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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 일본’의 소프트파워

국가적 노력으로 만들어낸 새 이미지, 그 양날의 칼

‘쿨한 일본’의 소프트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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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일본이 기존의 하드파워 분야에서 탈피한 소프트파워를 통해 거둘 수 있는 성공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평화헌법으로 인해 영향력 있는 군사대국이 될 수 없고, 경제력 역시 여전히 막강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해왔다. 인구 고령화 현상은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결국 일본의 하드파워는 주변국가에 비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역설적으로 일본이 기대를 걸 수 있는 부분은 소프트파워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소프트파워의 활용?

그러나 소프트파워를 집약하고 강화하는 데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함센 지국장은 “군사력이나 경제력과는 대조적으로 소프트파워의 발전 속도는 달팽이 수준이다.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인과관계의 연결고리를 찾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소프트파워는 약효가 서서히 나타나는 중국의 전통 한약과 유사하며, 정치적·경제적 하드파워는 약효는 빨리 나타나지만 간혹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양약과 같다”고 설명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이 소프트파워를 통해 그간 상실한 경제적 하드파워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소프트파워와 하드파워는 서로 완전히 다른 판에서 작용한다. 소프트파워는 나름의 효과가 있지만 그 효과가 표출되는 속도가 다르다. 그러나 기존의 하드파워를 보상할 수 없다 해도 소프트파워는 그 나름의 독립적인 가치를 지닌다. 오랜 시간 동안 일본의 재능 있는 대중문화 생산자들이 소프트파워에서 일본의 강력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왔고 이를 통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본의 긍정적 이미지는 강화될 수 있었다. 일본은 국가의 호전적인 이미지가 외교정책을 무력화할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라다.

곤도 전 대사는 2009년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일본 정치인들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투입해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발전시키려 한다. 나는 그들에게 망가나 아니메 혹은 기타 일본 대중문화 요소를 그러한 목적을 위해 직접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고 항상 경고해왔다. 한 국가의 소프트파워가 힘을 충분히 갖추게 되면 긍정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지만 이는 우리가 절대로 통제할 수 없는 힘이다. 통제하려 시도하면 부정적인 결과만을 초래할 뿐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소프트파워는 불규칙하게 변화하는 사람들의 취향에 기반을 두고 있다. 궁극적으로 정부가 아닌 시장이 소프트파워의 전파나 세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일본의 소프트파워 축적은 분명 양날의 칼이다. 장차 일본이 보통국가화나 재무장으로 나아가는 대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줄 수도 있고, 거꾸로 전후 일본이 취했던 평화헌법 체제와 국제사회에서의 소극적 역할을 일신하고 새로운 역할을 자임하는 데 활용될 수도 있다. 펭엘람 연구원은 “이데올로기를 막론하고 대다수 일본인이 문화외교를 수긍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좌파에게는 국제관계에서의 비군사적 접근방식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고, 우파에게는 세계가 일본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인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인 것이다. 각자 이유는 다르지만 소프트파워 추구에 대한 일종의 국민적 합의가 형성돼 있는 셈”이라고 평했다.

분명한 것은 만약 일본의 정치인들이 이렇게 축적된 소프트파워를 제대로 관리, 통제하지 못한다면 모든 상황을 망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힘의 정치에서 전쟁의 역사는 여전히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5월 아베 신조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만 명의 한국과 중국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것은 강압에 의한 게 아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진보적 성향의 아사히신문은 분노 섞인 사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프트파워의 축적을 꿈꾸는 모든 국가에 두고두고 유용할 수밖에 없는 한마디다.

“소프트파워 창출에 필요한 국가적 존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수개월이 아니라 수년이 걸린다. 또한 이렇게 애써서 얻은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총리를 비롯한 다른 고위 정치인들이 불신과 분노를 자아내는 자극적인 발언을 이어나간다면, 다른 국가들이 일본으로부터 느끼는 매력은 빠르게 사라져버릴 것이다.” (영어 원문은 http://www. globalasia.org/V6N1_Spring_2011/Asger_Rojle_Christensen.html 참조)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하에 아시아 지역 주요 현안에 관한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신동아 201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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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아스거 뢰즐레 크리스텐센| 북유럽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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