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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의 길과 향기로운 땅 기운

이효석의 길과 향기로운 땅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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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해 만에 다시 찾은 상원사 큰 도량인데 이 절의 모습도 예전과 판이하다. 돌계단 끝에는 전에 없던 전각이 위압적인 자세로 우뚝 서 있다. 산이 안온히 절간을 품고 절간이 산세의 자랑을 보탠다는 말은 이래서 옛말에 지나지 않는다. 되레 절간이 산을 다스리고 산을 내치는 형국이라면 지나친 말이 되는가. 한데 중화의 궁전 하나를 옮겨놓은 듯한 수덕사, 직지사를 보고 동학사, 설악 봉정암을 보고 나면 절간이 더 이상 산중 깊이 있어야 할 까닭을 알지 못한다고 한탄하는 환경론자들의 심정을 함께 헤아릴 만하다.

절을 내치고 고즈넉한 산길을 걷기 20여 분, 적멸보궁의 향불을 지키는 분수승(焚修僧)이 머무는 노전(爐殿)에 닿는다. 예전에는 이 또한 벼랑 끝의 제비집 모양으로 운치 있는 향각(香閣)이었을 터인데 이 계절에는 기도처를 넓힌다고 바위 절벽을 부수는 굴삭기의 굉음이 요란하다. 못 볼 것을 본 양 걸음을 재촉해 이른 곳, 오대산 중대(中臺)의 적멸보궁이다.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혈맥을 타고 날렵히 앉은 팔작지붕의 기와채. 여기가 곧 부처님의 이마뼈에서 나온 사리가 봉안돼 있다는 법열의 처소다.

그 옛날 당나라에서 구법(求法) 행각을 하던 자장 스님은 청량산(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했다. 스님께 부처님의 금란가사와 발우를 전한 보살은 “그대의 나라 동북방 명주땅에도 오대산이 있으니 그곳에서 다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신라에 돌아온 스님은 지금의 월정사터에 초옥을 짓고 기도를 올렸지만 날이 음산해 보살을 친견치 못해 대신 이곳에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한다.

산 하나를 온전히 진성(眞聖)의 거처로 여기는 ‘오대산 신앙’은 이렇게 자장 스님에 의해 이 땅에 옮겨졌으며 삼국통일 뒤에 더욱 신비화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지금 보궁은 있지만 정확히 부처님의 사리가 어디에 모셔져 있는지를 아는 이 없는 바 이 또한 물상(物像)을 상징으로 환치시킬 줄 알았던 선인들의 지혜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저곳 비로봉 아래 적멸보궁에 이르면



바람의 뿌리를 만날 수 있을까

삶의 근원으로부터 울려오는 비밀한

목소리 한 번 들을 수 있을까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밑도 끝도 없이 들뜬 숨만 몰아쉬며

마음의 진신사리를 더듬어 보는 것이다

하산하는 사람들의 막막한 표정들을

애써 지우며 적멸보궁에 오르는 것이다

- 정해종 시 ‘적멸보궁에 무엇이 있길래’ 부분

시인이야 뭐라고 하든 춥고 바람 드센 날임에도 불구하고 맨땅에 머리를 조아리는 참배객들이 가득한 뜰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라. 불법과 풍수를 모르는 문외한이라고 해도 이 땅이 천하의 명당임은 절로 느껴 알 만하다. 휘어져 감겨 내려온 좌우 산맥은 말 그대로 좌청룡 우백호이며 한가운데 비로 주봉에서 도톰하니 흘러내린 산줄기 하나가 막 이마를 쳐드는 그 자리 정혈(正穴)에 보궁이 앉아 있는 것이다.

오대산에서 느끼는 향기로운 땅 기운

최학

1950년 경북 경산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 동 대학 교육대학원 석사

197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현 고려대문인회 회장

창작집 ‘잠시 머무는 땅’ ‘그물의 눈’ ‘식구들의 세월’ 등

장편소설 ‘서북풍’‘안개울음’ ‘미륵을 기다리며’‘화담명월’등


산의 향기, 땅의 기운을 몸으로 느껴 신앙의 정수처를 정한 1000년 전 선각의 놀라운 안목에 대한 탄성이 절로 날 수밖에 없다.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으로 알려진 이 명당의 실상은 사실 보궁을 돌아 나와 비로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에서 거듭 되돌아보는 가운데 더욱 확연해진다.

길지(吉地)에서 저절로 체감하는 상서로운 땅기운으로 하여 가파른 비탈을 오르고 눈길에 미끄러지면서도 도무지 육신의 고단함이 느껴지지 않는 이런 뜻밖의 경험도 오대산의 깊은 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신동아 2012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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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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