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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민주화 돌풍과 미국의 고뇌

쇠퇴기 접어든 패권 시험하는 ‘원칙 vs 이익’의 딜레마

중동 민주화 돌풍과 미국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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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으로도 미국은 바레인 사태를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바레인은 걸프만과 아라비아해, 홍해로 진출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미 해군 5함대가 주둔하고 있다. 만에 하나 민주화 시위로 바레인의 수니파 왕권이 물러나고 시아파 정권이 들어설 경우 바레인이 이란의 영향권에 놓일 수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더욱이 바레인에서처럼 수니-시아파 사이의 갈등이 아랍권 전체로 확산되면 역내 불안정이 빠른 속도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고,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와중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예의 민주주의 가치를 내세워 바레인 국왕에게 전화를 걸어 비폭력적인 시위대에 대한 바레인 당국의 발포를 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레인 모델’의 가능성

그러나 바레인 사태를 지켜보는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GCC에는 바레인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오만 등 산유국들이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다. GCC 회원국들은 바레인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2월17일 긴급 회동을 가진 뒤 바레인 정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고, 동시에 다각도로 미국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민주주의 가치 때문에 이집트 무바라크의 명예로운 퇴진조차 막았다는 불만도 표명했을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이후 이슬람권에 대한 미국의 기존 정책과 태도에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오바마 독트린’의 청사진을 담고 있는 2010년 5월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는 이슬람권 전부를 사악한 집단으로 단정해버리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선제공격론으로 대표되는 부시 독트린 논조와 차별성을 두면서 ‘이슬람 과격주의’ 대신 일반적인 테러리즘이란 용어로 대체한 것만 봐도 그렇다. 2010년 12월 미 국무부가 발표한 4개년 외교·개발 검토보고서(Quadrennial Diplomacy and Development Review)에서도 소프트파워 중심의 미국 외교 방향을 재삼 확인하고 있다.



이렇듯 아랍권 민중의 마음을 얻기 위한 미국의 노력은 한층 확대됐지만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중동 지역의 민심 동향에 대해 미국이 제대로 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했다는 비판이 잇달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보기관이 주로 친미 성향을 보이는 관료나 사회 유력인사들만 접촉하는 바람에 광범위한 사회 정서를 읽는 데는 실패했다는 지적도 있다. 더욱이 이 지역의 뿌리 깊은 반미 정서는 따지고 보면 미국 외교정책의 업보나 다름없고, 정책전환을 시도하더라도 이를 단기간에 해결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워싱턴 역시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바레인의 민주화 과정이나 그에 대한 미국의 대응태도는 이제 하나의 분기점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바레인 모델’로, 급격한 정권교체보다는 기존 정권을 지원하면서 민주적 개혁을 지원하는 점진적 정권개조(regime alteration)에 무게중심을 두는 방향이다. “바레인은 무너지게 내버려두기엔 너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는 국무부 고위급 인사의 발언도 그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동 민주화가 친미 우방국들의 정국 불안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역내 불안정을 야기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미국의 목표라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 외교는 지금 이상과 현실, 가치와 국익 사이의 간극 속에서 타협점을 찾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과연 성공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또 일정정도 성공하더라도 역내 안정화라는 전략적 이익은 얻을 수 있으나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미국 외교의 명분과는 엄연히 괴리가 있고 나아가 위선적이라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겹겹의 고민이다.

리비아 개입은 제2의 이라크전?

반면 리비아 사태는 양상이 다르다. 이집트 민주화 시위는 결국 이집트 군부를 움직임으로써 사태 악화를 막을 수 있었고 퇴로를 찾았다. 그러나 내전에 가까운 유혈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는 좀처럼 정권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리비아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국제사회는 미국의 행동 여부를 주목하고 있다. 리비아 유혈 사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미국이 계속 립서비스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워싱턴은 카다피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외교적, 경제적 대안뿐 아니라 군사행동까지 포함하는 모든 대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고 발표했지만,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은 꽤나 곤혹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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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kimkij@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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