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11일 이집트에서 벌어진 민주화 요구 시위.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외국 언론과의 첫 단독 인터뷰를 아랍권 뉴스 전문 채널인 알 아라비아 방송과 가졌다. 2009년 4월 터키 방문 때에는 “미국과 이슬람 세계의 관계를 재건해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갖고 있다”고 했다.
2009년 6월4일 이집트 카이로대학교에 모습을 드러낸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도 회자되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유명한 연설을 한다.
“미국은 이슬람이 아니라 극단주의자와 싸우는 것이다.” “중동의 민주화, 종교적 자유, 여성 권리 신장, 경제발전에 기여하겠다.” “존엄, 기회, 독립을 원하는 팔레스타인인의 열망을 저버리지 않겠다.”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활동을 용인하지 않겠다.” 그가 이날 남긴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코란, 성경, 탈무드에 나온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인용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위한 용기는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20여 차례 박수가 터져 나왔고 그가 퇴장할 때는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 연설은 미국의 유대인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의 연설을 ‘가장 위험한 일’로 규정했다. 그들을 분노하게 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유대인 정착촌에 대해 “용인하지 않겠다”고 언급한 부분이었다.
이렇게 한 번 배신(?)한 오바마가 유대계 미국인을 다시 한 번 경악하게 만든 것이 바로 지난 5월19일의 ‘1967년 중동전쟁 이전으로의 국경 회귀’ 연설이었다. 이날 오바마는 중동판 마셜플랜이라는 것도 내놓았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몰아낸 이집트에 20억달러 이상의 지원을 약속했고 아랍민주화 혁명의 출발지인 튀니지에도 다양한 경제지원을 역설했다. 오바마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중동지역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민주화 불길에 기름을 끼얹겠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이것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미국의 이익에 합치하는 일이며 그가 열망하는 미국과 이슬람 관계의 변화를 촉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오바마 대통령의 2009년 카이로 연설은 중동 국민들을 향한 ‘선동’이었다. 자유와 민주의 깃발을 들고 나서면 기꺼이 돕겠다고 부추긴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대국 대통령의 보증이 있었기에 중동 국민은 재스민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다. 따라서 오바마도 이제 와 외면할 수 없으므로 중동판 마셜플랜을 내놓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중동 민주화에 대한 지원에 생각만큼 적극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대표적 사례가 리비아다. 초기 공습을 주도했던 미군은 나토군에 작전권을 넘겨주고 뒤로 물러섰다. 이후 전황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카다피군은 더욱 악랄해지고 있을 뿐이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 보면 개입을 꺼릴만한 현실적 이유가 있다. 안 그래도 벌여놓은 전쟁이 많은 마당에 또 다른 전쟁에 참전하겠다고 나서면 미국 국민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가 재정이 감당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여기에다 러시아와 중국이 군사개입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독재자와 싸우고 있는 이들로서는 속이 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금만 도와주면 카다피를 몰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좀체 마무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것이 많은데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토군이 요청하면 미군은 간헐적으로 공습 재개에 나선다. 오바마 대통령의 본심이 어디에 있는지는 가늠할 수 있다. 더 돕고 싶지만 도울 수 없는 처지, 바로 그것이다.