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종은 1885년 선교사 앨런을 통해 광혜원을 세우고, 서양인 의사들에게 건강에 대해 자문했다.
① 건강하던 고종황제가 식혜를 마신 지 30분도 안 되어 심한 경련 후 죽었다.
② 고종황제의 팔다리가 1~2일 만에 엄청나게 부어올라 사람들이 통 넓은 한복 바지를 벗기기 위해 바지를 찢어야만 했다.
③ 민영달과 몇몇 인사는 약용 솜으로 고종황제의 입안을 닦아내다 황제의 이가 모두 구강 안에 빠져 있고 혀가 닳아 없어졌음을 발견했다.
④ 30cm나 되는 검은 줄이 목 부위에서부터 복부까지 길게 나 있었다.
식혜 독살설
일본은 독살설을 해명하려고 경성일보와 매일신보에 장문의 해명 기사를 올렸다. 밤 11시경 나인 신응선이 고종에게 은기에 담은 식혜를 바쳤는데 그중 10분의 2를 고종이 마시고 나머지는 나인 양춘기, 이완응, 최헌식, 김옥기, 김정완 등이 나눠 마셨다고 구체적으로 식혜 독살설을 부인했다. 식혜에 독을 탄 궁녀 2명이 함구를 위해 독살됐다는 설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박완기라는 나인은 내전 청소와 아궁이 잡역에 종사하다 폐결핵을 앓아 죽었는데 고종의 음식에 다가갈 자격도 없는 사람이었으며, 또 한 명의 나인은 창덕궁 침방에 근무하는 자로서 덕수궁에 출입한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①과 ②의 현상은 시신 팽창 때문에 통상 하루 안에 염을 하는데 고종의 시신은 자연조건하에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이은 왕세자가 도착한 4일 후에 염을 하면서 부패가 진행돼 나타난 현상으로 반박했다.
고종은 서양문물에 대해선 열린 자세를 견지했다. 동시대 최고 실권자였던 서태후가 서양의학과 약품을 철저히 배제한 반면, 고종은 일찍부터 선교사 앨런을 통해 광혜원을 세울 수 있었고 서양인 의사들로부터 건강 자문을 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1893년 궁녀를 마지막으로 뽑았는데, 일제에 의해 이태왕이란 이름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뒤론 1890년대 200명에 달한 궁녀가 20여 명으로 줄었다. 궁중 법도는 허물어지고, 궁중 음식에 만족하지 못해 요릿집에 주문해 음식을 시켜먹기도 했다. 1903년엔 쌀에서 돌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해 밥을 먹다 이가 부러지는 불상사를 당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숙수 김원근이 유배를 당했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에 이르렀던 것이다.
소화기 질환 자주 호소
고종의 건강을 위협한 최대 위기로 그가 마시는 커피에 아편을 타서 독살하려던 시도를 꼽는다.
궁중의 요리를 담당한 숙수들은 돈에 혹해 왕의 커피에 아편을 넣는 엄청난 범행을 저지른다. 실록은 1898년 9월 12일 이렇게 기록했다. “음력으로 올해 7월 10일 김홍륙이 유배 가는 것에 대한 조칙(詔勅)을 받고 그날로 배소(配所)로 떠나는 길에 잠시 김광식의 집에 머물렀는데, 가지고 가던 손 주머니에서 한 냥의 아편을 찾아내어 갑자기 흉역의 심보를 드러내고 친한 사람인 공홍식에게 주면서 어선(御膳·임금에게 올리는 음식)에 섞어서 올릴 것을 은밀히 사주하였다. 음력 7월 26일 공홍식이 김종화를 만나서 김홍륙에게 사주받은 내용을 자세히 말하고 이 약물을 어공(御供)하는 차에 섞어서 올리면 마땅히 1000원(元)의 은(銀)으로 수고에 보답하겠다고 하였다. 김종화는 일찍이 보현당의 고지기로서 어공하는 서양요리를 거행하였는데, 잘 거행하지 못한 탓으로 태거(汰去)된 자였다. 그는 즉시 그 약을 소매 속에 넣고 주방에 들어가 커피 찻주전자에 넣어 끝내 진어(進御)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건의 진상은 천민 출신으로 러시아 통역관 역할을 하며 신임을 얻었던 김홍륙이 거액의 착복사건으로 유배형에 처해졌는데, 유배를 떠나는 길에 돈으로 요리사 김종화를 매수해 고종을 독살하고자 한 것이다. 상궁 김명길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고종은 커피 맛이 이상한 것을 알고 바로 뱉었지만 복용량이 많았던 세자의 경우 며칠 동안 혈변을 보았고 치아가 빠져 의치를 18개 해 넣었다”는 것이다.
고종은 큰 질병을 앓은 기록이 별로 없다. 연령별로 요약해보면 16세 되던 해에 살쩍(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머리털), 귀밑 부분에 종기가 나자 당귀고라는 고약을 붙여 나았다. 33세 때 겨울에 세자와 함께 잠깐 감기를 앓았고, 34세엔 중전과 함께 감기를 앓았다. 39세에도 여름 감기와 체증을 앓았는데, 이때부터 소화기 질환을 앓기 시작했다. 고종이 가장 많이 호소한 증상은 소화기 질환이었다.
47세에도 담체(痰滯·담(痰)이 몰려 한곳에 뭉친 것. 또는 그로 인해 생긴 병) 증상을 앓는데, 담체란 소화기가 약해지면서 위장에 불순물이 생겨 쉽게 체증을 앓거나 두통, 어지러움을 느끼고 관절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이론엔 오장육부가 중심이라는 한의학적 사유가 근거가 된다. 한의학적 사유의 핵심은 내면의 질서다. 외면적 형태나 구조가 아닌 내면의 질서를 통해 사물의 본질을 살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연필심과 다이아몬드는 흑연을 기본 소재로 삼지만, 단지 그 소재의 내면 질서가 다르기 때문에 연필심과 다이아몬드로 나눠진다고 파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