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춤추는 금 다시 전성시대는 오는가

춤추는 금 다시 전성시대는 오는가

3/3
금은 가격에 비해 부피가 작고 변질 우려가 없어 밀수품목으로 적격이다. 밀수에는 주로 선박이 이용되는데, 배에는 철제 구조물이 많아 금괴를 숨길 곳도 많다. 기둥 안쪽이나 선창(船倉) 밑바닥, 기름탱크 등에 금괴를 넣고 바깥에서 용접하면 감쪽같다. 금괴를 녹여 선체 일부로 치장하는 경우도 있다. X레이 투시기에 걸려들지 않는 은괴 안에 금을 집어넣고 은괴를 수입하는 것처럼 위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금을 가루 낸 뒤 진흙과 섞어 들여오기도 한다.

밀수 금을 적발하기 위해 배를 해체하려면 척당 25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이만한 돈을 들여 배를 뜯었는데 금이 나오지 않으면 담당 세관직원은 문책을 피할 길이 없다. 따라서 ‘누가 어디서 얼마만큼의 금을 사서 어느 배에 실었다’는 확실한 제보를 얻지 않고서는 금 밀수를 적발해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

이렇듯 밀수가 판을 치면 무자료 거래가 성행하고 세수(稅收)에는 구멍이 뚫리게 마련이다. 서울시립대 박정수 교수(행정학과)에 따르면 금의 연간 유통규모는 120t, 거래규모는 1조6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되나 귀금속상의 매출액은 5161억원(97년)으로 과표현실화율은 32.3%에 불과했다.

부가가치세 징수실적은 47억3000만원으로 실효세율이 매출신고대비 0.9%, 매출추정규모대비 0.3%에 그쳤다. 더구나 정상적으로 수입돼 부가세가 과세되는 금은 가공된 후 대부분 수출되기 때문에 부가세를 환급해줘야 한다.

서울 강동세무서 상담실 박인근 계장은 “금괴 수입단계의 부가가치세를 없애 금 밀수를 정상 수입으로 유도하면 관세 징수실적만 해도 현재 부가세 징수실적의 수십 배에 달할 것”이라며 “겨우 47억원의 부가세를 못 걷을까봐 막대한 세원(稅源)을 땅 밑에 묻어두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한다.



부가세 면세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많다. 종합상사가 수입한 금을 국내 업체에 수출용 원자재로 팔 경우(로컬 구매) 부가세가 면세되는데, 이를 탈세 기회로 삼는 것이 전형적이다.

예컨대 A라는 도매상이 은행에서 외화획득용 원료구매 승인서를 받거나 L/C를 열고 종합상사에 금 로컬 구매를 신청하면 종합상사는 부가세를 붙이지 않고 A사에 금을 내준다. 그런데 A사는 이 금을 가공해 수출하지 않고 부가세를 붙여 내수용으로 판매한다. 원래 마진에다 판매가의 10%인 부가세를 추가 마진으로 붙여 폭리를 취하는 것.

수출이행실적은 1년 안에 은행에 신고하면 되기 때문에 몇 달씩 이런 거래를 하다가 종적을 감추면 그만이다. A사 같은 도매상이 직접 이런 짓을 할 때도 있지만, 꼬리를 밟힐 것 같으면 속칭 ‘바지’라 불리는 유령회사를 내세워 치고 빠진다. IMF체제 이후 금 밀수가 주춤하면서 이런 수법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한 귀금속 가공업자는 “한 해 500만달러어치를 수출하는 내가 한 달에 40∼50kg의 금을 가져다 쓰는데, 이런 업자들은 변변한 공장도 없으면서 하루에 50kg씩 가져 간다”며 “밤 새워 가며 일해봐야 손에 쥐는 건 얼마 안 되고 걸핏하면 세무조사나 받는데, 이럴 바에야 눈 딱 감고 한 탕 해서 몇십억 챙겨 튀는 게 낫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며 한숨을 내쉰다.

재경부, 형평성 들어 난색

금을 수입하는 종합상사들은 부가세 때문에 내수용으로는 금을 팔기가 어렵기 때문에 재수출할 목적으로 금을 수입하기도 한다. 외국 중앙은행이나 금융기관이 운용하는 금을 신용으로 수입, 이를 곧장 제3국에 수출하면 달러화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자금을 차입하는 효과가 있다. 수입은 신용으로 했기 때문에 대금을 당장 결제하지 않아도 되지만, 수출대금은 현금으로 들어오기 때문. 그 시차를 이용해 금리부담을 줄인다.

외국 금융기관이 한국 기업에 신용으로 수출한 금을 다시 수입하기도 한다. 한국 기업은 차입 효과에, 외국 금융기관은 돈놀이에 목적을 두는 것.

자금난에 허덕이던 D그룹은 기상천외의 금 거래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그룹 계열 종합상사는 해외 금융기관에서 12kg짜리 금괴들을 수입했는데, 이를 가공하지 않고 원래 상태로 수출하려면 30일 이내에 수출해야 했다. 그래서 이 금괴들을 얇은 플레이트로 만들어 시간을 벌었는데, 이것을 재수입한 금융기관은 이를 다시 금괴로 만들었다. 플레이트 형태로는 국제적으로 유통되지 않기 때문.

결국 D그룹은 수입한 금에 자기 돈을 들여 가치를 낮추고, 수출할 때는 낮아진 금 가치 때문에 돈을 덜 받는 이중의 피해를 봤지만, 달리 외화를 끌어들일 방법이 없었다.

99년 4월 부산에서 출범한 금 선물거래소도 부가세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 금의 현물 시장이 비정상적이다 보니 선물 시장의 운용이 어려운 실정이다. 현물 시장에서 108원에 살 수 있는 금을 선물 시장에서 113.3원에 사서 투자수익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융계에서는 금 선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부가세 면세가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대통령의 부산 방문에 맞춰 선물거래소를 서둘러 열다 보니 준비없는 출발이 되고 말았다.

삼성물산 금속사업부 손성호 과장은 “4월부터 10월까지는 거의 거래가 없다가 11월에 1kg짜리 바 1500개가 거래됐는데, 이는 금 선물 시장에 참여하는 각 업체 실무자들이 시장의 소멸을 우려, 거래실적을 만들기 위해 서로 내부 거래를 한 것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금 선물 시장은 금을 원자재로 쓰는 산업체 등에 효과적인 가격변동 헤지 기회를 줄 수 있는데 부가세 장벽 때문에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 했다.

귀금속가공업협동조합연합회 강문희 회장은 “우리나라 금 장신구 기술자들은 국제 기능올림픽 금 세공분야에서 5연패 하는 등 탁월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나, 부가세 장벽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사업 여건을 못 견뎌 2000여명의 일류 기능인들이 일본에 밀입국해 일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99년 5월 국회 재경위 김민석 의원(국민회의) 등은 이와 같은 의견들을 수렴, 수입 지금에 대한 부가세 면세를 골자로 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법률안을 제안했으나 주무부서인 재경부가 ‘금에 대한 부가세만 면세하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 결국 폐기됐다.

재정경제부 허영석 소비세제과장은 “법안 폐기와 상관없이 지금도 실무자들이 부가세 면세의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어 현재로선 분명한 방침을 밝히기 어렵다”며 “다만 면세를 검토한다면 형평성 차원에서 금뿐만 아니라 다이아몬드 등 다른 귀금속류도 고려해야 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고 밝혔다.

세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국에 ‘금 전성시대’가 도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신동아 2000년 1월호

3/3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목록 닫기

춤추는 금 다시 전성시대는 오는가

댓글 창 닫기

2023/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