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8월 단행된 한화기계 베어링사업부문 매각은 두 가지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단순히 자산이나 지분을 넘기는 방식이 아니라 외국업체와 새로운 합작법인을 만든 후 여기에다 사업부문을 매각하는 독특한 유형의 구조조정으로 외자를 유치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한화기계 전체 매출의 60%대를 차지하는 주력사업이고, 국내시장 점유율이 70%대에 이르며, 연간 매출 2633억원에 20억원의 흑자를 내는 우량기업을 팔았다는 사실이다. 이 회사가 매출규모에 비해 흑자가 작았던 것은 부채비율이 높은 한화기계에 소속돼 있어 차입금 상환 등 영업외수지가 마이너스였기 때문이다.
워낙 알짜사업이었기 때문에 한화가 매각 용의를 내비치자 독일 FAG, 스웨덴 SKF, 일본 NSK, 미국 팀켄 등 세계 유수의 베어링 제조업체들이 관심을 보였다. 한화는 처음에 SKF와 접촉했는데, SKF의 경쟁사인 FAG가 이에 자극받아 새 경영진을 한국에 급파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덕분에 한화는 대등한 위치의 두 경쟁업체를 저울질하며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또한 한화는 환율이 요동치던 당시 FAG와는 마르크화, SKF와는 원화로 가격협상을 진행함으로써 환율 변화에 따라 유리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다.
FAG는 베어링사업을 실사한 후 2500억원을 적정 인수가로 제시했다. 그러나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한화는 “향후 3년간 매년 300억원, 즉 900억원의 이익을 내지 못하면 차액을 배상하겠다”는 파격적인 히든 카드를 제시해 최종 협상가를 3000억원(3억8000만마르크)으로 끌어올렸다.
한화기계가 FAG와 30 대 70의 비율로 자본금 2500억원 규모의 합작회사인 FAG한화베어링을 설립하고, 이 회사에 한화기계가 베어링사업부문을 매각하는 방식이었다. 한국에 유통망이 없고 국내 경영환경에 낯선 FAG는 인수가를 높여주는 대신 베어링사업 운영과 국내 판매 노하우를 가진 한화기계에 지분 참여를 요청했던 것.
이로써 한화기계는 FAG한화베어링에 지분 30%인 800억원을 출자하고도 2200억원을 남겨 그룹의 협조융자를 갚는 데 요긴하게 사용했다. 또 베어링사업부문을 정리하고도 합작사 경영에 참가, 베어링사업을 계속하는 한편 임직원 고용승계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FAG한화베어링은 설립 이듬해인 1999년에 벌써 순이익이 400억원을 넘어섰다. 이 회사는 현재 FAG그룹 전체 매출의 14%와 순이익의 65%를 차지하는 등 FAG그룹에서 최고의 경영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한화의 구조조정 작업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한화에너지·한화에너지프라자 매각이었다. 한화에너지는 김승연 회장이 선대 회장인 김종희(金鍾喜)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한화그룹의 모체기업으로, 그룹 외형의 43%를 차지하는 주력기업 중의 주력기업.
하지만 가뜩이나 경쟁이 치열한 국내 정유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 메이저 업체와 신규 수입판매사들까지 뛰어들어 경쟁이 더욱 격화된 마당에, 한화에너지는 시장점유율이 12%에 불과하고 과열경쟁에 따른 적자 누적으로 성장에 한계를 보였다. 게다가 한화에너지의 부채가 무려 3조원에 육박해 두 회사를 팔지 않고서는 그룹의 자금사정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어려웠다. 마침 정부가 빅딜을 권유한 터라 한화에너지를 시장점유율이 10%에 머물던 현대정유에 매각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1999년 4월 본계약이 체결됐다. 현대정유는 3조원 규모의 한화에너지 정유부문과 한화에너지프라자를 가져오는 대신 한화에너지의 부채 3조원을 떠안기로 했다. 한화는 정유부문 빅딜로 당시 328%였던 그룹 부채비율을 255%로 낮췄다. (주)한화 한화종합화학 등 주력 계열사들이 안고 있던 한화에너지에 대한 채무보증도 일시에 해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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