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가마다 한 집 건너 식당이 들어섰다 폐업하곤 한다. 그렇게 300만 명이 외식업에 종사한다. 인구 기준 6%. 경제활동인구 기준 11.3%가 일하는 ‘산업’이다. 국가경제의 한 축인데, 생계형 창업이 주를 이룬다. 경기에 민감해 실패하는 예가 많다. 6월에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외식업을 직격했다.
“56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메르스 확산 전 2주와 확산 후 2주를 비교했더니 평균 매출이 36% 감소했습니다. (메르스 환자가 처음 발생한) 평택의 외식업 매출 감소율은 60%나 되고요. 자금이 돌지 않아 빚 독촉에 시달리는 회원이 적지 않아요. 신용등급과 관계없이 사업자등록증 사본만 제출하면 대출해주는 긴급 구조가 필요합니다.”
제갈창균(67) 한국외식업중앙회 회장은 “외식업이 참으로 힘들다”고 한숨을 지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생계형으로 창업하는 분이 대부분인데, 안타깝게도 폐업하는 비율이 26.5%에 달합니다. 다른 산업의 2배 수준이에요. 대기업이 골목 상권까지 파고드는 데다 저성장이 이어지고 규제가 늘어나면서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습니다. 지난해엔 세월호 사건 여파로 고생했는데 올해는 메르스가 덮쳤어요. 가뜩이나 불황 탓에 소비 위축이 심합니다. 김영란법은 또 뭡니까. 직무와 관련해 대가성 없이 밥을 얻어먹어도 처벌하는 것인데, 이건 외식업에 상상할 수 없는 타격을 줍니다.”
식당 하는 여성의 고통
한국외식업중앙회 회원은 41만9600명이다. 외식업 경영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다. 제갈창균 회장은 37년 전 대전에서 중식당을 창업했다. 5월 28일 서울 중구 한국외식업중앙회에서 그를 만나 외식업인이 마주한 현실과 그가 내놓은 대안을 들어봤다.
“식당 하는 여성이 겪는 고통을 압니까. 제 아내가 ‘다시 태어나 중화요리집 하는 사람하고 살라고 하면 차라리 죽겠다’고 해요. 와이프 보면 불쌍하죠. 무릎 연골이 다 녹아내렸어요. 먹고살 만해지니 병이 든 거예요. 비참하죠. 안방에 등 하나 달랑 켜놓고 TV 보는 아내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 외식업 일이 굉장히 어려워요. 부부 식당이 참 많아요. 식당 하는 여성의 고통은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힘들어요, 도와주십시오.”
그는 “대기업이 골목 장사까지 파먹어서야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30대 그룹이 밥장사 하는 게 말이 됩니까. CJ가 ‘계절밥상’이라는 한식 뷔페를 합니다. 신세계는 ‘올반’, 이랜드는 ‘자연별곡’, 롯데는 ‘별미가’. 대기업 사이에 경쟁이 제대로 붙었더군요. 이 사람들, 도대체 뭐하자는 겁니까. 품격이 없어요, 한국 대기업은. 급에 맞는 비즈니스를 해야죠. 세계시장에서 경쟁해야지, 밥장사라뇨. 이런 기업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명색이 대기업이란 곳이 서민이 생계로 삼는 밥장사에 뛰어들어 밥그릇을 빼앗다니요. 기업가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 42만 회원 중 75%가 연 매출 2억 원 미만의 영세 업주예요. 월 매출이 1600만~1700만 원인데, 10%쯤 순익으로 남는다고 보면 월 170만 원을 가져갑니다. 생계가 안 돼요. 대기업이 하는 한식 뷔페는 블랙홀입니다. 싹 다 빨아들입니다. 한숨만 나와요.
동반성장위원회가 2013년 외식업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했습니다. 대기업은 연면적 2만㎡이 넘는 복합다중시설이나 지하철역 출구로부터 반경 100m 이내에만 외식업을 열도록 했지만, 본사와 계열사가 소유한 건물에서는 자유롭게 식당을 여는 예외조항을 뒀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기업은 중소기업적합업종을 오히려 축소해달라고 주장합니다.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요?”
구내식당, 구내외식당
▼ 대기업들은 “외식업도 다국적 자본에 맞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탐욕이 빚어낸 어불성설이죠. 이러다간 골목 상권이 무너집니다. 외국계 기업이 몰려온다고요? 외식업자의 95% 이상이 우리 정서에 맞는 한국 음식을 취급합니다. 한식이든 양식이든 다 문제지만, 대기업이 앞다퉈 진출하는 한식 뷔페가 가장 큰 문제예요. 대기업이 유통업을 함께 운영하는 터라 식자재 수급에서부터 영세 식당이 경쟁할 수가 없습니다. 씨름판을 만들어놓고 초등학생과 대학생을 붙여봐요.
한식 뷔페 돌풍을 일으킨 CJ 계절밥상의 매장당 하루 평균 방문객이 10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압니다. 계절밥상 이웃에 있는 음식점을 한번 가보세요. 점심, 저녁 다 파리 날립니다.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음식점은 모두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감돕니다.”
그가 “황교안 국무총리가 참 반듯하더라”고 운을 뗐다. 황 총리는 법무부 장관 시절 ‘월 1회 동네식당 가는 날’을 도입했다. 검사를 포함한 법무부 소속 공무원 3만여 명이 동네 식당을 이용해 골목 상권을 살리는 데 앞장서겠다는 취지였다.
“이젠 구내식당도 대기업이 다 장악했어요. 대기업은 자사가 중국에서 만든 냉동식품을 자사가 운영하는 급식업체에서 소비합니다. 식자재부터 식당 영업까지 수직계열화한 겁니다. ‘문어발’도 정도껏 해야죠. 구내식당이라는 게 뭡니까. 예컨대 동아일보 기자들이 동아일보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는 거잖아요.
요즘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구내’ 사람만 먹는 게 아니라 외부인을 상대로 영업합니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시청, 구청 같은 관공서도 밥장사를 하고 있어요. 시청, 구청 청사를 시민, 구민 세금으로 화려하게 짓습니다. 그런 곳 구내식당 인테리어 한번 보세요. 고급 뷔페 뺨칩니다. 물론 밥장사하는 우리가 낸 세금도 그런 구내식당에 들어가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