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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관인술·박리다매로 富 거머쥔 ‘商人種’

만만디(慢慢的) 중국인, 돈벌이엔 콰이콰이디(快快的)

인내·관인술·박리다매로 富 거머쥔 ‘商人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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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관인술·박리다매로 富  거머쥔 ‘商人種’

상하이 위위안 상창 거리 한 모퉁이에 서 있는 파차이관(發財官). 표정이 아주 익살스럽다.

그곳 상점에는 한눈에 봐도 없는 게 없는 듯했다. 식당에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쟈오쯔(餃子)가 식탁에 오르고, 옷가게에선 양장과 치파오(旗袍)가 함께 걸려 있었다. 백화점에선 종업원들이 일본어와 한국어로 연신 조잘댔다. 여기에 골동품상과 영화관, 오락실, 기념품 가게들이 가세했다. 최근 문을 연 스타벅스 커피숍도 보였다. 중국 전통 건물에 들어 있는 커피숍은 스타벅스가 중국에 상륙했다기보다는 중국 속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줬다.

위위안 상창의 중심은 각종 상하이 요리를 파는 레스토랑. 파차이관은 그 바깥 모퉁이에 서 있었다. 높이는 2.5m 정도로 꽤 컸고 생긴 모습은 익살스럽다. 투입구에 동전을 집어넣으면 돈을 벌 수 있는 요령을 가르쳐준다고 되어 있었으나 중국어를 못해 사진만 찍었다. 그러나 파차이관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데도 2위안(元)의 ‘거금’을 내야 했다. 얼마나 돈을 벌고 싶었으면 이런 아이디어까지 짜냈을까.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와 천재지변 등으로 늘 가난과 함께 살았던 그들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돈을 버는 것밖에 없었다. 공허한 정치보다는 빵으로 바꿀 수 있는 돈이 그들에겐 더 중요했다. 그런 만큼 돈에 대해서는 떳떳할 수 있었다.

돈을 버는 방법으로는 농사도 있고, 관리가 되는 길도 있었지만 뭐니뭐니해도 장사가 최고였다. 관리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고, 농사는 아무리 잘 지어도 고생한 만큼의 대가 정도를 얻는 데 그치고 말기에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장사였다.

‘상인종’ 원조는 商나라



장사를 일컫는 ‘상(商)’이란 말도 중국에서 태어났다. 상은 원래 기원전 1500년경 황하(黃河) 유역에서 일어난 왕조와 그 왕조가 지배한 시절을 의미한다. 은(殷)이라 불리는 왕조의 처음 이름이 상이었다. 한자의 조상이 되는 갑골문자와 청동기 문화는 상 왕조가 남긴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상은 주(周) 왕조에게 무너졌다. 그리하여 졸지에 떠돌이 신세가 된 상의 유민들은 장삿길에 나섰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장사하는 이들을 상나라 사람, 곧 상인이라 불렀다.

중국에 화폐가 등장한 것도 공교롭게 이때부터였다. 1997년 상하이의 중심지구인 런민(人民)광장 한 곳에 현대식 건물로 지어 문을 연 상하이박물관 화폐실에서 이 사실을 똑똑히 확인했다. 거기에는 아주 먼 옛날 화폐 대용으로 썼던 조개껍질 형태의 패화(貝貨)에서 청나라 말기의 지폐에 이르기까지 중국 대륙에서 통용됐던 각종 화폐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기원전 21∼16세기 하(夏)와 상 왕조에서 쓰였던 패화는 주나라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금속화폐라 할 수 있는 포전(布錢)으로 바뀌었다. 그때가 기원전 8세기, 상나라 유민들이 상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던 시기다. 이는 또 에게해의 상권을 장악하며 해상무역 국가로 발돋움한 그리스에 코인(coin)이 등장하기 200년 전이다.

여기에서 포(布)는 농기구 모양으로 생긴 금속화폐로 베(布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당시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기에 그런 모습을 갖게 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아무튼 포는 800년 넘게 사용됐기 때문인지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처음엔 실제의 농기구를 빼다 박은 듯하던 것이 후대로 내려오면서는 상당히 동떨어진 모양으로 변했다.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이 칼 모양으로 생긴 도전(刀錢)으로 춘추전국시대 제나라를 중심으로 쓰였다.

옛 동전이라고 하면 쉽게 떠오르는 엽전(圓錢)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화폐개혁을 실시하면서 내놓은 회심의 역작이었다. 이때에 들어서야 중국의 화폐는 비로소 서양의 코인처럼 둥근 형태를 띠게 된다.

하지만 코인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났다. 우선 표면에 새기는 도안 자체가 달랐다. 그리스·로마에서는 왕의 초상이나 신의 형상, 또는 이삭(穗)의 모양을 새겼으나, 중국인들은 글자를 새겼다. 두 번째 차이점은 엽전에는 한가운데 구멍이 나 있다는 것이다. 그걸 이용해 꾸러미로 엮으면 많은 엽전을 휴대할 수 있기에 그만큼 효용가치가 높았다.

돈은 돌고 돈다고 해서 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하지 않던가. 돈은 유통돼야 하는 것이다. 유통 속도가 느리면 더 많은 화폐를 찍어내야 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이지만, 경제활동이 지지부진하다는 것을 뜻하므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는 현대 경제학에서도 그대로 진리다.

이같은 중국인들의 생각은 장방형의 지폐를 두고서도 원(圓·지금의 ‘元’은 ‘圓’의 약자다)이란 명칭을 사용했던 것을 보면 그보다 훨씬 후대인 청대에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붉은색을 좋아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붉은색은 처음에는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벽사(?邪)의 의미로 쓰였으나, 붉은색을 띤 피가 온몸을 잠시도 쉬지 않고 돈다는 것을 알고는 유통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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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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