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지주 회장 후보 추천위원회 면접에서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투자 손실 문제가 거론됐다. 그러나 당시 황 회장 내정자는 “우리은행 내부 규정으로 정한 등급 이상의 평가를 해외 신용평가기관에서 받았기 때문에 담당 부행장이 알아서 투자했다”고 해명했다는 후문이다. 황 회장 내정자에겐 다행스럽게도 다수의 추천위원이 ‘이해’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는 이 관문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황 회장 내정자의 해명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많다. “1조원 규모의 CDO 투자를 행장이 몰랐다는 것은 난센스”라는 것. 더욱이 2006년 말 자산(신탁자산 제외) 규모에서 신한은행을 제칠 때 결정적으로 기여한 게 바로 CDO 등 IB(투자은행) 자산이었다는 점도 황 전 행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우리은행 내부에선 “황 행장이 내부 반대를 물리치고 CDO 투자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우리은행 내부에선 또 황 전 행장이 올해 들어 당시 박해춘 행장에게 전화를 걸어 홍대희 부행장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금융권에선 이를 두고 “황 회장 내정자가 자신의 책임을 자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홍대희 전 부행장은 “고생한 임원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 차원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반박했다.
또 홍대희 전 부행장이 예보의 징계 결정을 앞두고 이에 반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도 우리은행 안팎에선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홍 전 부행장은 “왜 나만 문제 삼느냐, 계속 이런 식이라면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주변에 얘기하고 다녔다고 한다. 황영기 전 행장도 책임이 있는데, 자신만 ‘독박’을 쓰게 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황 회장 내정자에게 호의적인 인사들이 제기하는 ‘동정론’은 세 가지 정도다. ▲ 세계적인 투자은행(IB)들이 낸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손실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고 ▲ 홍대희 당시 부행장이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의혹이 있는 데다 ▲ 금융이란 원래 수업료를 내가면서 배우는 것이라는 해명이다.

‘부실 보고’ 의문은 박해춘 행장 시절 홍대희 부행장의 행태에서 비롯됐다. 당시 홍 부행장은 박 행장에게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투자 상황에 대해 ‘종합보고’를 하면서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황영기 행장 시절에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던 것.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파생상품 투자 경험이 있는 황 전 행장이 홍 부행장에게 휘둘렸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수업료 지불론’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금융업 담당 한 애널리스트는 “금융을 배우기 위해선 수업료를 내야 한다는 얘기는 맞지만 우리은행의 경우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과거 한 번도 투자해본 경험이 없는 파생상품을, 그것도 불과 1~2년 사이에 급격히 불린 것만으로도 CEO는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
전략적인 차원에서 은행이 CDO 같은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금융 전문가도 많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CDO는 수익률이 높긴 하지만 위험 역시 높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국민은행 사외이사인 조담 교수(전남대 경영학과)는 “강정원 행장은 CDO 투자를 요청받았지만 이런 이유로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계의 은행을 규제하고 있는 바젤Ⅰ, 바젤Ⅱ라 불리는 은행의 자기자본 규제 관점에서 봐도 우리은행의 CDO 투자는 이해하기 힘들다. 바젤Ⅰ, 바젤Ⅱ란 대출 비즈니스를 함부로 확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것. 이 규제가 시행된 후 은행은 대출을 늘리기 위해선 일정 비율만큼 자기자본을 늘릴 의무를 지게 됐다. 바꿔 말하면 은행은 한정된 자기자본을 활용해 최적의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짜서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