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 이슈에 대해 대중의 기대보다 빨리 반응하는 이부진 사장은 “촉이 살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벌가 여자가 평범한 남자와 연애 결혼했다는 점 말고도 이 사장은 경영자로서 여러 가지 의외성을 보여줬다. 2011년엔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유명 한복 디자이너가 호텔신라 식당 입장을 거부당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자 이 사장은 바로 다음 날 당사자를 찾아가 사과했고, 2014년에는 신라호텔 정문을 들이받은 택시기사의 딱한 사정을 알고 5억 원 상당의 피해복구 비용을 호텔신라가 대신 부담하기로 했다. 이 ‘택시 사건’으로 이 사장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는 대중의 격찬을 받았는데, 이 일이 발생 한 달 후에야 알려져 박수가 더 커졌다.
“사건 당일에는 고객이나 직원이 다치지는 않았는지 경황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이 사장이 한인규 부사장에게 택시기사 분은 괜찮은지 직접 가보라고 지시했다. 한 부사장이 우족과 쇠고기, 신라호텔 베이커리를 싸들고 찾아갔더니 82세 노인 기사 분이 병원도 가지 않고 걱정에 한숨도 못 자고 누워 계셨다. 공제보험 든 게 고작 5000만 원이라고 했다. 보고를 받은 이 사장이 법적 문제는 없는지 검토해본 뒤 변제해주라고 지시했다. 외부에 알릴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이 얘기가 먼저 돌았고, 인터넷에서 회자되다 기자들에게 포착돼 언론에 보도됐다.”(호텔신라 관계자)
클라이맥스는 ‘메르스 대처’가 장식했다. ‘141번 환자’가 잠복기 상태에서 제주 신라호텔에 머문 것으로 확인된 다음 날인 6월 18일, 이 사장은 즉각 영업 중단을 결정했다. 정부는 ‘영업 자제’를 권했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것이다. 그는 6월 18일부터 9일 동안 제주도에 머물며 방역, 소독, 직원들의 자가격리 등을 챙겼다. 7월 1일 영업을 재개했으니 하루 3억 원씩 30억 원가량의 매출 손해를 감수한 결정이었다.
리더십 및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는 두 가지 측면에서 호텔신라의 메르스 대응을 기업 위기관리의 모범 사례로 평가했다.
“질병이나 식품 관련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중의 신뢰를 잃지 않으려면 대응을 압도적으로 해야 한다. 인재를 스카우트할 때 그의 기대를 크게 뛰어넘는 연봉을 제시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업 처지에서 과잉조치라고 할 정도로 대중의 예상을 뛰어넘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메르스 잠복기에는 전염력이 없는데도 영업장 폐쇄를 결정한 것은 잘한 조처였다.
무엇보다 위기 현장에 최고경영자(CEO)가 있다는 사실은 확고한 사인이다. 직원에겐 믿음을, 외부인에겐 신뢰를 심어준다. 우리 경영자들은 위기 상황에서 직접 나서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부진 사장은 메르스 등 위기 상황 때마다 직접 나섬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고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다른 CEO들이 눈여겨보고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촉이 살아 있다”
박영숙 프레시먼힐러드코리아 대표는 “미적지근하게 굴지 않고 대중의 기대보다 빨리 반응한다는 점에서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하는 타이밍을 잘 다루고 있다”며 “호텔신라와 이부진 사장은 한마디로 ‘촉이 살아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의적으로 형성된 이미지 덕분인지, 그의 이혼 소식에 달린 인터넷 댓글들을 살펴보면 이 사장은 이혼 이슈로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호 대표는 “호텔신라 실적이 매우 좋다는 점, 그리고 최근 몇 년간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쌓아왔다는 점이 안 좋은 이슈에서 방어막이 돼주고 있다”고 봤다. 이러한 호의적인 외부 평가에 대해 호텔신라 측은 “영광이고도 과분한 평가”라며 몸을 낮춘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요즘 세상에 인위적인 홍보는 효과가 없다”며 “이 사장이 어떤 사안에 대해서나 진정성 있는 태도를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이 자연스럽게 호평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연세대 아동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복지재단에서 일하다 삼성전자 전략기획팀을 거쳐 호텔신라로 왔다. 그가 오빠나 동생과 달리 해외유학을 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호텔신라 관계자는 “국내 사정을 깊게 알아야 한다는 본인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호텔신라 경영에 뛰어든 것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뜻에 따라서라고 한다. 이 관계자는 “호텔업이 여성 경영인의 꼼꼼함과 세련미가 필요한 업종인 데다, 특급호텔을 찾는 까다로운 고객을 만족시키며 고객 중심의 사고를 갖게 된다면 어떤 사업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회장의 뜻이라고 짐작한다”고 말했다.
이 사장과 함께 호텔신라를 이끄는 주역으로는 한인규 부사장(HDC신라면세점 공동대표 겸임), 차정호 면세유통사업총괄 부사장, 허병훈 호텔사업부장(전무 · 서울신라호텔 총지배인 겸임) 등을 꼽을 수 있다. 모두 옛 삼성물산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그룹 내에서 유통을 경험한 인물들을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물산 출신이 주축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부진 사장이 워낙 까다로워 보좌진이 자주 교체된다’는 외부 시선에 대해선 “삼성그룹 임원은 항상 자주 바뀐다”고 응수했다.
이 사장을 직접 만나본 이들은 예의 바르고 다정한 성격이라고 전한다. 모유 수유 관리 때문에 1년간 그를 자주 만난 조 원장은 “처음 한남동 자택을 방문했을 때 2층에서 내려와 ‘찾아와주셔서 감사하다’며 90도로 허리를 숙이고 인사하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며 “남의 얘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고 잘 웃는 아기 엄마”라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