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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 사장’에서 지식경제시대 주역으로

‘월급쟁이 사장’에서 지식경제시대 주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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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산업 분야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으로는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과 전성원(全聖元·67) 전 현대자동차 부회장을 꼽을 수 있다. 정회장의 경우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이지만, 재벌 집안의 후광을 업은 기업인이라기보다는 전문경영인에 가까운 인생 역정을 보여준다. 67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한 후 ‘포니 신화’를 이룬 것을 비롯(정회장은 해외에서 ‘포니 정’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32년간 현대자동차를 키워왔다.

지난해 초 그는 정주영 회장의 명령 한 마디에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현대자동차를 두 말 없이 정몽구 회장에게 넘기고 대신 현대산업개발을 할양받아 현대에서 분가, 전문경영인의 현주소를 확인케 했다. 최근 암 진단을 받아 미국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해군 중령으로 예편한 뒤 현대자동차에 합류했던 전성원 전부회장은 정세영 회장과 함께 현대자동차를 이끈 쌍두마차였다. 영업상무, 판매본부장, 수출본부장 등을 거치면서 뛰어난 해외시장 개척능력을 발휘해 포니 신화에 이어 미국 시장에 엑셀 돌풍을 일으킨 주역이다.

전문경영인들의 활약이 특히 두드러졌던 곳은 화학 분야. 자동차나 가전 등 소비재 산업에 비해 사업 내용이 복잡하고 전문 지식이 필요해 전문경영인이 역량을 발휘할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성재갑(成在甲·62) LG석유화학 회장 겸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은 ‘화학산업의 전도사’ ‘화학의 대부’로 불리는 LG그룹 공채 출신 전문경영인. 63년 락희화학공업사에 입사, 30년 만인 94년 공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LG화학 대표이사에 오른 이후 정보전자소재와 석유화학, 첨단 생명공학 분야를 이끌고 있다. IMF체제 하에서도 과감한 구조조정과 유동성 개선, 비용 절감, 수출 총력체제 구축 등에 성공, LG의 기업문화를 양 중심에서 가치 중심으로 바꾸는 데 앞장섰다.



대상그룹의 고두모(高斗模·62) 회장은 97년 8월 그룹 오너인 임창욱(林昌郁)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뒤 회장 자리에 올랐다. 무역과 해외금융에 정통한 고회장은 미원의 인도네시아 현지법인 사장을 지내면서 그룹 해외사업 부문을 반석에 올려놓았다고 평가받는다. 미원그룹이 대상그룹으로 새출발한 후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재계의 주목을 끌기도. 전문경영인 출신 회장답게 계열사 사장들에게 최대한 자율권을 주고 꼭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만 조정 역할을 맡아 ‘열린 기업’을 지향한다.

성낙정(成樂正·73) 전 한화그룹 총괄부회장도 87년 한화그룹 고문으로 영입돼 그룹의 대외창구 노릇을 자임하는 등 어려운 시기에 회장을 보필해 그룹을 이끈 인물이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나온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국전력에서 평사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정수창, 두산 회장 두 번 역임

전문경영인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것은 지난해 작고한 정수창(鄭壽昌) 전 두산그룹 회장의 경우 그는 평사원으로 입사해 두산그룹 회장을 두 번이나 지낸 인물. 그는 샐러리맨 출신의 ‘비오너 사장 1호’이자 ‘비오너 재벌그룹 회장 1호’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창업주가 일제시대 소화기린맥주 주식회사 취체역일 당시 기획과장으로 입사했던 그는 69년 동양맥주 사장에 올라 전문경영인이라는 낯선 용어를 만들어냈다.

