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민단체들이 낙선운동을 시작하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당연히 정계 인사들이다. 특히 낙선운동의 타깃이 자민당 출신 거물 정치인에 집중되자 자민당은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중이다.
자민당 선거책임자 중 한 사람인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 총무국장은 “올바른 정보에 의해 정치가를 비판하는 것은 괜찮지만 한국의 낙선운동이나 일부 주간지 보도를 보면 주관적인 판단이나 잘못된 정보에 의한 것도 있다. 정치가를 조롱하며 우습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연결된다”고 반박한다.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자민당 간사장도 “선거법상 선거공시 이전의 낙선운동을 제한할 규정은 없지만 당사자의 명예를 현저하게 훼손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별도의 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간 나오토(菅直人) 정조회장은 다소 유보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시민단체가 국회의원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뽑아 낙선운동을 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투표율이 올라가면 민주당에도 나쁘지 않다”는 것. 간 회장 자신은 과거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국회의원 입후보자의 특정정책을 평가해 지지여부를 표명하는 시민운동을 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번 낙선운동이 고대 그리스에서 실시했던 도편추방제도와 같은 부작용을 낳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도편추방제도는 부정부패 등을 저질러 정치에 적합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도기(陶器)에 적어 투표해 정계에서 추방하던 제도.
간 회장은 “도편추방제도 때문에 그리이스에는 청렴하지만 리더십은 없는 정치가만 남게 됐다. 낙선대상 평가기준에 부정부패 등 정치스캔들을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제도의 장단점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낙선운동 시민단체에 걸려오는 항의전화도 만만치 않다.
대부분 입후보 예상자 쪽에서 걸려오는 전화로 낙선운동 자체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내용. “배후에 경쟁상대 후보의 지원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에서부터 “우리는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데 발목을 잡는 이유가 뭐냐” “우리를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서로 비난하는 낙선운동은 일본 전통적인 문화가 아니다. 예로부터 서로를 인정하면서 화(和)를 존중해온 우리의 전통을 지키자”는 등의 협박성·설득성 전화가 많다.
또 일부에서는 정치 후진국인 한국을 배우려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일본은 한국과 다르다. 왜 자존심도 없이 후진국인 한국 흉내를 내려 하느냐”는 것.
이에 대해 시즈오카의 ‘무지개와 녹색의 500인 리스트’ 마쓰타니 기요시(松谷淸·49·시즈오카 시의원) 대표는 “낙선운동이라는 네거티브 형태가 바람직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정치불신이 극에 달해 뽑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 자체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한다.
한편 일본 자치성 측은 “선거법상 낙선운동 자체를 제한할 수 있는 조문은 없다. 개별 운동 내용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의견. 판례 등에 따르면 ‘특정 후보자의 당선을 목적으로 하는’ 선거운동은 선거공시 전에는 불가능하지만 특정 후보의 ‘낙선’을 목적으로 하는 낙선운동은 공시 전에도 가능하다는 것. 그러나 선거공시 후에 전단 등의 배포나 포스터의 게시, 선전을 위한 확성기 사용 등은 금지돼 있다. 또 허위사실이나 사실을 왜곡해 공표할 경우 징역이나 벌금 등의 처벌을 받게 돼 있다.
일본 낙선운동은 아직 준비단계
그렇다면 6월25일로 예정된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운동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우선 한국에서도 논란이 됐던 낙선대상 선정기준을 얼마나 공정하게 마련할 것이냐에 따라 이번 낙선운동의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 모호한 기준이나 주관적인 평가에 의해 낙선대상후보를 선정할 경우 오히려 낙선운동 자체가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정치학자인 마스조에소장은 “유권자들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기준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최근 시작된 낙선운동의 성공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편 시민단체들이 불씨를 지피고 있지만 아직은 한국과 같은 뜨거운 열기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시민운동 자체가 한국처럼 대규모로 이뤄지기보다는 주변의 뜻맞는 몇몇 사람들로 구성된 소규모 움직임에 불과하기 때문.
가장 먼저 운동을 시작한 ‘시민연대-물결21’만 하더라도 사무국 요원이 사쿠라이 대표의 가족 등을 포함해 10명에 불과해 가두 집회 때에도 4∼5명이 나가 확성기로 지나가는 시민에게 낙선운동 참여를 호소하는 정도다. 사정은 다른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여서 지역 홍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낙선운동은 국제경쟁력 가진 상품?
낙선운동 시민단체끼리의 연대도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람이 부족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연대활동이 필수적이지만 지금은 서로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는 정도다. ‘시민연대-물결21’도 오사카 센다이 가와사키 등의 낙선운동단체 등으로부터 연대제의를 받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연대방안은 협의하지 않은 상태.
지금까지 정치운동을 해온 시민단체에 대한 불신도 적지 않다. 시민단체의 이름을 내걸고 공명선거운동을 벌여온 단체들이 실제로는 배후에 공산당이나 창가학회 등 특정정당이나 종교집단의 지원을 받아온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또 갑작스러운 중의원 해산으로 총선 일정이 앞당겨져 준비기간이 짧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일본 정계에서는 3월까지만 해도 중의원 임기가 만료되는 10월이 돼야 총선을 실시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당시에는 오부치총리가 7월에 열리는 오키나와 서미트(선진8개국 정상회담)의 의장역할을 뒤 선거를 통해 물러날 것으로 예측됐던 것.
그러나 느닷없이 오부치총리가 쓰러지면서 정치일정이 갑자기 앞당겨졌다. 집권당인 자민당이 오부치총리가 과로로 쓰러졌다는 점을 부각해 동정표를 얻겠다는 의도로 6월12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25일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한국 낙선운동을 관심있게 지켜보며 10월 중의원선거를 대비해 느긋하게 준비하던 시민단체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유권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6월로 당겨지자 시간적 여유가 없어진 셈이다.
지금까지 정치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던 한국. 그러나 지난 총선 때 보여준 낙선운동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질 게 없는, 국제경쟁력을 지닌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찬반 논란도 많지만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다른 나라에까지 영향을 준 성공작으로 세계는 평가하고 있다.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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