 안에 있기 때문에 출입 단속이 굉장히 철저해요. 한국 경찰과 네팔 용병, 미군이 합동으로 담당하죠. 병원 출입구 양쪽에 초소가 있는데 이걸 통과하려면 6단계의 검문·검색을 거쳐야 합니다. 폭탄탐지견이 무기를 수색하고, 금속탐지기 검사, 몸수색, 홍채검사, 지문검색까지 해요. 병원 건물 위에는 미군 저격병이 있고 한국 경찰도 기지 안에서 망원경으로 주변을 항상 감시하지요. 자살폭탄 테러가 워낙 많으니까 보안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가끔 기지 밖으로 회의나 진료를 나갈 때는 방탄조끼를 입고 장갑차나 헬리콥터를 탔습니다.”
▼ 병원장으로 계신 동안 바그람 기지에 대한 탈레반의 공격도 여러 차례 있었죠?
“아프간에 도착한 지 두 달쯤 됐을 때 탈레반 10여 명이 기지에 침투하려 한 적이 있어요. 숙소 양쪽 옆에 숲이 좀 있어요. 숙소 앞은 공터여서 노출되니까 숲 쪽으로 들어왔는데, 새벽에 자다가 총소리에 놀라 숙소 바닥에 바짝 엎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로켓포 공격은 방공호에 들어가면 피할 수 있는데, 침입 공격은 그게 아니니까 매우 걱정됐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 탈레반이 우리 숙소 몇 백m 앞까지 접근했었고, 11명인가 사살됐다더군요. 아프간에 가면 적군이 침입한 경우 방공호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가면 안 되고, 실내에서 문을 잠근 채 꼼짝 말고 엎드려 있어야 한다고 교육받아요.”
박 교수가 회상한 이 사건은 2010년 5월 19일 일어난 탈레반의 바그람 기지 공격이다. 당시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자살폭탄조끼와 로켓포, 수류탄, 자동소총 등으로 무장한 탈레반 대원들은 현지 시각 오전 3시경 바그람 공군기지를 공격했다. 이들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사이의 교전은 이날 낮까지 산발적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미군도 7명이 부상했다.
▼ 긴박한 순간 바닥에 엎드려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우리나라 경찰이 있고 미군도 있으니 안전할 거라고 믿었어요. 다만 밖의 상황을 모르니 불안했죠. 그런 일이 한번 벌어지고 나면 기지의 모든 출입문을 폐쇄하고 수색을 시작해요. 잠입한 사람이 있는지, 내부에 탈레반이 없는지 확인하는 거예요. 며칠 동안 수색해 침입자를 완전 소탕하거나 안전하다는 결론이 내려져야 기지문을 열죠. 병원도 그때까지는 문을 닫아야 하고요.”
▼ 그곳에 계시는 동안 수색작전 때문에 병원 문을 닫은 일이 여러 번 있었나요?
“그렇죠. 기지에 드나드는 현지 민간인이 많기 때문에 탈레반의 공격이 없어도 종종 수색작전이 펼쳐지곤 해요. 자살폭탄 테러범이 잠입했다거나 공격이 있을 거라는 첩보가 입수되면 비상을 걸고 기지를 폐쇄하지요. 한두 달에 한번 정도는 꼭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 두렵기도 하겠지만 병원이 쉰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휴가일 수도 있겠네요. 병원 문이 닫혀 있을 때는 주로 뭘 하셨나요?
“숙소에서 꼼짝 못하니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어요. 평소 미군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숙소에서 한 10분 거리거든요. 비상 걸리면 거기에도 못가요. 체력단련실도 갈 수 없고요. 하루 종일 방에서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한국으로 휴가 갔다 오는 병원 사람들이 그런 걸 많이 가져와서 돌려봤거든요. 병원이 쉬는 건 우리보다 현지 직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었어요. 기지 폐쇄가 결정된 뒤 ‘문이 닫혔으니 출근하지 말라’고 전화해주면 좋아하는 게 느껴졌지요. 월급은 다 받으면서 며칠 동안 개인 진료소를 더 열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