72세 때인 91년, 두 번째로 두산 회장을 맡았을 때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페놀 유출사건으로 그룹의 명운이 경각에 달했다. 당시 그는 “나는 로봇이 아니라 전문경영인”이라며 위기 수습을 진두 지휘, 2년 만에 보란 듯이 난국을 극복한 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두산그룹에서는 박용만(朴容晩·45) 전략기획본부 사장도 주목할 만한 전문경영인이다. 두산은 국내 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효율적으로 구조조정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 아이디어 대부분이 박사장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미국 보스턴대 경영학 석사 출신인 박사장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1조1416억원의 현금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고, 이는 다른 기업들에 ‘구조조정의 교과서’로 활용됐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경기고 2년 후배인 윤영석(尹永錫·62) 한국중공업 사장은 대우의 간판 전문경영인. 64년 김회장과 함께 한성실업이라는 무역회사에 입사하며 만난 이후 김회장이 대우실업을 창업하자 1년 뒤 합류했고 ‘대우호(號)’가 자초하기 직전까지 동고동락했다. 98년 한국중공업 사장에 임명되면서 30년 넘게 몸담았던 대우를 떠나 공기업 경영인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전문경영인이 창업주를 도와 기업을 일궜고, 오너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경우나 그룹에 위기가 닥쳤을 때는 오너를 대신해 기업을 살려냈다. 그 비결은 자신이 몸담은 기업에 대한 초인적인 헌신과 지대한 애정이었다. 이들의 땀과 눈물이 밑거름이 되어 그 뒤를 잇는 차세대 전문경영인들이 탄탄하게 뿌리를 내려 열매를 맺고 있다.

차세대 전문경영인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사람인 휠라코리아 윤윤수(尹潤洙·54) 사장은 전문적인 경영노하우를 바탕으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면서 그에 걸맞은 보상을 받는, 진정한 의미의 전문경영인이다.

그의 지난해 연봉은 20억원대. 그는 92년 휠라코리아 사장이 된 후 지금까지 회사에 1200억원의 순이익을 올려줬고, 그에 따라 지금까지 보너스를 포함, 120억원을 받았다. 회사에 벌어준 돈의 10분의 1을 성과급으로 받은 셈이다.

윤사장은 97년 ‘내가 연봉 18억원을 받는 이유’라는 책을 펴내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떠올랐고, 이탈리아의 휠라그룹이 전세계 해외법인들에 ‘휠라코리아를 보고 배우라’고 할 만큼 세계적으로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성공신화는 사람이 만든다

의료장비 전문 벤처기업인 메디슨의 이민화 회장은 초음파 진단기를 국내 최초로 개발, 상업화에 성공하면서 벤처 성공신화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86년 제1회 벤처기업 대상을 받았고 현재 한국벤처기업협회 회장을 맡아 젊은 벤처기업인들의 좌장 노릇을 하고 있다.

한국의 ‘휴렛팩커드’로 불리는 삼보컴퓨터의 이홍순(李洪淳·40) 사장도 우리 기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전문경영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10월 미국 ‘포브스’지는 세계 PC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e머신즈’의 성공비결을 소개하면서 모기업인 삼보컴퓨터와 이사장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올해 ‘e머신즈’를 미국 나스닥 증시에 상장하는 것을 비롯, 삼보컴퓨터를 세계 최고 수준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을 가진 그는 “직원에 대한 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할 만큼 인재 교육을 경영의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고 있다.

현재 국내 최고의 인터넷 스타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이다. 이 회사의 주식 시가총액은 재계 6위 한진그룹의 전 계열사를 사고도 남을 정도. 이 회사 이재웅(李在雄·32) 사장은 다음(www.daum.net)을 국내 인터넷 서비스업체 최초로 5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도록 성장시켜 야후코리아와 1, 2위를 다투기에 이르렀다.

다음의 성공은 인터넷 붐에도 힘입은 바 크지만 이사장의 사업 열정, 합리적인 사고, 과감한 결단력에서 비롯한 측면이 크다.

그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박사과정을 밟다 인터넷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국의 핫메일 서비스에서 힌트를 얻어 무료 e메일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과감한 결단력이 돋보인다.

