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소비자 못지않게 안경사들에게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안경사법이 제정되어 안경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안경사만 안경점을 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들이 소비자들에게 어떤 안경테를 권하냐가 판매율에 큰 영향을 끼치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안경사들이야말로 가장 큰 고객인 셈이다. 서전은 안경사들에게 분기마다 ‘서전소식’이라는 소식지를 발송해 안경업계의 소식과 안경상식, 각종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이전에는 업체가 한 점포와 거래를 성사시키려면 많은 부대조건을 들어줘야 했지만, 서전이 등장하면서 그런 요구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져갔다. 품질 좋은 제품으로 수익을 보장해주자 서전의 특약점이 되려는 점포가 날로 늘어났던 것이다.
서전안경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특약점이 300개에서 500개, 다시 1000여 개로 늘어났지만 육회장은 자만하지 않았다. 그는 서전안경이 본 궤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1992년부터 해외수출을 겨냥했다. 좁은 국내시장만으로는 매출액 신장에 한계가 있기도 했지만, 오래 전 외국을 다니며 가슴에 품었던 꿈을 실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에 대한 불신이 가장 높은 장벽이었다.
“외국 바이어들에게 서전안경을 보여주면 품질은 뛰어나다고 인정하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이기 때문에 절반 가격밖에 인정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울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게 우리 수준이었으니까요.”
그는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길은 독창적인 제품을 만드는 길밖에 없음을 깨닫고, 디자이너들을 독려하며 신제품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 스스로 영감을 얻기 위해 환갑을 넘긴 나이에 세계의 유명 안경 디자인과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그러다 안경테에 꽃시리즈, 자연시리즈, 악기시리즈를 디자인하자는 의견이 올라왔지요. ‘바로 이거구나’ 싶었습니다. 외국인들이 그런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얘길 언뜻 들은 적이 있거든요. 하지만 그런 디자인은 공이 많이 들고 제조단가가 높아 엄두를 못내고 있었어요. 최고급 안경이 아니면 마음먹기 힘든 디자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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