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제일의 컨테이너 전용 항구 닝보항(왼쪽)과 그림같이 아름다운 닝보해변의 주택가.
그러던 어느 날 외딴 산중턱에 있는 어느 소학교에서 작은 행운이 찾아왔다. 교사를 포함해 전교생이 고작 13명인 이 학교에서 배지를 사겠다고 한 것이다. 장화는 배지를 개당 1쟈오2펀(0.12위안)에 팔기로 했다. 엄청 밑지는 장사였지만 장화는 이를 악물고 계약서에 서명했다.
장화는 배지 제조업자에게 3일 내에 배지 13개를 만들어 그 시골학교로 보내달라고 급전을 쳤다. 전보 치는 값 3.6위안에다 배지 형을 뜨는 비용, 제작비용, 운송료까지 모두 70위안 정도가 들었다. 그렇게 해서 번 돈은 고작 2.06위안이었다. 밑져도 이렇게 밑지는 장사가 없었다.
그러나 몇 달 뒤 그 시골학교가 소속된 향(鄕, 우리의 면) 단위 전체 초·중·고등학교 운동회가 열리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교사의 인솔 아래 12명의 산촌 소학교 학생이 가슴에 번쩍거리는 배지를 달고 운동장에 들어서자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학부형들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들은 빛나는 배지를 단 소학교 어린이들을 몹시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운동회가 끝나자마자 향 내 모든 학교로부터 배지 주문이 이어졌다. 배지 달기 붐은 현(縣)에서 다른 현으로, 다시 간쑤성 전역으로 확대되어 장화는 수백만 위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훌륭한 기업인은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어서도 안 되지만, 이익이 남는 작은 사업을 무시해도 안 될 것이다. 파리머리가 소머리를 부른다. 닝보상인에게는 사소한 것이나 큰 것이나 이득이라면 다 좋은 것이다.
촘촘한 네트워크
일곱째, 닝보상인들은 잘 뭉친다. 또 네트워킹 자체를 즐긴다. 닝보방은 고향의 정서와 우의로 끈끈하게 연결된 매우 긴밀한 상업집단이다. 그들은 상조회를 설립하여 동향인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고 노인과 가난한 자를 돕고 동향 상인들의 어려운 문제를 서로 도와 해결한다.
유통상들의 주문, 상품의 종류와 매매현황을 통해 단시간 내에 습득한 고급정보를 혼자만 갖고 있지 않고 동향상인들과 나눈다. 그들은 지역별로 구분된 중국시장은 물론 전세계 시장 상황을 토론하고 공동의 이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기꺼이 맡는다. 닝보상인은 크고 작은 전문 도매시장과 전국 각지의 시장들과 탄탄하게 연결된 ‘닝보마켓 네트워크’를 통해 거의 모든 것을 팔고 있다.
여덟째, 닝보상인은 정치권력과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광둥상인처럼 정치를 지나치게 배척하지도, 베이징상인처럼 정치에 열중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국가의 운명에 결부시키고 민족의 흥망과 운명을 같이하는 자세로 기업을 경영한다. 이것이 세월이 흘러도 닝보방이 늙거나 죽기는커녕 갈수록 젊어지고 강해지는 비결 중 하나다.
그들은 국가에 충성하고 (집권)정부의 방침에 적절히 순응해왔다. 그 때문에 중국의 국부(國父) 쑨원을 위시하여 국민당 정부 수반 장제스, 중국공산당 3대 지도자로 꼽히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장쩌민의 지지와 애호를 변함없이 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마을 하나가 있다. 바로 장제스의 고향인 닝보시 펑화(奉化)현의 시커우(溪口)다. 중국정부는 시커우에 있는 장제스의 모친과 선조의 묘 등 장제스 가문과 관련한 모든 유적을 성지에 준하는 관광지로 꾸며놓았다. 장제스 고택 앞에 서 있는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 있다. “항일 영웅 장제스 중국국민당 위원장은 마오쩌둥 중국공산당 주석의 위대한 맞수였다”라고.
타이완을 비롯한 해외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시커우의 장제스 유적지에서 벌어들이는 관광 수입은 닝보시 전체 관광수입의 절반을 넘는 거액이다.
끝으로 닝보상인은 중국상인의 장점들만 한데 모아놓은 이른바 ‘모듬상인’이다. 그들은 신용과 명예를 중시하되 뛰어난 상술을 구사한다. 그들은 박리다매를 추구해 상품 품질에 비해 가격도 적당하다.
돈을 중시하나 광둥상인처럼 지나치지 않고, 정직하고 성실한 편이나 산둥상인처럼 우직하지 않으며, 품격에 신경을 쓰나 베이징상인처럼 관료적이지 않다. 중국상인의 지존이라 불리지만 외지인을 깔보고 지나치게 영악스럽다는 혹평을 듣는 상하이상인보다 오히려 친절하면서도 영민하게, 소리 소문 없이 짭짤한 재미를 보는 게 닝보상인들이다.
착실한 안정 속에 쾌속의 성장을 추구하는 닝보상인. 돈을 잘 버는 가운데서도 중용과 조화의 상술을 적절히 구사할 줄 아는 그들과의 거래에서 과도한 투기성 사업으로 유혹하는 일은 금물이다. 그보다는 온당하고 듬직한 인상을 주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