한국 경제는 이제 지식경제, 디지털경제 시대로 급속히 전환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의 성패가 편중된 자본을 어떻게 확보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갈렸지만, 이제는 지식과 정보를 어디에서 얻고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 되고 있다. 자금시장이 활짝 열린 오늘날, 새로운 성공신화는 사람이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런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사람이 전문성과 효율성, 합리성을 겸비한 전문경영인이다.

휠라코리아 윤윤수 사장은 “오너 한 사람의 무모한 의지만으로 사업을 벌이던 시대는 끝났다”며 “디지털경제 시대에는 정교한 지식과 선견지명이 있어야만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지혜를 가진 경영자라면 그가 오너 출신인지,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출발한 전문경영인인지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디지털경제가 전문경영인 전성시대의 만개를 재촉하고 있다.

휠라코리아 윤윤수 사장

“오너 체제와 전문경영인 체제 중 어느 것이 더 좋으냐 하는 논의는 이제 무의미합니다. 세계 경제에 급속히 편입되고 있는 우리 경제의 내일을 생각하면 전문경영인 체제의 도래는 피할 수 없는 대세입니다.”

윤윤수 휠라코리아 사장은 한국 경제의 발달과정에 전문경영인 체제의 정착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뭡니까.

“기업 경영에서는 자본과 사람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핵심인데, 지금까지 국내 기업들은 자본을 주무기로 사업을 해왔어요. 자본에 대한 수요가 늘 공급을 웃돌았던 반면, 사람은 넘쳐났으니 성공의 열쇠는 자본에 있었지요. 경제개발 시대에 오너 체제가 중요했던 것도 오너가 자본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이 전세계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오늘날에는 자본보다 사람의 가치가 중시될 수밖에 없지요. 자본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전문경영인만이 기업이 살아남게 할 것입니다.”

-디지털경제 시대에는 전문경영인의 위상도 달라지겠지요?

“당연하지요. 미래 경영의 핵심요소는 시간·공간·지식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거나 투자할 때 결정권자의 의지에만 의존해선 안 됩니다. 기간산업에 대규모로 투자하던 과거엔 그런 방식이 통했는지 몰라도 정보통신이 발달하고 경영환경이 급격하게 바뀌는 시대에는 전문지식에 바탕을 둔 정교한 예측이 주효할 것입니다. 이제 전문경영인은 오너로서는 불가능할지도 모를, 미래를 지향하는 핵심 투자를 결정하는 위치에 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오너의 위상에도 변화가 올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제 오너들도 냉정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비즈니스에 대한 전문지식 없이 기분이나 취미로 사업을 벌였다가 많은 사람을 고생시킬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기보다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자신의 투자에 따른 과실을 따 먹으며 안락하고 윤택한 생활을 즐기는 게 나아요. 돈이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앞으로는 사람이 돈을 벌어다 줍니다.”

-우리 기업들의 경우 전문경영인 체제의 정착 속도가 더딘 듯합니다.

“기업들의 역사가 짧은 것도 이유일 수 있습니다. 또한 오너층을 포함해 가진 자들의 기득권 보호 의지가 워낙 강했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전환기에 접어든 느낌입니다. 지금을 시작이라고 본다면, 앞으로 5년 이내에 전문경영인 체제가 정착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유능한 전문경영인에 대해서는 확실한 보상으로 성과를 인정해주는 풍토가 마련돼야 합니다.”

-전문경영인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앞으로 경제 전반에 정부가 간여할 부분은 줄어들 것입니다. 다만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는 지금까지보다 더 큰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기업의 회계감사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기업과 타협해 허위로 회계보고서를 감사한 회계법인은 강력하게 제재해야 합니다. 회계법인과 기업이 타협하지 않으면 회계법인의 신뢰도가 올라가고 기업도 투명성을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전문경영인도 투명한 경영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신동아 2000년 3월호

3/3
문주용 서울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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